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은 넣어둬, 넣어둬!

by 임경미


한번은 지인이 도저히 남편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하소연을 해왔다. 얘기인즉슨, 퇴근하고 직장 상사와 있었던 마찰에 대해 말했는데, 남편이 “그럴 땐 네가 이렇게 행동했어야지”라며 내 편도, 네 편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내가 그걸 몰라서 그래? 그냥 답답하니까 하소연하는 거잖아”라고 대답하자 나는 너를 위해서 조언해주는데 왜 화를 내냐며 따지고 드는 바람에 오히려 부부싸움이 될 뻔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사람 사는 게 아무리 비슷하다지만, 부부싸움 레퍼토리까지 비슷하다니.

나 역시 매번 경험했던 터였다. 일이 해결되지 않아 고민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이렇게 해보라고 조언했지만, 그 답이 내게는 짜증 그 자체인 적이 있었다.

“그걸 몰라서 안 한 게 아니야. 했는데도 해결이 안 되니 고민하는 거야”라고 백 번을 설명해도 회사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했던 남편의 원론적인 조언이 이어졌고,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남편의 조언에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이 한 마디로 말다툼이 되어버린 대화를 종지부 찍었다.

“제발, ‘그랬구나. 힘들겠다. 나라도 엄청 짜증 났을 거야’라고 말해주면 안돼?”

내가 네게 바랐던 것은 조언이 아니라 공감이었을 뿐인데.


조언과 평가가 그다지 필요 없을 때가 있다. 상사에게 깨졌다는 친구에게, 애인과 싸웠다는 친구에게 ‘아, 그랬구나. 속상했겠다’라는 위로와 격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힘이 될 때가 있다. 그런데 이걸 잘 몰라서 남편과 나는 사소하게 부딪힌다.

내가 바라는 것을 상대가 오해했을 때, 요만큼만 해주면 되는데 이~마안큼~ 해주려고 노력할 때. 서로의 마음이 맞지 않으니, 위로와 감사가 넘쳐야 하는 그 순간에 오히려 작은 다툼을 하고는 했다.


물론 고민을 잔뜩 가지고 있는 부인이 안쓰러워서, 그 짐을 덜어주기 위해 조언했을 남편 입장에선 버럭 화를 내는 내가 이해되지 않았겠지만, 고민 속에 있는 사람의 입장을 대변해 말하자면, 조언해주고 충고해주고 싶은 마음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마음 때문이며, 상대방에게 필요한 건 그런 멋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너무 힘들다고 주저리 주저리 하소연한 것은 용한 무릎팍 도사의 해결방법을 듣기 위함이 아니다.

물론 기발한 해결책으로 고민을 해소해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입 밖으로 나오는 조언은 이미 해봤거나, 이미 알고 있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기 싫거나 효과가 없어서 좌절한 방법인 경우가 허다하지 않던가.

교과서에게 볼 법한 뻔한 말들, 직장인이니 현대인 생활백서에서나 볼 법한 그럴싸한 말들이 아닌, 힘들어 하는 순간이 네 잘못이 아님을 알려주고 위로와 응원을 주는 말들, 그러니까 네가 틀리지 않았다는 말이 오히려 더 필요한 순간이 있다.


공부하기 싫다며 얼른 대학교에 가서 자유를 즐기고 싶다는 내게, 20대 언니, 오빠들은 부모님이 먹여주고 옷 사입혀줄 때가 좋은 거라고 했지만, 나는 그들의 말이 자유의 풍요를 누리는 자들의 잘난 체로 보였다. 대학교에 가서는 빨리 취업하고 싶다는 내게 사회에 나가면 진짜 개고생이다, 지금이 좋아, 지금 즐기라고 충고하는 취업한 선배들이 얼마나 재수 없게 느껴졌는지.


물론 지금은 그들의 말이 백 번, 천 번 옳았음을 인정하지만, 그때의 내게, 그러니까 암흑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던 내게 그들의 말을 받아들일 합리적인 이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힘든 상황은 이렇게 색안경을 끼게 만들고, 진심을 베베 꼬게 만든다.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만났다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하는 마음을 살짝 내려두자. 위대한 지혜의 왕 솔로몬이 된 듯 판결을 내리려는 습관도 내려두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도,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진짜 힘든 사람에게는 모두 무용한 것이니까.


넘어져 다친 아이에게 일어나서 뛰라고 강요하기 전에, 상처를 치료하고 용기를 먼저 북돋아주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고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에게도 마음이 괜찮아질 시간이 필요하다.


“에고, 네가 진짜 속상하겠다. 마음 고생 많겠네.”


때로는 딱 이 정도가 천 마디 말보다 유용할 때가 있다. 공감과 위로의 말로 연고를 먼저 발라준 다음, 조금 괜찮아지고 난 다음에 조언과 평가를 해도 시간은 충분하다.


(이미지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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