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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서

비대면 학위증

by 윤혜경

2022년 봄학기에 졸업식이 없이 학위기만 수령하고, 아쉬운 마음에 도서관과 학과 건물 입구에서 사진을 찍었던 큰딸 때처럼 2022년 가을학기 졸업식도 밋밋해지나 보다.


2022년 가을학기... 이번 학기에도 다시 퍼 지기 시작한 <코로나 19>의 잔불 놀이에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졸업식이 취소되었다'는 조교선생님의 알림 공지가 떴다. 대신 학위기는 졸업식 예정일 전날까지만 학과 사무실에서 수령이 가능하고, 이후에는 교학과에서만 수령하게 된다는 공지가 추가되었다.


대학원 석·박 과정은 3월에 입학하거나 9월에 입학하여 4~6학기를 다니는 과정 등이 있다. 입학이 일 년에 2번 있으므로 졸업도 가을학기 졸업과 전통적인 2월 졸업으로 2차례 졸업식이 있다. 졸업앨범은 가을학기 졸업생이 미리 해당 학기에 사진을 찍어둔 후 2월 졸업생의 졸업사진과 합해서 1년 1회 봄에 발행한다.


돌아보면 일 년여 동안 연구자료를 준비하고, 그 자료를 토대로 연구계획서와 연구수업에 대한 세세한 보고 등 IRB (생명윤리 위원회) 심사를 통과하는 데만도 자료 수정 과정까지 포함하여 추가로 12 주가 걸렸다.


연구자뿐만 아니라 보조연구팀, 지도 교수님, 학과 교수님들, 조교 선생님, 딸의 초등학교 은사님, 초등학교 선생님들, 학부모, 참여 아동, 그리고 치료도우미 동물로 활약한 말티스 '수리'까지 정말 여러분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운 좋게 연구수업을 잘 마치고 연구결과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국내 자료가 거의 없어서 추가로 1년 동안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들, 일본, 홍콩, U.A.E. 등 아시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세계의 Animal Assisted therapy와 Reading Dog 프로그램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머릿속의 지식과 주변 환경과 학교 일정이 맞아떨어진 시점부터 문밖출입을 멈출 만큼 집중해서 겨우내 작성한 학위논문 원고를 제출하였다.


물론 이미 방향, 대상, 연구방법 및 장소, 제목, 분석방법에 이르기까지 계단마다 지도 교수님과 상의하는 일은 필수이다. 학교와 같은 기관에서 연구수업을 하게 되면 대학원 관련학과에서 정식으로 공문서를 띄워서 협조를 요청하는 일까지 쉬운 과정은 1도 없다.


다시 이 과정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반복한다면 한쪽 팔 마비 정도에 그치지 않고, 아주 흰머리를 뒤집어쓸 것 같다.


봄부터 예비심사에 들어가서 다섯 분의 심사위원이신 교수님들의 평가를 받으며 최종 심사까지 오·탈자를 교정하고, 표현을 바꾸고, 추가하고, 삭제하고, 흐름에 맞게 단락 순서를 바꾸고, 표와 그림을 삽입해 가며 단계별 심사를 통과하여서 꿈처럼 가을학기 졸업생이 되었다.


내가 다닌 대학원의 경우 가을학기에 졸업하는 기수는 한 학기를 기다려서 전통적인 졸업시즌인 2월 졸업 예정 석. 박사들의 졸업사진과 함께 한 졸업 앨범을 받는다.


총장님과의 악수와 덕담을 꿈꾸었던 내 인생의 마지막 학위 졸업식은 COVID 19 덕분에 학교 강당에서의 멋진 졸업식은 고사하고 아예 계획조차 없다.



석사 학위복은 학교에서 정해진 비용으로 대여가 가능하지만, 수가 워낙 적은 박사학위복은 본인이 개인적으로 서울의 학위복 전문 대여업체와 연락하여 대여를 해서 학교에서 취소된 졸업식날 입고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공지만 받았다.


아. 학위복 대여비가 발생하지 않았으니 비용이 절약되는... 반갑기보다는 조금 섭섭하다.


