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는 삶에 대해

by 임경미


사람이 태어나고 한평생 살다가 생의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주변에 왔다가, 머물렀다가, 또 사라져 갔을까.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은 다른 여인의 연인이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나를 덜 좋아한 돈도 짧게 머물다 떠났다. 바람도, 만개한 봄꽃들과 알록달록 물든 가을 단풍도 짧게 제 삶을 살다가 내 곁을 떠났다.

스치고 사라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은 누군가에게 더 많이 남고 더 쌓이는 것 같다. 이 차별과 차이의 순간을 인생의 진리라고 받아들이기엔 어딘가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태어나면서 은수저가 있고, 금수저가 있고, 거기에 다이아몬드 수저까지 있으니.


흙수저는 아니지만, 은수저도 안되는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에겐 부모를 잘 만났다거나 조금 더 잘났다는 이유로, 다수의 누군가보다는 더 많이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삶의 기회를 맛보고,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걸 바라보는 게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그래서 수저의 차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 영끌로 주식이나 집을 사고 복권을 사며 일확천금을 꿈꾼다. 아무리 노력해도 수저의 차이가 쉽게 줄어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평한 것이 있다.

돈이 많든 적든, 나이가 많든 적든, 예쁘든 못생겼든, 똑똑하든 그렇지 않든, 성별이나 인종, 직업과 종교 등 어떤 것들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 누구에게 인생에 딱 한 번, 무조건 찾아오는 것. 바로 죽음이다.

수저 인간론으로 비롯된 모든 차별의 순간이 끝나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는 죽음.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죽음을 헛되이 맞이할 수는 없다.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럭비팀의 이야기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만났다. 98년만에 처음으로 올림픽 출전의 기회를 얻었다는 대한민국 럭비팀은 코로나19에 걸리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혹은 선수의 컨디션 보호를 위해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은 어느 종목과는 다르게 개막식에 참석했는데, 그 이유가 듣는 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첫’하고 ‘마지막’ 올림픽일 수도 있으니까. 무조건 (개막식에)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를 올림픽을 더 많이, 더 풍부하게 느끼기 위해 개막식에 참석하기를 선택한 럭비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을 사는 자세를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19에 걸릴 위험이 있어도, 컨디션 조절이 필요해도, 그들에게 그것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가’ 였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오늘,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그것이 럭비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을 충실히,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라고 말이다.

삶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지만, 찾아올 것이 분명한 죽음을 기억한다면 더 적극적인 태도로 살게 되지 않을까.

살아 숨 쉬는 지금 이 순간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보다는 확실한 것이기에, 확실하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은 그렇기에 더 소중하니까. 온갖 두려움과 걱정 속에서도 개막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오늘에 충실한 럭비팀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보면 어떨까.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이 존재하기에 삶이 더 소중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삶이 더 삶다워진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존재할 수 있음이, 죽음을 기억하기에 오늘 하루를 결코 허투루 보낼 수 없어서 나는 이 문장이 좋다. 죽음이 주는 유한함은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무한한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다.


죽음을 기억하면 나를 늘어지게 만드는 이런저런 핑계와 자기합리화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그렇고 그런 하루가 아닌 내게 주어진 마지막 날처럼 소중히 보낼 수 있다. 죽음의 유한함은 내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과 중요한 척 하는 것을 골라낼 수 있는 지혜를 준다. 그것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1초만에 불쑥 끼어드는 운전자를 향해 쌍욕을 날리는 것보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랑의 말을 전하는 게 더 의미 있는 것임을 깨닫게 만든다.


나는 오늘 죽음을 기억하며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선택하든 자유이지만, 그 선택이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면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것이길 바란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의 클림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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