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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돌이~ 내게도 드디어 사랑이(2)

큰일 날 뻔했다.

by 윤혜경
20181012_135958 수리프로필 사.jpg *누나네서 저지른 수리의 첫 사고 : 아빠랑 수리를 남겨두고 엄마랑 자전거 운동 나간 큰누나가 섭섭한 수리는 욕실 청소용구를 거실로 물어옴


큰누나네는 까망이를 즉시 데리고 떠나는 대신 잠시 나랑 놀아주기로 하고 모두 내 곁에 앉았다. 이건 무슨 경우인지... 마음 상한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까망이로 바꾼 이유로 나의 약점을 들춰가며 설명하다니...



'면역저하 치료 중인 큰누나가 주 1~2회 병원에 머무는 시간이 길고, 자주 나 혼자 집에 뎅그러니 남겨지면 내가 못 견딜 거라나... 누나가 건강이 좋아지고 그때도 내가 여기에 여전히 머물고 있으면 데리러 올 수 있을 거라고..., 세상에....'



그리고 큰 누나는 나를 빠안히 바라보았다. 엄마도 나를 자꾸만 힐끗거렸다. 작은 누나는 다시 까망이와 대화하러 손님방으로 가서 테니스 공놀이에 정신을 뺏긴 까망이 옆에 앉아 눈길을 주는 중이다. 누나네 아빠는 탁자 앞의 의자에 앉아서 들고 온 책을 읽으며, 지루한 입양 수속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아니야, 난 흰돌이가 걸려서 안 되겠어. 흰돌이 눈빛이..." 큰누나가 말했다. 그리고 엄마가 당황했다.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네가 반려인이니 다시 생각을 해보자."


누나네는 화창한 토요일에 입양 수속을 도와주느라 사무실에 붙들려있는 직원에게 연속 미안해하고, 나, 3.6 kg 말티스 수컷 흰돌이는 그렇게 입양서류를 세 번이나 쓰고 지우는 과정 끝에 꿈처럼 큰누나네 승용차에 큰누나랑 함께 오를 수 있었다. 나, 흰돌이는 졸였던 마음을 내려놓고, 누나가 담요를 깔은 무릎 위에 엎드려서 길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분리불안의 '여우 울음 민폐 방지'를 이유로 큰누나가 가는 곳 어디에나 동반하는 반려견이 되었다. 특히 누나가 다니는 종합병원의 지하주차장 1층 햇살이 들어오는 한 자리는 아빠랑 내가 누나와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맞춤 자리이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동물매개 심리치료견 자격을 갖춘 지금 나는 특수학교의 아이들이 기억하기 쉬운 이름인 '수리수리 마수리'의 '수리'로 불린다. 사실 누나네는 흰돌이란 이름이 내게 잘 어울린다며 좋아했었다. 정작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이 발음하기가 어려워 영어로도 한글로도 'Suri! 수리'로 바꾸었다. '미션 임파스블'영화의 주인공인 배우 톰 크루즈의 딸 'Suri'와 같은 이름을 지어주다니... 난 남자인데...


시간이 자꾸자꾸 흐른 뒤에 작은누나가 새아기를 출산하게 되었다. 그래서 작은누나네 입양견인 웰시코기 11kg '탐이'가 우리 집에 4주 동안 머물며 누나네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다. 우리 둘은 똑같이 세 살 때 입양되어서 두 해가 지나고 이제 다섯 살이다. 덩치도 나보다 훨씬 크고, 털이 스코틀랜드 양치기 견인 셀티 못지않게 '우수수수' 빠지는 녀석의 털빛이 황금색이다. 나, 수리는 내가 어렵게 얻은 내 가족의 사랑을 녀석이랑 나누어 가지는 것이 영 마뜩지 않다.



내 선택 사항은 아니지만 어쨌건 싫은 건 싫은 거다. 조그마한 덩치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코끝을 찡긋거리며 앞니를 가지런하게 드러내고 경고를 내보이는 수준이다. 탐이는 나를 내려보며 투명 강아지 취급하고 작은 누나 대신 자기를 예뻐해 주는 누나 엄마 옆에 몸을 대고 바짝 앉아있다. 어쨌건 여긴 우리 집이니 탐이가 내게 머리를 숙여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가족들은 내 심사를 짐작도 못하는지.... 그리고 결국 사달이 났다.


큰누나가 우리 밥그릇에 각각 간식을 넣어준 건데 내가 탐이의 밥그릇에도 순간적으로 입을 돌린 거다. 그 순간 나는 공중에 들려졌다. 나도 목을 돌려 탐이의 배를 물었다. 결국 둘 다 등짝에 엄마의 밥주걱을 맞고서야 양쪽으로 물러섰다. 탐이가 한번 더 맞았을게다, 나는 피해자니까...


서재 수리와 탐이.png

*서재에 들어와 누나 발밑에서 편안한 수리와 눈치 보는 탐이


*수리 수면 패드 위의 수리와 탐이


양갈래 머리 20200703_122440.jpg *정수리 사건 후 소독하고 치료. 그리고 정수리를 단정하게 밀어준 미용사는 남자인 나의 머리를 양갈래로 묶으며 예쁘다고 했다 ㅠㅠ.


"어머, 수리 머리.... 어떡해, 수리 정수리 털이 통째로...." 큰누나가 소리쳤다.


역시 내 누나는 나의 부상 부위를 제일 먼저 발견했다. 엄마의 밥주걱이 아니었으면 나는 탐이의 입술에 걸린 채 더 공중에 있었을 텐데... 머리가 100원 동전만큼의 크기로 빠져서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체급이 안 맞는 4kg와 11kg의 싸움에서 이만하기가 다행이라는 누나 엄마는 내게 오히려 눈을 흘겼다. 내 욕심이 과하다나? 내가 '집주인 행세를 심하게 하더라'며 얹혀 지내는 탐이를 도닥거린다.


헐~ 그래도 다행이다. 큰누나는 변함없이 내편이니까. 이후 몸무게 11kg의 탐이는 몸무게 4kg 인 나, 수리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여긴 내 집, 우리 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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