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저하주사

자가면역질환이라고

by 윤혜경

*라벤더 밭 (Lavender, 7.5/ 12.3 탄생화, 꽃말: 기대)(출처: 꽃나무 애기 Band)



큰누나는 갑상선전절제 수술 후 덩달아 제거된 부갑상샘으로 인한 칼슘조절 장애와 자가면역 뇌염을 진단받고 2년째인 2016년 1차 단계 면역저하 주사를 맞느라 1주일 동안 입원했다.


매일 링거로 느리게 흡수되게 조정된 면역주사를 맞는 큰누나는 불안한 내색을 감추고 평화로운데, 의사의 진단에 따른 면역주사에 동의한 누나 엄마는 불안한 마음이 두근거렸다. 일주일간의 주사 입원 치료 이후에도 의식소실과 경련 증상이 발생하며 부상을 당해 병원신세를 졌다. 이후 2차 단계 면역저하 주사를 월 1회 주사실에서 4개월 동안 맞았다.


대형 종합병원 주사실에는 몇 개의 침대와 편안하게 기대어 주사를 맞을 수 있는 대형 인조가죽 의자들이 있다. 물론 그것도 부족하여 휠체어에 앉은 채 링거를 꼽고 있는 환자들도 있다. 이곳 역시 대기 환자들이 문밖에서 호명을 기다리고 있다.


큰누나는 앉은 자세가 길어지면 손과 발이 저려서 침대를 부탁했다. 기다렸다가 침대 배정을 받으니 커튼을 두른 공간에서 편안하게 면역저하 주사를 4시간 동안 맞는 동안 깊은 잠에 들었다. 누나 엄마는 누나 침대 옆 좁은 공간의 접이 의자나 대기실 의자에 앉아 책을 보며 큰누나의 자가면역 치료가 마무리되는 시간을 기다렸다.


누나 엄마는 누나의 상황이 여전히 현실적이지 않다. 그래서 1인당 주어진 시간인 신경과 외래진료 2~3분의 시간에 의사의 눈치를 보면서 "지난번 설명을 해주셨지만 저는 갑상선 전절제 환자가 수술 후 왜 저런 증세를 보이는지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요" 하며 원인을 새삼스레 묻곤 했다.


자가면역질환의 권위자인 전문의는 "이미 지난번에 설명했는데... 병이란 게 다 처음이 있는 거죠. 연관이 없는 질환일 수 있는데 발생 시점이 그렇게 우연히 맞아떨어졌을 수도 있으니까." 했다.


의식상실로 응급실 입원을 거쳐 다시 외래진료를 예약하여 방문한 첫날, 누나 엄마는 모처럼 현장 사진을 찍을 용기가 났던, 그렇게 증거를 수집해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누나가 욕실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피를 흘린 사진'을 보겠냐고 물었다.

전문의인 40대 후반쯤의 의사는 무뚝뚝하게

"안 봐요. 맨날 보는 게 그런 건데 뭘."


했다.


모처럼 누나의 이벤트 현장 증거수집에 성공한 엄마의 소심한 노력이 재 (ash)로 변해 손가락 사이로 증발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피를 흘리는 딸의 현장 사진을 찍어 의료진의 진단을 위한 근거로 제출하고자 몹시 소심했던 엄마의 떨리는 마음은 그렇게 접혔다. 훨씬 비상상황을 숱하게 경험하는 의사에게는 너무도 사소한 상황일 수 있을 텐데... 누나 엄마 혼자만 심각하다.


약 처방을 받은 걸로 할당된 2~3분이 모두 채워진 진찰실을 나와서 미진한 마음인 채 도움 간호사에게로 간 엄마는 다시 누나의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무뚝뚝한 의사에 대해 초등학생처럼 하소연을 했다.


도움 간호사의 짧지만 환자 보호자 눈높이에 맞춘 응대 덕분에, 약국을 향해 큰누나와 함께 의사의 처방전을 들고 걸어갈 때쯤에는 누나 엄마의 우울과 분노 수치가 조금 낮아졌다. 그래서 신경과 앞에 도움 간호사 코너가 아예 자리를 하고 있나 보다. 2~3분 진료의 환자 목마름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실 환자가 유난히 많이 대기하는 신경과의 단답형 전문의는 그동안 큰누나의 불편한 상황들을 잡아주기 위해 환자와 보호자의 증세 호소를 들을 때마다 진료에 필요한 타과의 검사를 빠르게 의뢰함으로써 환자의 불안감을 누그러뜨리도록 도움을 주었다. 의사가 퉁명스럽다기보다는 같은 상황에 대한 이해를 한사코 미루고, 근심만 품은 멀건 환자 보호자가 답답했을 터이다.


2단계 면역저하주사를 4개월째 맞은 큰누나는 엄마의 기대와 달리 마지막 주사를 맞은 지 10일도 안되어서 욕실에서 쓰러지며 부상을 크게 당했다. 엄마가 잠시 누나 앞을 비우고 부엌으로 차를 끓이러 나간 사이 샤워를 하러 들어간 큰누나가 안경을 쓴 상태로 넘어지며 화장실과 샤워실 사이의 샤워실 문턱에 고개를 숙인 채 엎드려 있었다.


