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우렁각시 11화

잘났어, 정말~**

여편과 남편

by 윤혜경


2001년은 40대 초반에 접어든 큰딸인 나는 호주의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마무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어렵기 짝이 없는 통. 번역사 시험도 봐야 하고, 한국에서 초연되는 유명 뮤지컬 관련 번역까지 맡아서 능력 대비 과부하로 좀 분주하던 상황이었다.


마침 공직에서 함께 은퇴하신 부모님은 남편 없는 외국에서 학업을 계속하는 큰 딸의 간청에 중2. 고1 손녀들의 보호자가 되시고자 태평양을 건너서 3개월 비자를 들고 오셨다. 큰딸인 나는 그렇게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친정부모님과 함께 해외에서 3개월을 지내게 되었다.


부모님의 엄격한 가정교육 아래서 자란 자식이 15년여의 결혼생활 동안 남의 편인 남자에 맞춰 살면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빗물이 바위를 침식시키듯 그렇게 남의 편인 남자의 기준과 절충하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변했었나 보다.


안동 김 씨, 김해 김 씨, 전주 이 씨, 파평 윤 씨, 해남 윤 씨, 진주 강 씨, 밀양 박 씨...... 하듯이 상당히 고지식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남의 입장에 시선을 많이 쓰는 것을 예의범절로 아는 뼈대의 가정에서 70년대의 청년 시기를 보낸 여자가 고지식한 듯 자유분방한 듯 도대체 기준이 일정하지 않은 돌연변이 스타일의 남의 편에 적응하는데....적응이라기보단다는 적절히 수용하고, 가끔 못본척하거나 난감한 수준의 타협에 40여 년은 걸린 듯하다.


남의 편에 적응하기 위해서 엄격하고 반듯한 성품이신 부모님의 큰딸이 지닌 기준이 담장을 한 층씩 허물어내듯 조금씩 조금씩 달라졌나 보다. 결국 결혼 후 15년 여가 지나면서 같은 주소에서 여전히 살게 된 비결(?)은 친정에서는


"큰 애가 K서방에게 시집을 가더니 많이 변했어"


였을 테고, 시댁에서는


" 우리 아들은 쟤랑 결혼하더니 변했어."


였을게다.


물론 속 깊으신 부모님들이 입 밖으로 그 말을 내어서 전달한 일은 없다.


지금 돌아보니 언뜻언뜻 그런 일들이 있었겠다 싶은 시간들이 아련히 기억난다. 눈치 없는 배은망덕한 자식으로 인한 불편함과 섭섭한 상처를 도닥거리셨을 시간들...


결혼초에 잠든 돌잡이 첫째를 놓아둔 채 나의 원래의 자리를 찾기 위해 몇 시간 동안 가출을 감행한 적이 있다.


그 시대는 술 권하는 사회이고, 술잔을 돌리는 시대였을 게다. 남의 편은 늘 그렇듯이 평일뿐만 아니라 오전 근무로 끝나는 토요일조차도 퇴근 후 팀 동료들과 차례대로 핑계를 만들어서 술을 권커니 잣 커니 들이마시고 늦게 돌아와서 코까지 시끄럽게 골며 잠이 들어있다. 그날은 남의 편의 술냄새에 대한 혐오스러움, 그리고 시간을 그렇게 허비하는 남자의 어리석음을 참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준비 없이 남의 편에 대한 치솟는 분노만 껴안고 지방에서 근무하는 친구에게로 가는 밤 열차를 목표로 나간 서울역 주변의 밤거리는 당시 여관이나 여인숙으로 불리는 숙박시설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눈부시게 활약하는 곳이었다.


남의 편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에 놀라서 경찰관에게 택시번호를 적어놓도록 부탁하고 덜덜 떨며 귀가택시를 탔다. 돌아온 싱글이 되기로 큰맘 먹고 결행한 시도가 맥없이 무너지며 안전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때까지도 아내의 반란은 꿈에도 모르고 남의 편은 아주 평화롭게 잘 자고 있었다. 물론 아기도 함께 쌔근쌔근 잠들어 있어서 아기 엄마의 통 큰 일탈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막을 내렸다.


출처: Daum 블로그



대학 졸업장을 남편과 같이 지녔어도 여자는 결혼과 임신을 기점으로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 일이 당연시되었다. 아내 역할을 수행하는 전업주부가 된 여자들의 경우에는 공부에 매진했던 머리는 옆으로 밀어둔 채 종일 쓸고 닦고, 정리하고, 시장 보고, 반찬을 준비하고 아기를 돌보고, 양가 집안의 대소사에 예의를 갖추느라 작은 머리통 속의 혈관이 모두 바쁘다.


새벽 별보기로 집을 나서는 남의 편은 12시 통금 시간에 맞춰서 퇴근하므로 아내는 남의 편과의 소통시간이 부족하여 가슴은 늘 답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긴 인생을 위한 발걸음은 엄마의 길 안내에 달려있으니 아이가 자랄수록 아내보다는 엄마의 역할에 차츰차츰 더 비중을 두게 된다.


그 시대의 남의 편들은 아내에게 다소 권위적인 경향이 있고, 아내들은 시댁 위주로 대소사를 결정하는 남의 편의 편향성에 겉으로는 순응하게 되었다. 자신을 성인으로 키워서 혼수 지참과 함께 결혼을 시켜준 친정의 사정에는 소극적으로 지내온 아내들이 점차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유용한 정보, 학군 선택, 이사, 부동산 매입, 매도 등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결정권자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을게다. 유감스럽게도 내게는 해당이 없는 부분이지만...


