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이 두려워 마음 단속하는 당신에게
농부는 씨앗을 심으며 무럭무럭 자라 열매를 주렁주렁 맺길 기대하고, 직장인은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며 노동의 대가를 지불받는 날을 기다린다. 열심히 공부했다면 좋은 성적을 받길 기대하고, 친구에게 살갑게 대하는 사람이라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리고 5,000원을 주고 로또복권을 산 후에는 토요일 8시45분 로또 당첨 번호를 확인하며 1등이 당첨되길 기대한다.
기대.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기다리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기대하며 산다.
식사를 할 때는 밥이 맛있을 것이라는 기대,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는 이번 회차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 글을 쓸 때면 영감이 번뜩 떠올라 스스로 읽어도 닭살이 돋을 정도의 글을 쓸 것이라는 기대, 저울 위를 오를 때면 조금 가벼워져 있을 것이라는 기대.
어떤 기대는 나의 노력과 관심, 시간이 필요하지만, 어떤 기대는 복불복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떤 기대는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선물처럼 충족되기도 한다.
하늘의 뜻에 따라 주어지는 것들에 대한 기대야 충족된다면 두말 나위 없이 반갑고 기쁘겠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상처받을 것도, 낙담할 것도 아니니 괜찮다. 하지만 나의 노력이 투입됨으로써 시작된 기대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적어도 애정을 쏟아부은 것이라면 잘 되기를, 내가 원하는 수준대로는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던가.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고 요행을 바라는 미신의 영역 같지만,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 기대는 인과관계가 있고, 확률이 조금 더 높은 영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알고 있으니까. 기대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 그동안 내가 쏟은 노력과 그 과정의 느낌에 대해.
‘기대’하는 것.
그것은 0%에서 만들어내는 100%가 아닌, 80% 이상의 노력을 쏟아부어 80% 이상을 얻으려는 과정인 것이다. (운이 좋으면 100%, 200%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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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었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했음에도 결과물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분명히 느낌이 좋았는데 결과는 정반대가 되었을 때. 이런 실망스러운 과정을 몇 번 겪는 동안, 괜한 기대를 했다가 상처받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져서 애초에 기대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기대 자체를 하지 않으면 80%의 노력을 쏟아부었음에도 30%의 결과가 주어졌을 때 마음의 충격을 덜 받게 될 테니까.
‘결과는 안 좋을 수도 있으니 설레발치지 말자. 기대하지 않으면 돼. 되면 좋은 거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이런 말들로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받을 상처를 줄이고는 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기대라는 단어는 내게 금기어가 되어있었다. Yes를 No로 바꾸는 것보다, No를 Yes로 바꾸는 것이 심적으로 덜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내심 좋은 결과를 물어오는 사람에게 ‘기대하지 마’라며 그들의 뜨거운 가슴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야.’
이런 말을 왕왕 듣는다. 잔뜩 들떠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스스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신이 객관적이고 냉정한, 상황판단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 맥이 빠졌던 상대방보다 더 맥이 빠진 것은, 그렇게 말을 하는 나 자신이었을 것이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실망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쿨한 척 하며 마음속에 피워 올랐던 핑크빛 상상을 스스로 없애버렸으니 말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그래서 기대조차 하지 말라는 건가? 기대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내 마음이 그렇게 뜻대로 될까?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그럼 기대가 작으면 실망도 작으려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실망하고 상처받는 일은 반복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실망은 내가 쏟아부은 노력과 얻은 결과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상처와 좌절감이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큰 기대를 가지게 되었을 정도로 내가 공을 들였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만한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려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은 속상한 상황에 대한 탓을 나의 부족이나 따르지 않은 운 때문이 아니라 기대 때문이라고 탓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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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지만,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는 그 순간은 여전히 즐겁고 행복하다.
기대하는 그 순간 무한대로 뿜어져나오는 긍정의 에너지와 행복한 상상력은 지금 한 발자국을 더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자 내 비전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기대가 커서 더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면 기꺼이 기대하고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기대하고 싶으면 기대하고, 설레발치고 싶으면 실컷 설레발치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노력한 자들이 누리는 특권이고, 혈관이 확장되고 심장이 간지러운 느낌을 즐길 수 있는 것도 기대를 할 수 있는 그 순간뿐이니까.
(사진 출처: 픽사베이, 루셀라 플라네타 레오니 러브 피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