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없더라

결과가 뻔했던 노트북 구매기

by 임경미


노트북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나자 기동성이 좋은 노트북을 하나 장만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작고, 가볍고, 간단한 워드 작업과 정보 검색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저렴한 모델. 저사양에 가격부담 없는 정도의 노트북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노트북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매장을 찾았다.


전시되어 있는 모델들 앞에서 어떤 게 적당한지 남편과 심도 있게 토론하던 중이었다. 한 매장의 직원이 우리 대화에 끼어들며 질문을 던졌다.

주로 어떤 기능을 사용할 것인지, 원하는 사양이 있는지 물은 뒤, 그는 내 답에 따라 최적의 모델을 추천해줬다. 직원이 권해준 모델은 기존 노트북보다 가벼웠고, 작았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직원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이 이 모델을 추천하는 이유를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이런 쪽에 꼼꼼한 남편의 폭풍 질문에 지치지 않고 대답해주며, 적극적으로 수치를 비교해주면서 말이다.


말이 통하는 손님이 와서 신이 났던 것일까. 아니면 남다른 사명감 때문이었을까. 직원은 피곤하다는 기색도 없이 10분 넘게 설명을 이어갔다.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전문 용어들과 부품의 이름을 나열하고, 노트북을 살 때 어떤 함정에 빠지면 안 되는지 조언까지 해주면서. 가전제품을 살 때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이상적인 직원을 만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직원의 모습에 나는 슬슬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사지 않을 거면 옷을 입어보지 않는 습관이 있었고, 옷을 세 벌 이상 입으면 무조건 한 벌은 사고 나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을 보면 더더욱 사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그런데 언제나 아직 열어보지 않은 가능성에 대한 미련이 문제다. 슬슬 다른 매장의 모델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마음속 부담감과 책임감이 더 커지기 전에, 직원과 노트북을 분석하는 남편의 허리를 쿡쿡 찌르고 저쪽도 가보자는 신호를 보냈다.


감사하지만, 죄송하지만, 잠시 다른 것도 보고 온다는 말로 인사를 하고 우리는 나머지 매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딱 내가 원하는 크기와 무게와 디자인의 모델을 만났다. 쓸데없이 고사양이라서 내가 쓰기에는 다소 아까운 것과 그래서인지 가격이 두 배나 비쌌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들었다.


내 마음은 갈등을 일으켰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모델이 저 친절한 직원이 있는 매장에서 팔고 있었으면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이 더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구매했을 텐데, 앞서 방문한 매장에는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모델이 없었으니 이를 어쩐단 말인가.(이쯤 되면 시인한다. 나는 디자인과 무게와 크기를 노트북 구매의 기준으로 삼았지, 사양이나 가성비는 제1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눈앞에 놓인 분홍색 메탈 소재의 노트북을 미련 가득한 손길로 쓰다듬으며 내가 원하는 것을 사는 만족감과 직원에 대한 미안함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을 때,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 죄책감으로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기가 막히게, 시의적절하게 떠오른 자기 합리화와 위로로 결국 더 비싼 값을 주고 쓸데없이 높은 사양의 노트북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새롭게 구매한 노트북을 세팅하고, 지문으로 로그인을 하며(아, 비밀번호를 키보드로 입력하지 않아도 지문으로 로그인 할 수 있을 때의 희열이란.) 생각한다.



섣부른 일반화일 수도 있지만, 세상에 완벽하게 딱 떨어지는 것은 없다. 친절한 직원이 권하는 내가 딱 원하는 모델의 상품이 저렴한 가격과 적당한 사양까지 갖추고 있길 바라는 것은 유토피아가 존재하길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옷을 사러 가도 마찬가지지 않은가. 어떤 건 소재가 아쉽고, 어떤 건 길이가 아쉽고, 어떤 건 가격이 아쉽고, 어떤 건 디자인이 아쉽고. 까다롭게 옷을 고르는 엄마에게 나는 짜증이 조금 담긴 말투로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엄마, 그럴 거면 옷을 만들어 입어”라고.


내 모든 기준에 충족되는 완벽하게 딱 떨어지는 것이란 존재하기 힘들다. 물건 사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인생에서 겪는 숱한 선택과 경험은 또 어떠하겠는가.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난 이게 더 좋은데’라며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내게 더 좋은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

차선의 상황에 내린 최선의 선택이 의외의 만족을 가져올 줄 또 누가 알겠는가. 그렇게 나는 차선의 선택이 가져온 분홍 노트북 위에서 손을 놀리며 또 글 한 편을 써내려간다. 오늘따라 유난히 타이핑 소기가 경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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