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에 거리가 필요해

by 임경미


사람 인(人) 자는 한 사람이 쓰러지지 않도록 다른 사람이 지탱해주는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 그래서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거겠지. 혼자 있고 싶지 않아도,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네가 필요해서 나는 너무 자연스럽게 너를 찾았고, 우리를 만들었다.

내가 쓰러지지 않게, 네가 기울어지더라도 넘어지지는 않게 지탱해주는 게 인간답게 사는 모양이지 않을까.


가끔 힘이 들고 지친 날이 찾아오면, 사람 인 자를 쳐다보며 언제라도 내가 쓰러지지 않도록 도와줄 네가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너와 내가 함께 하는 낭만의 순간은 홀로 있고 싶은 또 다른 욕망 때문에 쉽게 깨졌다.

가끔은 그다지 예민하지 않은 성격에도 거슬거리는 사람을 만났고, 적정선을 지키지 못하고 나만의 영역에 침범하는 사람들을 만나고는 했다.

서로의 공간을 인정해주지 않고, 무심코 침범함으로써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는다. 가까운 사이든, 가깝지 않은 사이든 관계없이 우리는 서로를 베고 또 찌른다.

철학가 쇼펜하우어도 이런 상황을 많이 목격했을까. 아니, 어쩌면 경험했을지도 모르지. 여하튼 그는 고슴도치의 우화를 들어 인간관계를 설명했다. 이른바 ‘고슴도치의 딜레마’.



추운 어느 날, 고슴도치들이 온기를 얻기 위해 서로 모이지만 이내 서로가 가진 가시에 찔려 화들짝 놀라 거리를 떨어트린다. 그런데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니 또 추워진다. 그러면 고슴도치는 온기를 얻기 위해 다시 모이고, 서로를 파고들수록 가시에 더욱 깊이 찔린다. 고슴도치는 멀어지다가 가까워지다가를 반복하면서 적당한 거리를 찾아낸다. 온기를 나누면서도 서로를 아프게 하지 않는 적당한 거리를 말이다.


우리의 삶이 고슴도치의 딜레마와 뭐가 다를까. 망망대해에 홀로 놓인 외딴 섬처럼 살기에는 외롭고 쓸쓸해서 다른 사람을 찾지만,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 상처를 입고 이내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들어 거리를 두지 않았던가.

혐생이라고, 지긋지긋하다며 어디론가로 훌쩍 떠나는 것을 꿈꾸다가도, 8박 10일 여행이 끝나고 나면 인천공항에 발을 내리는 순간부터 마음이 따뜻해지고,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홈 스위트 홈’이라고 중얼거리며 그제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내가 아니었던가.


사람 인 작대기 하나의 아이러니. 나를 찌르는 고슴도치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정작 그들에게서 벗어나면 온기를 얻지 못하니 금세 체온이 그리워져서 다시 고슴도치들을 향해 움직이는 것. 나는 언제나 그 둘 사이를 오가며 갈팡질팡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이제라도 결론을 내려볼까.

언제라도 나를 찌를 수 있는 고슴도치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온기는 주고받으면서도 서로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가지는 것으로 말이다. 내 주변에 있는 고슴도치들로부터 나를 지키고, 또 다른 고슴도치들을 찌르지 않기 위한, 그러면서도 온기를 전달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잘 찾아보면 어떨까.


거리. 거리에는 물리적인 거리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다. 심리적인 거리가 있고, 태도와 말에 담긴 언어와 행동 사이의 거리도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거리들을 잘 유지할 수 있을까.


우선 나를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내 감정이 어떤지 느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를 알아가는 순간에는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 나에게 질문하고 탐색하는 그 순간에는 그럴 거야 하는 추측도, 그랬으니까 하는 당연시도, 왜 그러는 거야 하는 비난도 없어야 한다. 척 하는 가면을 벗고 솔직한 나의 민낯을 드러내어 마주해야 한다.

나를 알아야 내 생각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고, 내가 무조건 맞다거나 상대가 무조건 맞다고 동조하지 않을 수 있다. 내 생각과 감정을 모르고, 기준이 세워져 있지 않으면 언제든 내 영역을 침범해오는 고슴도치들의 가시에 찔리게 될 테니까.


한 걸음 더 나가볼까.

내 기준을 알았다면 그에 따라 행동하되, 상대의 기준도 존중하기. 내가 상대의 가시에 찔려 아픈 만큼 상대 역시 내가 찌른 가시에 상처 입을 수 있으니까.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를 나와 동일한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고 독립적인 하나의 개체로 인식해야 한다.

‘내 자식이니까, 내 남편이니까, 내 친구이니까 나를 이해해주겠지? 나는 지금 간섭하는 게 아니라 조언하는 거야’라고 생각하기 전에 자신의 방법이 합당한 것인지 묻고, 상대의 의사가 어떤지 먼저 물어야 한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무관심 하라는 것이 아니다.

관심은 가지되 간섭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서로를 상처 주지 않는 적당한 거리다.


(이미지 by Amaya Eguizábal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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