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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경미 Jul 04. 2022

어떤 날의 단상


병원에 노부부가 함께 방문했습니다. 진료실 문 앞에서 두 분이 나란히 서서 당신들 중 누군가의 이름이 뜨길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얼마 안 돼 그 시절 지었을 법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름이 화면에 깜박입니다. 아픈 분은 할머니였나 봅니다.

할머니는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셨고, 할머니의 가방을 받아 든 할아버지는 “증상 잘 말하고 와.”라는 걱정 어린 말을 건넨 뒤 대기실 소파에 돌아가 앉으십니다.     

 

3분도 되지 않은 것 같은 짧은 시간이 지나자, 진료실 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나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의자에서 얼른 일어나 할머니를 향해 걸어갑니다. 수납 번호표를 뽑고 계산을 하면서 약을 어떤 종류를 주느냐, 며칠 분을 주냐, 또 언제 오냐 등등 이것저것 궁금한 걸 물으시고, 할머니께 차근차근 설명해드립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처방전과 할머니의 가방을 들고, 앞서 가는 할머니를 따라 병원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두 분의 모습에서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어르신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언젠가 찾아올 저의 늙은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에는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것은 세상의 순리이니 큰 감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 성장했다가 늙어서 죽는 것은 어쩌면 축복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늙어가는 것에 대한 또 다른 감정이 생깁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하나둘씩 제가 모르는 것들이 늘어가겠지요. 모르는 것이 늘어가는 만큼 불편한 것도 늘어가겠지요.

핸드폰으로 길을 검색해서 목적지를 찾아가고, 어플로 기차표를 미리 예매하고, 안면을 인식해 물건 값을 결제하고, 내가 원하는 커피를 줄 서지 않고 미리 주문하는, 이러한 편리함을 나이를 먹어서도 누릴 수 있을까요? 빠르게 변하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제가 따라갈 수 있을까요? 저는 벌써부터 인별그램 하는 법이 어려워서 애를 먹고 있는데 말입니다.      



문득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떠오릅니다. 영화 내용과 제목이 연결이 안 돼서 이해하기 위해 여러 번 봤던 기억이 납니다. 굳이 그렇게 어렵게 묘사하지 않아도 점점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편리한 모든 것들이, 사용하기 어려워 더 불편해진 사회. 저도 점점 늙어갈수록 그런 문명의 이기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나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몰라서,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말입니다.   

  

더 나이를 먹어도, 늙어서도, 지금의 남편과 헤어지지 않는 한, 아마도 저는 오늘 병원에서 만난 노부부처럼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며 살겠지요. 그래서 더 이상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어도 그럭저럭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지만, 저를 위한 늘보는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아, 그래도,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덜 불편하고 조금 더 편리하고, 더 행복하길 바라면서요.

여담이지만, 이제 엄마가 이것저것 어떻게 쓰는 거냐고 물으시면 친절하게 알려드려야겠습니다. 서운함, 소외감 느끼지 않도록 말입니다.


(이미지 출처:  Moshe Harosh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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