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좋은 일을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by 임경미


‘오늘도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불현듯 찾아온 지루함을 깨트리고 싶어서였을까. 밝게 빛을 내는 광고판에 써진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우울하고, 지쳐서 위로가 필요할 때이다.

일이 버겁고, 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지겨워서 새로운 시선이 필요할 때이다.


분홍꽃과 분홍빛 문구는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분홍빛으로 살짝 물들게 만든다. 어쩌면 그 문구가 갑자기 눈에 들어온 건 내가 위로를 받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하든 오늘도 내일도 괜찮을 거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바람은 그렇게 무의식중에 남의 이야기처럼 드러난다. 사실, 모든 것은 다 내 이야기였다고, 네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나는 어디까지나 나를 위한 말을 하고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있다.

그래, 인정하자. 그 모든 것은 내 바람이었다. 그것이 설령 아무개가 만들어놓은 광고판에 박힌 가벼운 마음의 문자일 뿐이라도, 문장이 내게 다가와 따뜻한 손길이 되고 듬직한 힘이 되었으니 그것은 이제 단순한 문자 정도가 아니다. 우리 사이엔 짧지만, 그보다 강한 연결이 생겼다.


오늘도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는 나는, 아니, 오늘보다 더 불확실한, 미래라는 시간에조차도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는 나는 ‘오늘도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라는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오늘‘도’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어제도, 그제도 좋은 일이 생겼을까.

‘도’는 반복되고 지속되는, 그 전의 것이 지금과 앞으로도 이어진다는 의미이니까. 그렇다면 내일도, 모레도, 좋은 일이 생기게 될 것이다. ‘도’와 연결되는 ‘거예요’라는 확신이 그래서 더욱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좋은 일이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단절되지 않고 이어진다면, 오늘이 자꾸 나의 발목을 잡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의 착각일 뿐이라고, 내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위로할 수 있으니까.

되도록 좋은 일이라는 것을 지속하고 싶지만, 미래는 아직 미지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과거는 어땠을까. 내가 보낸 시간에는 좋은 일이 있었을까. 그렇거나 아니라는 이분법적인 편 가르기는 하지 말자고 생각하면서도, 자루에서 알이 굵은 콩알을 골라내듯, 내 기억 속 파편들을 헤집고 있다. 찾았다. 그리고 또 여기, 찾았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좋은 일은 일어나고 있었다.

다만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이 더 많이 떠오르고, 즐겁고 행복한 기억보다 그렇지 않은 기억이 더 선명하게 자리 잡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잊고 있었다. 좋은 일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있다는 것을.



‘좋은’ 일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좋은’이라는 형용사는 어떨 때 사용할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기쁘거나 행복할 때? 근심걱정이 없을 때? 화목할 때? 일확천금을 얻는 행운이 찾아왔을 때? 긍정적인 상태일 때? 부족함이 없을 때?

‘좋은’ 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나열하고 나니, 좋은 것이란 내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는 것들이었다. 고통, 실패, 좌절, 실수 같은 되도록 만나고 싶지 않을 것들, 그리고 그것들과 반대의 영역에서 빛을 내고 있는 것들을 나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둠이 있어서 빛이 존재한다는 말처럼 좋은 것이란 좋지 않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지겹게 들어서 알고 있다. 그리고 또 지겹게 말했다. 둘은 서로 한끗 차이일 뿐이라고. 그래서 실수에도 배울 것이 있다고, 실패에서도 얻는 것은 있다고 말이다.

이별 뒤에 새로운 만남이 있고, 상처가 아물면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좋지 않은 것의 좋은 점과 좋은 것의 좋은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감정은 알고 있는 것과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게 만든다. 머리만 똑똑해서 입만 신나게 떠드는 사람은 되지 말자. 내게 좋은 것이란 이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좋은’을 향한 집착을 버려볼까.




그러고 보니 문장은 ‘생길’ 거라는 말로 끝이 났다.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일은 생기는 것일까, 생기게 만드는 것일까.

생각을 단순화하기 위해 다시 이분법으로 나눠본다. 그리고 답은 대부분 그랬듯 중립을 향한다. 생기는 것도 있고, 생기게 된 것도 있겠지.

생기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생기게 만드는 것은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삶을 수동적으로 살 것인지, 능동적으로 살 것인지 선택하라면 이 이분법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바로, 능동적으로 살겠다는 것. 내가 주인공이 되어,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살 것이라는 것. 그렇다면, 좋은 일이 마냥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생기지 않는다면 생기게 만들어야지. 더 잘 생기도록 유도하고, 도와야지.


오늘도 좋은 일이 생기도록 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다, 결국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다다랐다.

어떤 선택을 하든, 지금 내가 무엇을 겪고 있는 그것은 모두 나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최선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노력하면 된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 믿음은 아직도 유효해서 여전히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강한 원동력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 살짝 흔들리고 있다. 알 수 없는 영역이 보내는 희미한 아우라가, 아직 밝히지 않은 어둠이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지금이 내 최선이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 나에게 일어난 좋은 일들을 잘 가꾸고 이뤄갈밖에는.

나는 오늘도 선택하고 행동하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이 그렇게 흘러가게 셋팅 된 삶의 흐름이었더라도 나의 의지가 모조리 소멸하지는 않았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오늘도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이 말을 선물 받은 당신은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

긴 생각을 서툴게 풀어내고 나니, 문득 궁금해진다.

그 답이야 어찌 됐든,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오늘도 좋은 일이 생기라는 것이다. 저마다의 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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