누나가 선채 의식을 잃을 때 욕실 밖으로 울려 퍼진 굉장한 소리는 엄마의 공포심을 집 천정까지 치닿게 했다. 안경은 찌그러지며 날아가서 다행이다. 샤워실 미닫이 문의 강화유리도 열린 채 무사했다.


샤워실과 욕실 바닥에 부딪치며 누나가 흘린 피는 타일 위로 번지며 엄마에게 포비아 (phobia)를 덮어 씌웠다. 2차 단계의 면역저하 주사를 4번째 맞고 안심을 유지 중인 열흘 째 되던 날에.


"약을 올려서 좀 더 세게 써보죠. 이건 3단계 면역저하 치료인데 역시 의료보험 혜택은 없고 약값이 좀 많이 비싸요. "


"2차까지 맞은 상태에서 열흘만에 이벤트가 나타난 건데... 비전문가인 저는 면역저하 치료 효과에 공감이 어렵습니다. 교수님. "


"일단 생각해보시고 결정하세요. 입원실을 빨리 잡아야 하니까."라는 전문의의 말을 들으면서 엄마는 갈등 중이다.


면역저하 주사 치료를 하며, 불안한 마음에 행여 감기균 따위가 얼씬거리지 않도록 사람들 많은 곳은 될수록 가지 않고,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손세정제를 상비하며 끊임없이 닦고 또 닦고...


눈에 들어오는 병원 화장실마다 들러서 비누로 꼼꼼하게 손가락을 씻어내며 다니는 큰누나와 엄마를 위해서 작은누나와 의사인 누나 친구, 그리고 신경과 전문 지인 의사들의 조언을 모으기로 했다.


"차라리 병원을 옮기자, 엄마. 언니는 이 병원에서는 계속 고생만 하잖아~. 병원하고 언니의 인연이 안맞나보다"


작은 누나는 엄마에게 전원을 권했다. 누나 엄마는 이미 큰누나를 데리고 예전 주소지에서 엄마가 지속적으로 다녔던 일원동과 풍납동 대형 병원을 간 적이 있다. 이미 응급실과 외래와 입원병동 1인실부터 4인실까지 눈에 선하게 특정 병원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다른 병원은 두 곳 모두 일단 멀고 새삼스러웠다.


그리고 풍납동의 갑상선과에서는 엄마보다 스무 살은 족히 젊어 보이는 남자의사가 습관적 반말 짓꺼리로 응대했다. 습관이 되어 말뽄새가 그 모양인 의사 본인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 누나 엄마는 녹음해서 귀에 들려주고 싶게 불쾌했다.


엄마는 추후 예약했던 24시간 소변 검사도구 등 받아온 검사자료들을 만지작 거리며 신중을 기하다가 결국 이왕 지출한 병원비를 포기한 채, 예약일을 하루 앞두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그 병원의 다음 예약 일정을 전화로 취소했다.


엄마는 실력이 하늘에 닿는 의사일지라도, 한글 사용도 제대로 못하는 기본이 안된 무례한 의사와의 지속적인 면담은 생각만으로도 두통이 왔다. 새삼스레 낯선 환경에 끈기를 짜내며 적응을 요하는 상황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이제 누나 엄마에겐 없다.


일원동 병원의 지인 의사는 "그래도 그곳이 최신 면역저하 치료 관련 데이터가 국내에서 가장 많이 모여지는 곳이라, 신경과는 그곳에서 치료를 받는 게 좋겠다"고 하며 그 의사의 모교이기도 한 누나의 수술 병원을 계속 다닐 것을 제안했다. 대신 누나가 다니고 있는 병원에 근무하는 후배 의사를 추천해주었다.


150페이지가 넘는 누나의 진료기록과 수차례의 뇌파검사, MRI, CT촬영 결과 등을 바쁜 와중에 밤잠을 줄여서 일주일에 걸쳐 꼼꼼히 검토한 작은누나 의사 친구와 신경과 지인 의사들은 3차 면역저하 치료를 권유하지 않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자가면역질환 판단 근거 4가지 중 2가지 조건이 충족되어 자가면역질환 치료를 시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현재 2단계까지의 주사치료 결과 효과를 가늠하기 어렵고, 3차 단계의 치료는 오히려 면역저하 주사 치료로 인한 부작용 가능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라고 했다.


누나랑 누나 엄마는 그동안 도움을 준 면역저하 치료 전문의를 한번 더 방문하여 '3차 면역저하 치료'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치료를 미루겠다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모험을 시도했다, 신경과 전문의를 같은 병원 내에서 선량?해 보이는 인상의 의사로 바꾸는 것으로.


동일 병원 내에서 의사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지만 사실은 이미 한 번 외래진료 신청을 해서 인상이 좋은 사진의 주인공인 신경과 전문의를 큰누나와 함께 두 번 방문해서 누나 상황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두 번째 선택한 신경과 전문의는 면역저하 치료는 시도해보았으니 이번엔 약물치료를 하며 큰누나의 경과를 관찰하자고 했다.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니 그동안의 의논 과정에서 쌓인 두려움과 막막함이 사라졌다. '면역저하 주사도 안 듣는데 약물치료로 치유가 될까?' 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서 문득문득 일어나지만, 누나 엄마는 일단 정했으니 앞만 보고 기도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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