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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경미 Jul 01. 2022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으로 가득할까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으로 도배되어 있을까.’     


어느 날, 인터넷에 올라온 유머 글을 뒤적거리다가 이런 의미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내 엄마 역시 프로필 사진이 꽃인 적이 있었고, 집 베란다에는 비슷비슷한 모양의 풀떼기(이때의 나는 감히 이 단어를 썼음을 인정한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꽃을 좋아하는 엄마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화분을 키우는 이유도 궁금해졌다. 나 역시 꽃 헤이터에서 꽃 러버로 성향이 바뀌었고, 식물 킬러 단계에서 초보 식물 집사 단계쯤은 되었기에, 엄마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 엄마, 엄마는 왜 화분을 키워?

- 응? 그냥!

- 그냥? 물 주고 계속 관리해야 되는 번거로운 일을 그냥 한다고? 잘 생각해봐.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나는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엄마를 취조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계속 묻는 딸의 질문이 귀찮은 듯 말했다.     

- 그냥! 식물이 자라고 있으면 분위기가 살잖아. 집이 칙칙하니까 좀 환하게 하려고 하는 거지.    

 

- 아니, 다른 엄마는 자식 키워놓고 나니 마음이 허해서 키운다던데, 엄마는 아니야?

안 되겠다 싶어 그다지 인터뷰어로서의 능력이 없는 나는, 유도질문을 하며 서둘러 내 카드를 꺼내 보였다.      

- 응? 엄마는 그런 이유는 아니야. 허하기는 왜 허해. 오히려 다 키웠으니까 안심이지.

- 아니야? 그럼 또 어떤 엄마는 바쁘게 살다가 문득 돌아보니 시들어 버린 내 인생이 불쌍해서 키운다던데?

- 응, 그것도 아니야. 시들기는 개뿔. 늙는 건 당연한 건데. 엄마는 그냥 집이 썰렁해서 키우는 거야.     

그러시단다. 엄마의 생각은 그냥 집이 썰렁해서 식물을 키우신단다.

엄마의 오랜 화초 사랑, 꽃 사랑은 단지 플랜테리어의 일환이었을 뿐,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그런 가슴 아린 이유는 아니시란다. 다행이다.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엄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외롭지 않다는 거니까.      



그렇다면 나는 어땠을까. 언제부턴가 나 역시 꽃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꽃을 사고, 화분을 키우고, 외출을 할 때면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들의 자태에 빠져들어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는 했다. 이런 나의 변화를 느낀 친구는 신기하다는 듯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 너는 왜 갑자기 꽃이 좋아졌어? 화분 키우는 것도 엄청 귀찮아했잖아.

- 글쎄, 갑자기 어느 순간 그렇게 됐어.

- 그렇게 싫어하던 꽃을 좋아하는 것 보면 너도 이제 늙었나 보다. 늙으면 꽃이 좋아진다더라.     


응, 그래. 그럴 수 있지.

나는 나의 변화를 순순히 인정했다. 꽃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그럴싸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노화의 한 과정이라면 받아들이면 되지, 뭐. 사실 받아들일 만한 것도 안 되는 문제였지만.     


그러나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나서도 어딘가 다른 생각이 들었다. 꽃을 싫어했던 내가 꽃을 가까이 하고, 번거로운 것을 질색하는 내가 무거운 몸을 움직여 식물을 키우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식물 사랑이 시작되면서 내가 물을 주며 관리할 때마다 변하는 식물을 바라보는 게 행복했다. 내 손길을 받으며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새로운 가지를 내는 작은 생명을 보며, 내가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위로를 받기도 했다. 내가 지금 밥만 축내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인생을 살고 있는 이유는, 내가 힘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을 찾게 된다면 내 손길에 잘 자라는 식물처럼, 내 인생도 잘 가꿔지지 않을까. 식물에 대한 관심이 커질 무렵, 그때 내게 식물을 키우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그런데 또, 엄마의 이유를 빗대어 내 상황을 들여다보면, 한편으로는 그럴싸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내 생각은 그럴싸하게 보이고 싶은 내 마음이 만들어낸 불필요한 장신구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꽃을 좋아하고, 식물을 키우는 이유는 어쩌면 나의 탐미주의적인 성향의 배출구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남편을 사랑하게 된 데 이유가 없었던 것처럼, 엄마들의 프로필 사진이 꽃으로 도배되는 이유도 별것 없을 것이다.     



하지만 뭐, 사람마다 생각도, 의미도 다 다르니까. 엄마에겐 엄마만의 이유가, 나에겐 나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이 착각일지, 어느 것이 진짜일지, 이유가 무엇이든 뭣이 중할까. 그냥 지금은 그렇게 믿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 거다.


결론이 이렇게 흘러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어설픈 인터뷰를 끝내고 나니 엄마가 조금은 건강하게 사시는 것 같아 안심이다. 딸 둘을 키워놓고 혼자 사는 시간들이 마냥 외롭지만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인생은 또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흐른다.



(사진 출처: Luisella Planeta Leoni LOVE PEACE �� from Pixabay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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