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퇴사 후 (안타깝게도)긴 시간을 보내며 내가 나에게 발견한 크고 작은 몇 가지 놀라는 점들이 있다.
먼저 첫 번째는 내가 너무나도 무신경하게 밖을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핸드폰 케이스를 바꿨다. 한 4-5년 전에 핸드폰을 바꾸면서 그때부터 쓰던 핸드폰 케이스였는데, 오래 쓴 만큼 케이스에 칠해진 도장이 여기저기 벗겨져 있었다. 원래는 검은색이던 케이스가 점박이로 보일 정도로 사용한 그 케이스를 드디어 보내 준 것이다.
겨울에 늘 입고 다니던 점퍼도 하나 버렸다. 핸드폰 보다 더 오래전에 사서 추울 때마다 정말 잘 입고 다니던 점퍼였는데 어느새 보니까 점퍼 앞부분에 박혀있던 로고 같은 게 전부 다 떨어져 있었다. 이걸 올해 초에 발견하고 그때 버린 것이다. 아마 그렇게 떨어진 채로 한 4-5년은 입고 다녔을 것이다.
옷을 좀 샀다. 최근에 결혼식 갈 일이 있어서 산 것도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옷들이 대부분 앞서 버렸다는 그 점퍼만큼 오래된 것들이라 예전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 전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약속이 생겨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전에 옷을 샀다.
예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더라도 이제는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 내가 예전처럼 입고 나간다면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이지만 지금 내가 예전처럼 입고 나가면 불쌍하게 본다.
'아 퇴사하더니 오랫동안 일도 못하고 그래서 저렇게 다니는구나'
이렇게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내가 혼자 다니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혼자 다니는 것을 참 좋아했다. 혼밥이니 뭐니 그런 말이 있기 전에도 대학교 다닐 때 혼자 밥 먹는 것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나중에 여행도 혼자 많이 다녔다. 따지고 보면 내가 갔다 모든 여행 중 40% 정도는 혼자 갔을 것이다. 그렇게 혼자 가서도 정말 잘 지내다 왔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도 많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혼자 가는 여행은 재미가 없다. 그걸 가장 절감했던 게 작년 도쿄여행이었다. 7일 동안 혼자 다녀온 도쿄여행. 정말 너무 재미없고 그냥 힘들었다. 그래서 여행의 마지막 날 쯤되어서는 그냥 호텔에서 안 나갔다. 왜 이렇게 변한 걸까?
그동안 내가 혼자 하는 여행이 즐거웠던 것은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이, 직장 생활할 때는 직장동료들이 있었기에 그들과 교류하며 알게 모르게 힘을 얻었고 그런 힘이 있었기 때문에 혼자 다니는 것이 즐거웠던 것이다. 그걸 잃은 지금은 혼자 다니는 게 즐겁지 않다.
세 번째는 내가 친구가 없었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연락할 수 있는 친구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어렸을 때는 크면 갑자기 연락해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친구 한 명쯤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크고 보니 그런 친구를 가진다는 것은 정말 굉장한 일이었다.
나이가 들다 보니 나부터가 원래 내가 있던 동네에서 살지 않는 것도 있고 다들 직장 때문에 전국 여기저기 퍼져 살아서 물리적으로 만나는 게 쉽지 않다. 그럼 연락이라도 좀 자유로운 친구가 있을까도 봤지만 없었다. 나에게 그런 친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굉장히 힘들었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정신적으로 힘들었는데 얘기할 사람이 없어서 두배로 힘들었다. 이 부분은 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아마 몰랐을 것이다. 정확히는 일을 하고 있을 때는 그런 친구가 필요하지 않았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이제 와서 필요하다고 찾아보니 없는 것이다. 다들 바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일 하고 있을 때의 나처럼 필요성을 모른 채로 말이다.
위 세 가지가 내가 깨달은 것들 중 가장 큰 세 가지이다. 상황이라는 것이 그동안 내가 못 보던 나를 자꾸 보여주는 것 같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잘 지내고 있다. 다음에는 어떻게 잘(이라고 쓰고 버티고라고 읽는다.) 지내고 있는지 적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