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우렁각시 12화

처음으로 만든 포기배추김치

몰라서 용감한 남의 편

by 윤혜경
*비경제적인 일에 매진하는 모녀로 인해 심신이 고단한 우렁각시를 위한 생일 축하예요



호주에서 온 가족이 거주하던 시절, 직항노선이 생기기 전에는 한국 가정에서 부인들이 당시 일본이나 홍콩을 거쳐서 14시간이 넘는 비행거리의 한국에 다녀올라치면 사골 우린 국부터 준비하곤 했다. 1000L 종이 우유 팩들에 잘 고아진 사골국을 담아서 냉동실 선반에 나란히ㅡ 세워두고, 포기김치만 담가 두면 아내들이 서울에서 방학 동안 오롯이 머물다와도 괜찮다고들 했다.


당시 한국 배추는 없었지만 일찍 자리 잡은 중국 농장에서 한국식품 가게에 배추를 귀하게 공급하였다. 그녀들은 국내 품종보다 배춧잎이 두꺼워 물이 많이 나오는 단점이 있지만 귀한 8포기 한 박스의 중국 농장 배추로 배추김치를 담갔다.


그 시기에 양상추는 lettuce, 연한 연둣빛 양배추는 cabbage, 초록잎 큰 배추의 영어 명칭은 Chinese cabbage였다. 해외 거주인들에게는 존재만으로도 고마웠던 귀한 배추 포기... 중국 교민들은 배추를 주로 데쳐서 오이스터 소스를 뿌려 먹고, 한국 교민들은 김치를 담그고, 거친 겉잎으로는 시래기 된장국을 끓였다.


남겨진(?) 남편과 자녀가 사골국을 데워서 김치만 얹으면 식사가 해결된다나. 밑반찬 서너 가지만 추가로 준비해두면 한국으로 날아가는 주부의 마음이 가볍다고들 했다. 여행을 앞둔 서양 엄마는 상상도 하지 못할, 한국 엄마들의 지혜 가득한 가족사랑으로 여겨졌다.


요즘이야 1회용 레트로 식품 (retort food) 이 워낙 잘 만들어져 나오니 밑반찬 걱정은 해당 없겠지만, 조그만 입술을 벌려 새끼 제비처럼 먹는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엄마로서 아이들을 위한 반찬 준비의 즐거움이 솔솔 했다. 냉장고에서 꺼낸 유리 용기의 음식을 동화 코알라의 꽃무늬 접시처럼 예쁜 접시 세트에 옮겨 놓아주면 반짝거리던 그 시절의 어린 눈빛들은 오늘도 엄마를 과거지향적으로 만든다.


"엄마, 오늘 저녁 반찬은 뭐예요?"


매일 학교에서 돌아와 가볍게 씻고 과일 간식을 먹으며 묻곤 했다. 허기를 달랜 후 2개의 악기 연습을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전 묻곤 했다. 국내와 달리 공부 부담은 적으니 악기 연습만 끝나면 좋아하는 책을 마음 놓고 읽을 수 있었다.


엄마 반찬을 좋아하니 기쁨으로 매일 새 반찬 준비 습관으로 아이들의 기대를 올려놓고선, 어느 날 정작 어린아이의 질문을 문득 부담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돌아보면 숨 막히게 예쁘고 엄마 존재에 대한 어린아이들의 안온함과 즐거움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청소와 정리, 다림질, 세끼 식사 준비등 의식주에 치우친 집안일과 이런저런 가족 뒷바라지 등 다람쥐 첫 바퀴 같은 일상의 반복에 지친 젊은 엄마의 감정은 '책을 멀리하는 날이 켜켜이 반복되면서 퇴보하는 자신의 일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감정 기복이 심하여 자주 비교육적이었다.


가끔은 신데렐라 새엄마의 대사 톤 (tone)이 낯선 환경에서 영어 의사소통에 분투 중인 초등학교 저학년 두 아이 앞에 쏟아지기도 했다. 자고 난 뒤 침대 머리맡 바구니에 잠옷 정리, 침대 정리, 읽은 책 제자리에 꽂기 따위 같은 사소한, 정말 사소한 일 따위로... <생활습관 교육> <가정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쏟아내는 엄마의 갑질이자 지적질로 점철된 선생질이다.


