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삶을 사랑할 이유는 나에게 있다

자꾸만 삶이 아픈 사람에게

by 임경미


가끔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다.


“다음 생에도 나랑 결혼 할래?”


윤회를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에 우리에게 다음 생이 주어져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에도 나를 사랑하겠냐는 질문. 별것 아닌, 단순한 사랑 테스트 같은 이 질문의 속뜻은 그동안 나와 행복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다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너를 다시 만나고 싶을 정도로 나는 널 사랑해.

너만 만나도 나는 절대 미련이 없어.

너뿐인 삶에 후회하지 않아.

사랑은 달콤해서 고통을 잊게 만들고, 사랑은 자비로워서 모든 걸 포용하게 만든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도 사랑이기에 어느덧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면 삶을 사랑했던 그는, 그래서 이런 말을 남겼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가고, 모든 것이 되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굴러간다.
모든 것이 죽고, 모든 것이 다시 꽃 핀다. 존재의 세월은 영원히 흘러간다.
모든 것이 꺾이고, 모든 것이 새로 이어진다. 존재의 동일한 집이 영원히 지어진다.
모든 것이 헤어지고, 모든 것이 다시 서로 인사한다. 존재의 순환은 자신에게 영원히 충실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어느덧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났을 때, 그 삶이 내가 죽기 전 살았던 삶과 마찬가지로 반복된다면 그래도 나는, 당연히 다시 너랑 사랑할 거라고 말했던 그처럼, 일말의 고민이나 거리낌없이 똑같이 반복되는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삶이, 아니 책 속의 문장이 당신의 삶을 사랑하냐는 질문을 걸어올 때, 나는 뭐라고 대답하게 될까.

아니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 영원히, 똑같이 반복되는 삶따위 받아들일 수 없어요.

라고 내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지 않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내 삶의 어딘가에는 추락이 있었고, 실패와 좌절이 있었고, 슬픔과 분노가 있었다. 마냥 예쁘지만 않은 삶이 미워서,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이 원망스러워서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을 거라며, 오히려 이놈의 인생 지긋지긋하다며 넌더리를 낸 적도 있었다.

이런 내가, 내 삶을 미워하고 원망했던 내가 지금과 똑같이 반복되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또 아파해야 돼,

나는 또 이별해야 해.

그리고 또 나는 눈물을 흘리고, 좌절해야 해.

그동안의 삶은 내게 시련이라는 선물을 당연하게 준비해놓고 있을 터였다. 거부할 수 없는 운동의 그림자처럼.




어느 날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만약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지금의 종교를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신부님께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다음 생에도 종교인의 길을 걸을 것인지 묻는 물음에 신부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가톨릭은 윤회를 믿지 않기 때문에 오늘에 최선을 다하며 산다고.

신부님의 말은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며,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는 것이 후회를 만들지 않는 삶의 자세라는 뜻이었으리라.

신부님의 말처럼, 내가 지난 시간들을 후회없이 최선을 다해 살았더라면 내가 미워했던 지난 시간들도 사랑하였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미워하고 원망했던 것은, 내게 시련을 주는 삶이 아니라, 시련 앞에서 굴복하고 나아가길 포기했던 나의 비겁함이었다고, 이제는 시선을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또 미래로 돌릴 때라고 깨닫는다. 이제야 비로소, 내 삶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내 삶을 사랑하는 것은 오늘을 미련없게 보내는 것, 이 순간에 충실하는 것,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가고 다시 모든 것이 시작될 때, 나는 그때 그러하겠노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삶을 다시 살고 싶을 정도로 내 삶을 사랑해

삶이 똑같이 반복된다 해도, 그렇지 않은 누군가의 삶에 절대 미련없어.

지금의 내 삶에 후회하지 않아.


-


그렇기 위해서 나는,

나를 사랑하고, 감사할 것이다.

꿈을 꾸고 노력하되, 조바심을 내지 않을 것이다.

내 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기억할 것이다.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것이다.

미래를 마음속에 간직하며, 현재를 직시할 것이다.


혹시라도 반복될지 모르는 내 삶을 위해, 아니, 오늘이 매번 새로운 지금을 위해, 내 삶을 사랑할 것이다.

이 삶을 사랑할 이유는 나에게 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의 니콜라스 데메트리아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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