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 생각이 양과 함께 뛰노는 시간

완성을 꿈꾸는 일상에 대하여

by 임경미


일어나자마자 들이붓는 카페인이 효과를 보지 못할 때가 있다. 가령 절대적으로 수면시간이 부족했다거나 간밤에 잠을 설쳤거나 커피를 조금 늦게 마셨다거나 하는 이유로 잠에서 깬 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머리가 멍할 때.

이럴 땐 하얀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보다 한숨 자고 일어나는 게 더 낫다. 결국 ‘딱 10분만 자야지’하는 마음으로 침대 속에 파묻혀 이불 어딘가에 남아있을 간밤의 체온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베개는 머리에 딱 맞고, 이불은 포근하다. 보드랍고 가벼운 솜뭉치 속에 꼬옥 들어가 있으니, 차가워졌던 몸에 온기가 도는 느낌. 이대로 눈만 감으면 단잠에 금방 빠져들 것 같다. 아침부터 머리가 멍한 건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이런 안락함은 그래도 반갑다. 잠에 들자. 내가 바라던 것이었으니까.


시간이 몇 분 흘렀지만,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방금 전 읽은 글의 영향 때문인지, 며칠째 풀리지 않은 글 때문인지, 마음은 책꽂이에 꽂아둔 책 어딘가를 아직 헤매고 있다.


이리 와, 나랑 같이 자자. 아니, 이제 그만 움직여, 나랑 같이 자자.


잠들기에 협조하지 않는 머리를 몸과 일심동체 시키기 위해 한 마리, 두 마리 양을 세기 시작했다.

윤동주 시인은 밤하늘의 별을 세고, 나는 머릿속에서 하얀 양을 센다. 그는 아침이 쉬이 오는 까닭에 별을 다 헤지 못하고, 나는 잠이 쉬이 오지 않는 까닭에 양을 수백 마리, 수천 마리 셀 기세다.


시인과 범인(凡人)은 이렇게 다르다. 별 하나에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붙이며 추억하는 그와 양 한 마리마다 숫자를 붙이며 오직 잠이 들기를 바라는 나. 낭만과 사색과 대상의 차이. 직관과 은유와 비유의 차이. 정확히 말하면 그것들이 있고 없음의 차이.


시인의 삶이란 일상도 시 같은 것, 범인의 삶이란 일상마저 허덕이는 것이라며 수면에는 전혀 도움 되지 않을 자기 객관화를 하다가,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냐고 묻는 내가 저 멀리서 걸어올 때쯤, 애당초 난 시인도 아니고, 다 필요 없어, 무엇보다 지금은 잠이 중요하니까. 그렇게 또 다른 나를 밀어내고 계속 양을 셌다.


머릿속에서 하얀 양을 백 마리쯤 그렸다. 백 마리로는 부족해서 이백 마리, 삼백 마리도 그렸다. 그러다가 순서를 잊을세라 정신을 집중하며 사백 마리를 향해 갈 양을 셌다.

양을 세면 왜 잠이 온다는 걸까.

양의 이미지를 떠올리느라, 숫자를 순서대로 세느라, 틀리지 않게 세느라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는데 과연 효과가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잠시 하다가 다시 하얀 양을 센다. 노란 양, 검은 양을 그리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 오색빛깔 찬란한 온갖 양들을 모아놓고 오히려 더 신나서 움직이는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머리는 여전히 딴생각 중이다. 잠들기 위해 양을 세는, 낭만없이 목적만 가득한 행위를 그만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냥 자지 말자고 결론을 내릴 무렵, 남편이 부지런히 만들어내는 타자기 소리가 하나의 음악처럼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따라 머릿속에서 글자가 조합되고, 단어가 만들어지고, 문장이 만들어지고, 문단이 만들어졌다.


언젠가 병원에서 귀를 치료한 이야기. 그때 꼭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해서 묵혀뒀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써지기 시작했다. 지금이 그때였을까. 언젠가 충분히 영글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 때가 오겠지 하고 마음속에 간직해뒀던 이야기가 조금씩 완성되고 있었다.




글이 술술 써지는 느낌. 올해 들어 처음이었고, 올해보다 더 이전부터 하지 못했던, 목말라 했던 경험이었다.

글을 술술 쓰고 싶었지만, 생각이 문장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문장은 문단으로 발전하지 못해서 하고 싶은 말이 여전히 한 문장인 상태로 머물러 있던 터였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지독한 갈망.


글을 너무 쓰고 싶어. 진짜 잘 썼다고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어.


이런 고민을 말할 때마다 누군가는 그냥 쓰라고 했고,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것을 글로 쓰라고 했고, 하고자 하는 주제가 없는 아무 말이라도 그냥 쓰라고 했다.

잘 쓴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던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또 누군가는 유명한 사람의 글을 인용해 잘 쓰는 글이란 없는 것이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려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위로도, 위안도 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글을 쓰고 싶었으니까. 글이 잘 써지는 경험을 하고 싶었으니까.


자려고 누웠다가 글 한 편을 썼다. 꿈을 꾸듯 글 한 편을 잘 꿨다. 이대로 글이 날아가 버릴까봐 서둘러 노트북을 켜고 종이에 써놓은 원고를 옮기듯 글을 죽- 써내려갔다.

내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날아다녔고, 막힘 없이 술술 써내려간 덕에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소리는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글 한 편이 완성됐다.


글이 잘 써지는 경험. 이런 경험을 하고 싶었다.

이런 경험이란, 어디 문학상을 받거나 하는 수준 높은 글을 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쥐어짜내지 않아도 하고 싶은 말들이 글로 흘러나오는 그런 경험. 그런 의미의 잘 써지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경험은, 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믿게 만들겠지. 언제나 경험을 바탕으로 믿고, 데이터를 신봉하는 사람의 한계이자 장점이다. 그래서 나는 또 믿는다. 나는 글을 쓸 수 있다고. 그래, 앞으로도 나는 글을 쓸 수 있을 거야!


언젠가는 또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이 올 것이고, 그러면 멍하게 앉아 하얀 바탕화면을 하염없이 바라보겠지만, 오늘의 경험이 그런 지리한 순간을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운이 좋다면 오늘도 머릿속에서 글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꿈꾸듯 글을 꾸는 날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오늘은 좋은 글 꾸세요.



Q. 꿈속에서조차 생각나는 당신을 괴롭히는 일이 있나요? 그 일을 대하는 당신의 감정은 무엇인가요?



(사진출처: 픽사베이의 드미트리 구타레프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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