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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횡 Jan 13. 2024

요즘 나는 다시 가끔 눈물을 흘린다...

나는 참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어렸을 때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잘 모르겠지만 툭하면 울었다. 그랬던 내가 완전히 바뀐 계기가 하나 있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왜인지 지금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학생들의 부모님이 학교에 오시는 그런 날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오셨었는데 그때 반에 어떤 친구가 나와 어머니가 함께 있는 쪽으로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얘 너무 잘 울어요'


딱 이때부터였다. 내가 울지 않게 된 게 말이다. 아마 그 친구가 어떤 악의를 가지고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정말 내가 많이 울었어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나는 거짓말처럼 울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친구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너는 너무 차가워. 감정이 없는 것 같아.'


웃어넘겼다. 최소한 이제 잘 운다는 소리는 듣지 않지 않은가. 그리고 더더욱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며칠 전에 예전에 한번 읽었던 소설책을 다시 읽고 있었다. 전에 한번 봤던 거라 빠르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설의 어느 한 부분에서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그렇게 슬픈 부분도 아니었고 전에 읽었을 때는 분명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까 하다가 그냥 다 흘렸다. 어차피 집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었기에 보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왜 눈물이 난 걸까? 내용이 슬펐다면 전에도 울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지금까지 내가 너무 오래 참아온 게 아닐까 싶었다. 울지 않은 날도 사실 울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오지 못한 눈물이 쌓여 내가 막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쩌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져 내게 씌워졌던 아니 내가 썼던 가면이 벗겨졌는지도 모른다. 이제 보는 사람도 없으니 나도 모르게 그 가면을 벗어버린 것이다.


어디선가 울음치료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참지 말고 확 울어버리는 게 정신건강에 그리고 몸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였다. 정확하게 찾아보진 않아서 확실하진 않지만 말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울고 나니 심적으로 확실히 편안해진 부분이 있었다. 정말 울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어쩌면 원래의 나를 되찾아서 그런 걸 수도 있을 것이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내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게 언제까지 갈지는 또 모른다. 나는 다시 지금 내가 있는 이 방에서 나가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눈물을 비워두었기에 전보다는 조금 더 편안하게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 많이 울어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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