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다. 20살이 되던 해, 고3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과 함께 술집에 갔을 때 처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총 7명 정도였는데 그 모두가 술 마시고 전원이 게워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맛도 없는 술을 왜들 그리 마시는지 참 궁금했었다.
그렇게 술 마시고 힘들어했으면서 이후에도 거의 매주 모여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셨을 때 그 기묘한 느낌과 술을 사서 마셔도 아무도 나에게 뭐라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좋았던 것 같다. 술을 마시는 것만이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라는 것을 자각하게 하는 유일한 행위였다. 어른의 징표 같은 거랄까?
시간이 많이 지나고 20살의 내가 10년도 더 지난 일이 되었다. 그때 함께 지냈던 친구들은 이제 뭐 하고 사는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은 대학교 때 친구들만 연말이나 연초 아니면 청첩장을 돌릴 일이 있을 때 가끔 만나고 있다. 우리는 만나면 자연스럽게 술을 주문한다. 나름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술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는 나는 맥주 한잔 정도만 같이 마신다. 오랜만에 만나면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확실히 나이 먹은 게 느껴진다. 하는 이야기도 이제는 일, 주식, 돈 이런 이야기들뿐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여전히 내게는 술을 마시는 행위만이 나를 어른이라고 느끼게 한다. 어른이라는 건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분명 나이만이 전부는 아닐 텐데 말이다.
그래서 고민을 해보았다. 나와 내 부모님의 차이가 뭘까? 어른의 요소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한 한 가지는 바로 어른은 무언가를 지키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지키는 삶을 사셨다. 지키는 대상은 가족이었고 말이다. 자신의 삶이란 게 있었을까 싶다. 늦은 나이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힘들게 일하며 아파도 별 내색도 못하고 일하셨다. 단순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못했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셨기에 가능했으리라.
반면 나는 갈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까 부모님에게 말도 안 하고 퇴사를 했겠지... 나는 하고 싶은 게 있다고 그냥 뛰쳐나와버렸다. 그리고 망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현재 가진 것도 지킬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삶에 대한 태도가 어른과 아이를 가르는 요소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결국 어른이 될 것이다. 무언가를 갈구한다는 것은 결국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이고 얻은 다음에는 지키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꼭 그 지키려는 대상이 가족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태도가 바뀌며 어른에 한 발자국 가까워지는 것이다. 물론 갈구한다고 꼭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 계속 아이로 남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 경우에는 아무것도 없는 나 자신을 지키려는 어른이 될지도 모른다.
좋고 나쁜 건 없다. 아이든 어른이든 우리는 각자의 상황에 맞는 삶의 태도를 취하면 된다. 다만 스스로 어른이 될 시간이 되었을 때를 알고 잘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