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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횡 May 20. 2024

퇴사 후 찾아온 불청객

퇴사를 하고 대략 몇 달 정도 지났을까? 샤워를 다 하고 물기를 닦으면서 거울을 보는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거울 속에 내가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건 꼭 퇴사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다른 이유로도 겪을 수 있지만 퇴사를 한 뒤 다시 무언가를 하는 그 사이 기간이 길어진다면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직장생활을 할 때 가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그럴 때 주위의 직장동료들을 보며 내 위치를 가늠해 보곤 했다. 그렇다고 나와 다른 직장동료를 하나하나 일일이 비교해서 내 위치가 어디인지 찾는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대략적으로 봤을 때 적당히 뒤처지지는 않았는지 정도만 보는 것이다. 사실 위의 과정은 거의 의식하지 않고 일어난다. 그저 어떤 결론만 머릿속에 가끔 떠오르는 것이다.

'잘하진 못해도 그렇다고 못하고 있진 않네' '적당히 발맞춰서 가고 있네' 이런 생각들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어떤 위안을 얻는다. 


그런데 퇴사를 하고 장기간 혼자가 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 '기준'이라는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이 기준이 내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나는 과거 직장생활을 할 당시에 같이 일하는 남직원들(나 포함 4명)과 출근 전에 운동하기로 약속을 했었다. 출근하는 5일 중에 3일은 운동에 나오기로 말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야 당연히 5일 중에 2일을 가기도 힘들었다. 하루 갈 때도 많았고 이틀이면 아주 양호한 수준이었다. 우리 4명 중 단 한 명만 5일 중 3일을 지켜냈다. 

퇴사 후 나는 집 주변 헬스장 1년을 등록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생각했다. 일주일에 4일은 운동을 가자. 결과는? 당연히 3일이면 양호고 2일이나 안 나간 주도 많았다.


어차피 두 경우에서 다 약속된 것을 지키지 못했는데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내 생각에는 아주 큰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속성이다. 첫 번째 경우처럼 다른 사람과 함께 했을 때는 세워둔 계획을 지키지 못했어도 항상 다음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 그래도 다른 사람들 만큼은 했네. 다음 주는 조금 더 해볼까?'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든 이틀이든 어쨌든 계속해서 운동을 가긴 한다.(지금 생각해 보면 퇴근하고 가면 됐을 텐데 왜 그랬을까

하지만 혼자서 했을 때는 그게 안된다. '나 왜 이러지, 왜 이것도 못하지' 이런 식으로 자책을 하게 되고 나중에는 두 가지 중 하나로 귀결된다. 기준을 낮추다 안 하거나 계속해서 자책하며 그래도 다니거나. 보통 더 뒤로 가면 그렇게 자책하다 못 버티고 그만둔다. 


위는 하나의 예일뿐 더 큰 문제는 퇴사해서 장기간 혼자 있게 된 사람의 경우 생활 전반에서 저런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 자신이 너무 선명해지는데 그 자신에게 실망하는 일이 반복된다. 계획 지키기는 늘 버겁고 그렇다고 계획의 난이도를 낮추자니 뭔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만큼 계속 떨어져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답이 없다. 굳이 찾자면 현재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답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쉬웠다면 애초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돌고 도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은데 답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방법에 대해 찾아보자면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한다. 계획을 못 지킨 나를 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계획을 못 지킨 자신에 대해 실망해서 일 것이고 그 실망은 계획을 지키지 않은 나를 나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인정해 보자. 그것도 나라고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었다. 그리고 실망했다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그래도 계획을 지속해 나가려는 나 자신을 칭찬해 주면 좋다. 결국 계획이라는 것이 일주일을 제대로 지켰냐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일주일 한 달 일 년 이렇게 밀고 나가는 것이다. 나 자신을 격려해 주면 그래도 길게 이끌어 나가는데 힘이 된다. 


적어놓고 보니 쓰려고 했던 것을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것 같다. 나의 글 재주도 문제지만 중간에 갑자기 딴생각이 몰려와서 더 그렇게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래도 아마 뒤에 다른 내용에서 또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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