논문을 모두 마무리하고 교수님 다섯 분의 심사와 검증을 거쳐 최종 수정을 마친 뒤, 마지막으로 감사의 글을 쓰는데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굽이굽이 수년에 걸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도움을 준 이는 엄마를 신뢰하고 마음을 열어준 큰 딸이다. 의사들이 선택하고 싶다는 종류의 암 수술을 받은 후 함께 사라진 부갑상선으로 인해 전해질 균형이 깨어지고 자율신경계 질환이 발생하며 아무 때나 의식소실이 이어지던 시간들... 수술 후 여러 해가 지나고도 6 정의 칼슘과 비타민 D. , 마그네슘 등의 칼슘 조력제를 함께 먹어도 칼슘 수치가 8을 넘기지 못하거나 별안간 14까지 치솟아 급성신부전으로 입원을 반복하던...


간단한 수술이라던 갑상선 전절제는 평화롭던 가정에 불운의 그림자를 씌우며 예기치 못한 병원 출입을 길게 이어주었다. 몹시 고단했던 8년여의 긴 기간을 잘 견디어 준 딸. 그리고 엄마와 똑같이 밤샘 원고 수정에 수없이 동참했던... 여전히 20정 가까이 알약을 겹치지 않게 시차를 두고 따로따로 복용하는 일이 매일 반복되고 속은 늘 거북하고 매스껍고 울렁거리는 딸은 자신의 울렁거림이 심해지면 혹시 식사 재료로 인한 일시적인 증세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엄마는 배 속이 괜찮아요?"


하고 묻는다. 엄마인 나는 딸이 물을 때마다 매번


"나는 괜찮은데... 불편한가 보네." 하고 답한다.



노년의 삶이 이렇게 뜬금없는, 비경제적인 학위 공부로 이끌어지다니... 파리한 낯빛의 큰딸 팔을 붙잡고 함께 공부를 시작한 시간 이후 5년 여가 되어서 졸업사진 속의 얼굴은 세월의 무게로 확연히 차이가 난다.


코로나 덕분에 염색을 안 하고 자연스레 생활하여 피부도 머릿결도 편안하지만 자주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 하는 갈등을 품은 채로.


욕실에서 샤워기를 틀고서 자주 소리 내어 물어본


"***, 너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니? "


그렇게 돌아 돌아서 결국 시드니 유학시절이 바탕이 되어 한국에서는 이제 새롭게 움트는 중인 학문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셈이다. 풀타임 출근하는 일은 퇴직 연령이니 버거운 체력이지만, 고맙기 그지없는 컴퓨터를 활용해서 국제기관의 통계를 수집하거나 각국의 도서관과 학회, 관련 학술지 홈페이지, 연구기관들의 원문 자료들을 들여다보는 일의 즐거움은 오늘도 쉬지 않고 48시간도 가능할 만큼 하늘 닿게 크다.


이제 동물매개치료 관련 국내 연구자들과 동물매개 읽기 프로그램의 혜택을 필요로 하는 문해 능력 부진 학생들을 위해서 해외연구 자료들을 소개할 계획을 세우며 새삼스럽게 지난 시간들이 고마워졌다.


"***~, 넌 지금 잘하고 있어. "


앞만 보고 걷던 걸음 중에 예고 없이 멈춰 세워진 시간들, 멈춰 서서 멍한 눈으로 하늘을 보아야 했던 시간들, 십자가를 돌려세우고 약하디 약한 기도마저 멈춘 시간들, 순한 딸의 아픔이 떠오를 때마다 늘 눈물이 가득 찰랑이는 눈물샘들, 뒤로 걸음 치던 시간들에 쌓인 경험들도 오늘의 기반을 쌓는 과정이었음을 이제야 인지하는 중이라니...


"My precious, precious child,

I love you and I would never leave you.

During your times of trial and suffering, when you see only one set of foot prints,

it was then that I carried you. "


네가 걸어온 지난 시간 중 가장 고단한 시간들에 모래 위에 찍혀있던, 그리하여 네가 발견한 오직 한 사람만의 발자국은 내가 널 업고 걸었던 내발자국이란다.


로 끝맺는 시 <Foot Prints> 액자는 내 컴퓨터 모니터 옆에 잘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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