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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빠른 오지랖

자전거를 타고 외출하기 연습

by 윤혜경
*구청에서 마련해 준 2평 텃밭에 남아있는 상추 포기들을 월동준비 차 베란다에 옮겼다. 차가운 가을 아침 상쾌한 기온의 베란다에서 초록빛 상추와의 눈 맞춤 기쁨은 덤이다.




"자전거 타고 혼자 마트 다녀올 수 있을까? 엄마랑 같이?"

"아니, 이제 어지러움도 거의 멎어서 혼자 다녀올게요."


눈에 띄게 편안해진 딸을 보며 새삼스레 감사하다.

딸의 낮아진 혈압이 도통 오르지 않아서 관찰해 오던 끝에 지난주 대학병원 외래에서는 혈압을 올리는 약을 조금 더 늘렸다.


올봄부터 의사의 권유에 따라 혼자 외출을 단계별로 시도 중이다. 딸아이는 용기를 내는데 정작 엄마의 불안감이 비정상이어서 딸이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엄마의 심장박동이 드세다. 딸의 현관문 여는 소리 직전에는 급기야 뒤통수에서 심장이 뛴다. 이럴 땐 컴퓨터 서류 작업을 하기도 어려워서 온갖 뉴스들 중 아픔이 많은 소식들에 더욱 공감하고, 스스로 마음을 다독거리며 <헬리콥터 맘에서 벗어나기>의 필요성을 절실히 실감 중이다.


현재 문제는 환자의 엄마에게 있는 게 틀림없다. 아직은 큰딸 역시 혼자 나가서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에 서면 호흡이 가빠지고 두려움이 점점 커지지만, 집 근처 문방구와 800m 거리의 <1000원 Shop> 방문을 반복하며 점점 나아지는 중이니 절반의 성공 중이다. 얼마 전에는 집에서 대중교통수단으로 1시간 거리의 대학병원에 혼자 가서 혈액과 소변 검사를 하고 왔다. 세 번째 시도이다.


뇌파 검사를 하던 날은 전날부터 긴장하는 환자를 위한 든든한 보호자로 환자 아빠가 동행해서 함께 승용차로 다녀왔다. 환자가 검사를 마치고 올 때까지 환자의 아빠는 환자의 반려견인 '수리'와 함께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리며 책을 읽는다. 그럴 때 말티스 수리는 오직 큰누나가 돌아올 방향에 집중해서 시선을 둔 채 큰누나에 대한 그리움을 가득 실어 기다린다.

2015년 갑상샘 암 수술과 함께 소실된 4개의 부갑상샘의 부재로 시작된 칼슘조절 장애와 자율신경계 조절 장애로 의식소실 이벤트가 몇 차례 반복되며 신부전과 저혈압, 그리고 빈맥과 부정맥, 기립성 빈혈이 추가되고, 입원과 외래 방문을 통해서 관련 검사들이 이어졌다. 예상치 못했던 병증이 이벤트들의 원인으로 추정되었을 뿐 수학 계산처럼 명확하게 나온 원인 진단은 없었다.


지속적으로 약을 '바꾸고 늘리고 줄이고'를 반복하며, 환자의 상황을 관찰하고 있는 보호자의 보고와 검사 결과들을 토대로 칼슘, 나트륨, 마그네슘을 비롯한 전해질 균형 여부와 신장 사구체 여과율, 부갑상샘이 혹여 생환 중인지 등을 살펴보는.....


의식상실과 함께 쓰러지면서 부상이 반복되자 대학병원 주치의는 환자 혼자 외출하지 않기, 차도로 갑자기 넘어져서 더 큰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차도에 가까운 쪽은 보호자가 서고, 환자는 보행자 도로 안쪽으로 다니기, 수영과 자전거 타기 멈추기, 자동차 운전하지 않기, 욕실 사용 시 보호자가 함께 있기 등의 지침을 건넸다.


오늘 엄마의 제안에 대답하는 큰딸도, 딸의 마음을 묻는 엄마도 일상을 향해서 노력하는 중이다. 사실 지극히 정상인 일상을 당연하게 품지 못하고 딸의 의식소실 이벤트로 인한 트라우마를 8년째 앓고 있는 탓에 많이 소심하다.


조금 전에 온 가족이 함께 다녀온 마트에서 산 반팔 티셔츠 사이즈를 더 키우고 싶어 의도적으로 큰딸에게 부탁해 본다.


마트에 도착한 큰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혹시 자전거 잠금장치가 집에 있어요? 자전거 바구니에 넣어두었는데 이곳에 도착해서 보니 잠금장치가 사라졌어요."


"아, 네가 자전거를 타고 간다고 해서 네 자전거 바구니에 이것저것 담겨있던 물건들을 모두 꺼내서 신발장 옆에 내려놓았어. 내가 자전거 잠금장치까지 꺼내놓았나 보다, ㅠㅠ..."


"괜찮아요. 최신 모델도 아닌데... 설마 분실되진 않을 거예요. "


경쾌하게 답하는 딸에게 멋쩍어졌다. 딸이 이용하기 쉽게 현관 입구에 놓아진 자전거 앞 바구니에 엄마도 아빠도 재활용 수거일에 배출할 물건들을 담아놓곤 한다. 자전거 타고 다녀오라고 하고선 재활용 물품들을 미리 빼놓는다는 게...


손 빠른 오지라퍼다.

이제 딸에 대한 지나친 배려를 줄여가는 중인데 여전히 습관적으로 손이 먼저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을 털어내는 중인 딸의 경쾌한 전화 목소리가 건강해서 오늘 한 계단 더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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