결국 정신이 돌아오면 "엄마가 미안해"로 무마하지만, 영문도 모르고 보드라운 마음을 서열문화에 베인 상처가 쌓였을 터. 돌아보면 아이들의 학교뿐만 아니라 내게도 부모 자격을 갖출 수 있는 교육을 해주는 <부모학교>가 필요했는데...


오늘 같은 편리한 반찬의 시대라면 나았을까? 동네우물에 모여 방망이 빨래를 하고 아궁이에 불을 때던 부모님 시대에 비하면 세탁기, 냉장고, 청소기, 동선 절약의 부엌 혜택을 누리고 살면서도 더 편리함을 추구하고 있는 자식의 변명일지니.


김치 만들기는 여자도 머리가 무겁기 짝이 없는 일인데, 얼마 전 포기배추김치가 거의 떨어질 무렵 남편은 무모하게도 직접 김치를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직장 시절의 지시형 말투에서 협의형 말투로 바꿔지고 있는, 말씨가 '예뻤다 미웠다'를 반복하는 남편은 말씨가 참 고운 여성 요리사의 김치 담그기 비법을 선택해왔다. 나도 그녀의 차분하고 고운 말씨가 좋아서 딸이 아프기 전에 가끔 요리 시연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이는 찹쌀가루로 묽은 풀을 쑤고, 고춧가루를 섞고, 멸치액젓과 볶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기타 양념들을 첨가할 계획이라고 했다. 부엌에 두 사람이 서는 일은 남편에게 배우는 운전교습만큼이나 위험하다. 옛시대에 곳간 열쇠를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갖고 있는 것처럼 불편한 감정이 솟구치기 쉽다.


그이의 퇴직 후 설거지 방식과 찬장 정리에 대한 몇 번의 감정 다툼 후에 싱크대 앞에는 한 사람만 머물기를 원칙으로 하는 중이다. 초록빛 생배추 2포기가 부엌에 들어 누운 그날 부엌은 남편이 오롯이 차지하고, 집 김치 만들기 경력 38년짜리 아내인 나는 컴퓨터 방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처음으로 도전하는 포기배추김치...


요즘은 저장 시설도 재배시설도 과학을 입혀서 사절기 내내 포기배추김치를 즐길 수 있지만, 2000년대 전에는 11월부터 준비하는 겨울 김장 김치로 봄까지 지내면 입맛이 적당히 지루해진다.


그럴 때 모진 추위 속을 견디느라 납작하게 눌린 듯 펼쳐진 참 볼품없는 봄동배추가 등장하고, 봄에 뿌려둔 열무와 얼갈이가 잘 자란 초여름부터는 열무김치와 얼갈이배추김치 (두 아이는 빼빼 김치라고 불렀다)가 입맛을 돋우는 상큼한 김치 노릇을 했다.


또 초보주부 시절엔 포기배추의 소금 절이기부터 들쭉날쭉 이어서 배추를 짧게 잘라서 담그는 휴게소 스타일의 배추김치를 담그는 게 실패를 줄이는 방법이었다. 어쨌건 그 당시에는 수고스럽고 고급지게 보이는 포기배추김치는 오직 김장김치가 담가져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겨울의 사치였다.


손님 초대 상차림에 열패감을 느꼈던 젊은 시절 1994년 귀국 직후 남편 친구의 부인과 함께 한 일은 번개 치듯 마감된 한식조리 등록에 실패하고 어린아이 둘을 건물 위층 도서관에 넣어둔 채 복지관 아래층에서 제과제빵 배우기였다.


양식요리와 달리 우리 김치는 배추의 두께와 크기가 일정하지 않다. 계량이 일정한 제과 제빵과 달리 김치는 특히 단순한 무게 설정이 어렵다. 요리용 저울로 개량이 가능하여 맛이 비슷하게 만들어지는 제과제빵 분야에서 맛이 천차만별인 포기배추김치 만들기보다 서툰 주부의 성공률이 더 높아 보였다.


첫 번째 포기배추김치에 겁 없이 도전하는 남편의 실험 결과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남편은 접시에 불그레한 배추김치 조각과 포크를 담아와서 내밀며 맛을 보고 간을 조절해달라고 했다.

keyword
이전 11화잘났어,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