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사람에겐 진땀 나는 시간으로 가득한 계절이다. 4월의 예비심사에 이어 1차 본심 사가 기다린다. 다섯 분의 교수님 의견이 제시되고 그에 맞춰서 논문 제목부터 내용의 배치와 교정 작업이 따라주어야 한다.
오월의 시간은 유난히 쏜살같이 달려서 새벽부터 눈을 뜨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가 식사 시간 참석하고 허리를 펴느라 문득 올려다본 벽시계는 기본이 밤 10시 11시이다.
미리미리 준비한 자료들을 줄을 세우고 인용한 선행연구 출처를 일일이 확인하며 준비하지만, 긴장도가 떨어져 어설프다가 기한을 바짝 앞두고서야 고도의 집중력이 작동된다. 이제야 교정 작업이 속도를 내는 중인데 시계를 돌릴 수도 없고... 가능하다면 시곗바늘을 묶어두고 싶게 초와 분이 아쉽다.
그렇게 심사가 진행되는 기간엔 밤 2시, 3시 취침은 기본이 된다. 짬짬이 준비하던 논문에 집중이 안되어 이번 학기에는 다른 일과를 일단 멈춤으로 세워두고.. 오직 논문에만 집중하여 9 학기의 9수를 면하기로 했다. 네덜란드의 유태계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처럼 '지구가 멸망할 지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기!'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덕분에 컴퓨터 속을 헤집어서 U.N, UNESCO 등 국제기구 자료와 미국, 캐나다, 영국, 핀란드, 오스트리아, U.A.E.,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유수 학자들의 연구와 관련 실행 기관들로부터 풍부한 자료수집이 가능해졌다. 새로운 분야라 국내 자료가 거의 없으니 좌충우돌하는 시간이 있었고, 덕분에 배우며 선행연구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읽고 또 읽고 참고 논문을 재확인하고, 빠진 것은 없는지 찾아야 하는 시간에 처음부터 행복하게 읽어내리다가 서론과 본론에 또 꽂혀서 더 좋은 참고 논문과 표현들을 매만지기 시작하면, 알면서도 바빠지는 모양새이다. 분석 부분과 결론 그리고 초록의 영어 번역과 부록 등을 잘 붙여줘야 하는데... 더 에지(edge) 있게 써보자는 욕심을 조절하지 못하면 시간 조절에 실패하게 되고 결국 한 학기가 더 필요하게 된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한 학기 추가하는 일이 'Why not?"이지만...
인생길에 구불구불 복병이 숨어 있어서 논문에만 코를 박고 지낼 시간을 오롯이 얻기란 여간 어렵다. 소소한 일상의 돌출에 논문에서 눈이 떠나는 시간이 길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고, 나처럼 2년을 이불에 오줌 싼 어린아이처럼 덮어두고 안절부절못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마치 월말고사가 일상이던 여고시절 복통을 앓고 살던 것처럼, 논문은 불편한 목표가 되어서 시험 준비를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여고생의 악몽을 닮아 꿈속을 드낙거린다.
블로그 글도 오탈자 교정과 표현 수정을 위한 퇴고가 이어지는 데, 하물며 이름을 걸고 나오는 학위논문임 에랴... 무엇보다도 학회지의 20여 페이지보다는 중량감 있게 100여 페이지도 가능하니 지도교수님 지도 하에 연구내용을 자신의 의도대로 쓸만하다. 가장 신이 나는 부분은 새로운 정보를 담은 선행연구논문들을 찾아 대각선으로 읽어갈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 분 심사위원의 지도를 받으며 이어가는 학위논문 작업은 참으로 지난한 작업이다. 물론 종종 매스컴을 달구는 표절 논문 들은 참으로 민망하고 비생산적인 일이니 논외로 하고.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분야를 직접 연구하고 결과를 분석하고 작성한다는 전제 아래서... 괴롭고 행복한 작업이다.