와중에 학군과 학원 선택과 크고 작은 울퉁불퉁 사춘기 자녀의 일탈을 잘 다독여서 목표한 대학에 넣는 순간 (?), 엄마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사실은 자녀가 12년의 시험 준비를 한 덕분에 받아 든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정보와 뒷바라지 또한 만만찮은 고단 함이므로 대한민국에서 자녀의 대입 결과는 엄마의 업적이 된다.


그렇게 아내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고, 그동안 참여한 자모 모임들이나 복지관, 평생교육 취미반에서 이어진 모임도 많아서 평일에도 주말에도 바쁘다. 바깥일에 온 힘을 다하고 집안 대소사는 아내에게 밀어두었던 남의 편들은 은퇴하고 나서는 갑자기 머쓱해지며 조용조용 취미생활을 한다.


집에만 머무르며 정보가 어두웠던 아내에게 답답함을 느끼며 바깥 생활에 혼자 바빴던 남의 편들의 젊은 시절과 달리 노년기에는 아내들의 정보가 더 빠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아들 (형, 또는 오빠)를 뺏겼다는 피해의식으로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시댁 적응 과정을 통해서 대인관계 관련 사회적 기술을 갈고닦게 된다. 그렇게 70년대와 80년대의 사회를 청년으로 살아온 아내들은 이런 결혼생활환경 덕분에 사회적 기술이 특별하게 발달하는 측면도 있다.


확실히 노후생활에 발을 딛으면서부터 남의 편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그렇게 한 집에서 리더가 둘이 되면서 의견이 부딪치는 일이 많아진다. 심지어 황혼이혼이 느는 중일만큼..


그렇게 3~5년쯤 견디면 어느 순간 남의 편이 자식보다도 가깝고 확실한 내편이 되는 나의 남편임을 인지하게 되는 시점이 된다. 그리고 아내는 부엌에서 서툴게 참여하는 남편에게 불쑥불쑥 지적질이나 잔소리를 해온 자신들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집의 대표이사인 아내 사무실의 핵심부서 부엌에서 신입사원인 남편이 어찌 평생 그 사무실에서 갈고닦은 실력자인 아내만큼 액설런트 (excellent)하게 업무를 잘할 수 있겠는가? 김치 만들기는 바라지도 않지만 컵을 냄새나지 않게 정갈하게 씻는 방법부터 손이 많이 가는 잡곡밥 짓기, 입맛도는 식탁 세팅에 이르기까지...


더구나 끼니 당번이 되는 순간 행주 관리와 그릇을 씻는 스카치라이트 스펀지 관리, 부엌의 청결상태 유지까지 가장 기본관리이다. 적어도 아내는 20대부터 살림 전공을 하며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겪어 진화하는 거고, 굳어진 머리로 새로 입학한 남편은 눈치 둔한 신입생이다..


그리고 등 뒤에서 바라본 남편의 어깨가 처져있음을 발견하는 순간까지 잘 참아왔다면 이젠 아내도 남편의 진짜 여편이 된다.


그렇게 우리도 진짜 편 (?)이 되었다. 남의 딸의 남편이 되는 아들에게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영원히 나의 변치 않는 딸일 것처럼 딸들이 아무리 살가울지라도, 당연히 자식을 남편을 위하는 여편, 아내를 위하는 남편과는 늙어갈수록 비교불가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가정의 평화와 즐거운 식사 분위기를 위해서 부엌에는 한 사람씩만 있도록 한다. 식탁에 수저 놓기만 거드는 걸로.


그리고 어항 비린내가 나는 물컵이 발견되면 내가 다시 거품으로 닦고 끓는 물로 소독을 하며 헹군다. 부엌의 스카치라이트 스펀지와 행주를 삶아서 햇살 아래 널어둔다. 대신 부엌에는 다른 스펀지와 행주로 바꿔 놓는다.


"당신이 설거지하면 가끔 컵에서 냄새가 나요"


는 입안에 넣어두고


"요즘 날씨가 습해서 그런지 내가 닦아서 둔 컵에서도 어항 비린내가 나요."


한다. 물론 눈치 빠른 남편은 금세 의도를 알아채지만...

"라면이 너무 짜다."


대신 물을 끓여 와서


"늙으면 입맛이 점점 짜진 다네요. 나는 뜨거운 물을 조금 부울 건데 당신도 부어줄까요? "


한다. 같은 주소에서 사는 남편도 여편도 직장상사처럼 구는 상대방의 지적질은 정말 유쾌하지 않으니까. 젊은 때보다 여유롭게 시간을 쓰는 덕분에 이제야 아주 조금 마음이 넉넉해지는 지도...


우린 여전히 주둥이가 긴 병 속의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여우와 접시에 담긴 음식이 불편한 두루미의 초대 우화처럼 식습관도, 간 맞추기의 기준도, 선호하는 에어컨의 온도도 많이 다르지만, 남편과 여편이 되었음을 인지하면서부터는 평화가 유지되는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많이 변해서 친정 부모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해 드린 걸 늙어보고서야 깨닫게 되어 죄송하기 그지없다.


"그동안 잘났어 정말!"이었던 젊은 시절을 다 쓰고 나서야 부모의 입장을 새끼손가락만큼 공감하는 중이다. 앞으로 나도 내손으로 기른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눈치 없는 배반을 경험하며 생채기를 쓰다듬는 동안 공감의 크기는 매일 무럭무럭 자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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