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도 무의미한 것은 없다

오늘도 계획들 속에서 안달하고 있다면

by 임경미


가만히 일상을 돌아보노라면, 가끔은 이렇게 보낸 하루에 괜히 미안해질 때가 있다. 무엇인가 바쁘게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1차로 괴롭고,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냈나’ 하는 생각에 2차로 괴로웠다.

바쁜 업무를 마치고 돌아와 쉬고 있을 때, 한바탕 휴식을 취하고 잠자리에 들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무엇을 했지? 매일 일만 하느라 정신이 없구나. 나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


혹은 주말만이라도 ‘한 주 동안 힘들게 일한 내게 휴식을 줘야지’라는 생각으로 침대 위에 누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일요일 오후가 되어서는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오히려 주말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던 적도 있다.




언제부터인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루 12시간 일하고 돌아와서도 ‘아무것도 한 게 없어’라고 자책을 하는 상황에서는 벗어났지만, 요즘은 책을 읽지 않았거나 글을 쓰지 않은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자책하기 시작했다. 독서와 글쓰기, 나에게는 이 두 가지는 잘 보낸 하루를 규정하는 마지노선이었고, 그것을 하지 않은 하루는 무의미하게 보낸 하루였으니 그렇지 못한 날은 언제나 반성, 자책 모드였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 무렵이면 예전처럼 이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나의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지기를. 내일은 꼭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보낼 수 있기를!’

이런 모습이 비단 나뿐일까.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의 하루를 반성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무엇인가를 하지 않았을 때 불안을 느꼈던 내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참 안쓰럽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 ‘아무것’이라도 한 것일까?

어떤 일을 해야 의미 있는 일을 한 것일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만 잘 보낸 하루가 되는 것일까?

하지만 언제나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다며 죄책감을 느낀 어느 날에도 분명 바쁘게 몸을 움직이며 하루를 보내지 않았던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느낀 것은 거짓이 아니었을까.


오늘 내가 쓸어 없앤 먼지들, 깨끗이 빨아서 말려놓은 옷가지들, 뚝닥거리며 만들어 먹은 음식들, 내가 읽은 글들, 내가 보며 배운 동영상 속 지혜와 지식들, 그로 인한 깨달음들, 친구와 나눈 짧은 안부, 내 눈을 통해 들어온 구름의 흐름, 피부로 느끼는 태양 볕의 따뜻함.

글 쓰지 않고,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내 시간은 또다른 것들로 가득 차 있었고, 풍요롭게 채워지고 있었다. 이런 것들이 아무것이 아니라면, 그 시간 동안 내가 하고 느꼈던 이것들은 다 뭐란 말인가. 이런 것들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이니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한 사람이 길을 걸어가다 작은 돌멩이 하나를 놓는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돌멩이를 그곳에 놓았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간다. 하지만 그 사람은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계속 돌멩이를 집어다 놓았다.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한 사람이 옮기기 시작한 작은 돌멩이들이 모여 돌탑이 되었다. 그러자 그 길을 지나던 사람들은 ‘이 돌탑이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하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어쩌면 내가 보내고 있는 하루 역시 그런 게 아닐까.

내가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마지노선이 아니더라도, 그걸 하지 않으며 보낸 일상 역시 무엇인가를 하면서 보낸 의미 있는 하루인 것은 아닐까.


작은 돌멩이 하나를 옮기는 일을 너무나 작고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돌아보면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의 한 과정이었던 것처럼, 내가 오늘 이렇게 보낸 하루 역시 내 인생에 한 과정이라고 생각해본다. 마지노선이 무너지더라도, 그것은 결코 무너진 것이 아니었음을, 다른 돌멩이 하나를 얹어놓은 과정이었음을 말이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 하나는 잊지 말아야겠다. 아주 작은 돌멩이라도, 그 돌멩이를 어디에 둘지, 어떻게 둘지를 알 것. 돌멩이를 어디에, 어떻게 두느냐에 따 돌무지가 되기도 하고, 돌탑이 되기도 하고, 돌담이 되기도 하니까.


오늘 내 일상이 어떤 길로 가는 것인지, 그 속에 어떤 의미가 발견되지 못한 채 놓여있는지 알아차려 보자. 이것을 알고 가는 것만으로도 쓸데없는 자책은 사라질 테니까.


(이미지 by Uta 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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