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고는 한다.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 경기에서 우리나라 최고 기록을 경신한 이봉주 선수의 기록은 2시간 7분 20초.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이 시간에 농축된 고통을 인생의 마라톤에서는 100여 년으로 나눠 겪으며 살아가는 셈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 우리는 초보 마라토너다. 42.195km를 오롯이 아무런 노하우 없이 달려야 한다.
육상 경기에서는 페이스 메이커가 있다. 페이스메이커는 다른 선수를 위해 속도를 조율함으로써 특정 선수가 대회에서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도록 만드는데, 우리의 인생에는 이런 페이스 메이커가 없다. 모두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마라톤에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고, 진흙탕이 있다. 때로는 경기 도중 비가 내리기도 하고, 폭염이나 강풍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마라톤은 같은 코스를 뛰어 순위를 다투지만, 인생의 레이스는 저마다 각양각색이다. 누구의 레이스는 평탄한 꽃길이고, 누구의 레이스는 비탈길이 연이어 이어진 길이고, 누구의 레이스에는 강풍이 혹은 선선한 바람이 불기도 한다.
인생의 마라톤은 누가 빨리 결승선에 도달하느냐가 아닌 누가 끝까지 달리느냐가 중요한 경기다. 어느 길이든 꾸준히 묵묵히 달린 사람은 속도와 상관없이 모두 승자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별적인 코스에 마음이 더쓰이고, 평탄하지 않은 내 코스만 자꾸 신경이 쓰인다.
나도 저 옆 사람처럼 꽃길을 달리고 싶은데.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광고회사에서 일 잘하기로 인정받는 남자는 인생을 잘 살고 있었다. 혼자 살고 있는 장인어른이 좀 까칠한 것만 빼면 말이다. 어느 날 아내의 연락을 받고 찾아간 장인어른 집에서, 운동화 끈을 묶기 위해 허리를 숙인 남자는 손가락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 저녁, 가족이 함께 한 식사자리에서 젓가락질을 못해 초밥 조각을 와인 잔에 떨어트렸을 때도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매일 아침이면 자신이 가던 회사도 떠오르지 않았다. 병원을 찾아갔다. 병명 다발성 경화증. 시력이 멀 수도, 팔다리가 굳을 수도, 청각과 미각을 상실할 수도, 말을 못하게 될 수도 있는 이 병은 죽을 때까지 재발과 호전을 번갈아 무서운 병이었다.
남자는 부인했지만, 점점 진행되는 병세에 결국 자신의 병을 받아들였고,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같은 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던 다른 환자의 “이제 곧 100m도 가지 못하게 될 거야”라는 말에 자극을 받아 아이언맨 대회에 출전하기로 결심한다. 수영 3.8km, 자전거 180km, 달리기 42km를 17시간 이내에 통과해야 하는 철인 3종 경기였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 그를 한 번 더 찾아왔다. 열심히 연습하던 그의 오른쪽 다리에 마비가 찾아온 것이다. 출전을 포기한 그는 실의에 빠졌지만, 주변의 응원으로 다시 재활을 시작했다. 굳은 다리가 부자연스럽게나마 움직이기 시작했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수영도, 달리기도, 사이클도 가능하게 되었다.
1년 후 다시 출전의 날. 그는 가족의 격려를 받으며 아이언맨 대회에 출전했다. 수영, 사이클, 달리기 순으로 이어지는 코스마다 다른 선수들이 그를 앞질러 갔다. 지독한 고통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주저앉았고, 멈춰 섰고, 쓰러졌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자신을 응원해준 사람들의 메시지가 그를 붙잡았다. 16시간 56분을 넘은 시간. 하나 둘 철수하는 경기장 안으로 한 남자, 바로 그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남은 거리은 단 100m. 그를 기다렸던 가족들이 그를 향해 달려왔다. 앞으로 남은 거리 80, 70, 60m. 결국 그는 결승점에 도달하며 아이언맨이 되었다.
이 남자의 이야기는 영화 〈100m〉에 나온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영화 속주인공의 이야기는 실제 스페인의 어느 30대 남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뒤로 그는 여러 마라톤 대회, 철인3종 경기에 출전했고, 3년 동안 재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에는 재발을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며 끊임없이 성공을 이뤄냈다.
고난은 언제고 우리를 찾아온다. 때로는 가장 잘나갈 때 찾아와 쓰러뜨리고, 때로는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 다시 한번 우리를 밀어넣는다. 고난이 아주 잠깐 나를 스쳐 지나가면 다행이지만, 어쩌면 어떤 고난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고난은 미리 준비한다고 나를 피해가는 것도,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한때 나를 찾아왔던 시련은 어떠했을까. 과연 신이 내게 이겨낼 수 있는 시련만 주는지 의심하며 원망했던 그 고통의 순간들도 돌이켜보면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다만 그때의 내게는 극복해낼 의지와 지혜와 용기가 없어서, 더 오래 고통스러웠고 더 많이 아팠었다. 그러나 나는 버텨냈고, 그 고통에서 벗어났다. 비록 소극적인 방법이었다 하더라도, 내가 더 강해질 시간을, 그리고 고통이 약해질 때를 기다리며 결국 고통을 극복했다. 덕분에 지금은 내 꿈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행복과 감사가 넘치는 삶의 자세를 깨닫게 되었다.
삶은 그저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도 말을 걸어올 뿐이었다.
세상엔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다. 다만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약한 마음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42.195km의 마라톤에는 쉬운 코스도, 나를 밀어주는 시원한 바람도, 상쾌한 날씨도, 관중의 응원도, 페이스 메이커도 여전히 있음을 기억하자.
끝까지 달려 나갈 의지가 있다면 그 레이스 끝에는 결승 테이프를 끊고 들어가는 성취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