그런데 논문을 쉼 없이 종일 보고 있으면, 컴퓨터가 얼음 되듯 머릿속이 얼음이 되어 같은 줄을 벗어나지 못하고 되풀이해서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컴퓨터 화면도 닦지 않은 안경처럼 뿌옇다가 그예 글씨 번짐 현상으로 이어진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과부하일 게다. 그래도 나는 아직은 등과 뒤통수가 열이 나고, 꼬리뼈와 머리 정수리가 아픈 거 외에는 컴퓨터보다는 더 잘 견디는 것 같다. 그럴 때에 거실 베란다에서 열심히 공기정화작업 중인 클레로 덴드롱과 군자란, 그리고 사랑초와 호접란에게로 향한다. 허리도 펴고, 녀석들과 눈 맞춤도 하고, 실내 자전거 운동도 잠시 할 겸.....
단독주택이 주 거주지이던 1970년대에 맞벌이 부모님은 꽃과 수석에 꽂혀서 주말이면 부엽토가 깔린 옥상의 꽃밭과 마루에 줄줄이 늘어선 온갖 색깔의 꽃 가꾸기로 바쁘셨다. 상추랑 파도 있었을게다. 따먹은 기억은 흐릿하지만... 사실 그 당시에는 나는 부모님의 화초 사랑이 불편했다. 평일에는 두 분 모두 출근하시니 겨우 주말 휴식이고 온 가족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인데, 변두리에 위치한 시장까지 가셔서 화초를 구해오고 흙을 고르고, 심고 뒤처리하는 일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나는 부모가 없이 지나간다는 의미가 된다.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던 초등학생인 막냇동생은 그런 이유로 부모가 애지중지하던 미니 소철 화분을 허락도 안 받고 몰래 학년초 교실환경미화용 화분으로 제출하고, 귀한 모양의 화분을 맞이한 선생님의 칭찬을 듬뿍 받았다.
*사랑초(꽃말: 당신을 버리지 않을게요)
여고 졸업식까지도 직장에 계신 엄마의 참석이 불가능하여 대신 고우신 이모가 오셔서 나의 졸업식을 빛내주셨다. 당시 비가 오면 우산을 가져와 교문 앞에서 딸의 하교를 기다리는 엄마가 있는 친구, 겨울이면 따뜻한 점심 도시락을 경비실에 맡겨주는 엄마를 가진 친구들이 속으로 많이 부러웠다.
보온 통에 담긴 내 밥과 다른 온도의 따뜻한 김이 오르는 친구 도시락은 부모 사랑의 온도 차이로 여겨질 만큼 엄마의 직장생활로 인한 집에서의 엄마 부재는 내게 당시에는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하면 다니던 직장을 아깝지만 과감히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시간을 충분히 내어주는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가 벨을 누르면 반갑게 현관문을 열어주는 엄마가 되기로.
결혼 후 나는 늘 꽃을 꽃병에 담아 식탁 위에 올리는 일을 즐겼다. 커튼도 자주 빨아서 달고 식탁 메트도 바꾸어 분위기를 새로이 하는... 소위 환경정리를 열심히 했다. 꽃집이 문을 닫는 시각에 가면 꽃을 싸게 살 수 있었다. 주로 하얀 백합, 빨간 장미, 노란 프리지어, 분홍 국화, 그리고 흰구름 같은 안개꽃이 단골로 돌아가며 식탁 한편에 놓였다.
부모님이 가끔 꽃을 피워서 제일 예쁜 모습을 골라 선물해주시는 군자란 등 화분들은 현관 입구 신발장 위에서 한 계절을 못 넘기고 하늘로 갔다. 당시의 나는 화초 죽이기 전문이었다. 물을 주어도 덜 주어도 시들 거리고 비슷한 모습의 노란 이파리가 되어 흔들거린다. 그렇게 화분의 장례를 마무리하고 나면 기분이 가라앉았다. 가끔은 화분을 거절해보기도 했다. 내게만 오면 화분들은 금세 시들 거리다가 하늘로 떠났으므로.
여전히 꽃을 되살리는 재주는 없지만 나이가 많은 어른이 되고서야 버리는 일로 폐가 되는 꽃다발보다는 머무는 시간이 긴 꽃 화분을 들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초. 중. 고. 대 입학과 졸업 축하에 선물 받은 게 인연이 되어 지금은 군자란과 호접란과 제법 잘 지낸다. 아이 엄마가 되어서도 나물과 꽃 이름을 손가락에 올리지도 못할 정도이던 나는 이제 내 부모의 모습처럼 꽃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좋은 사이의 지인에게는 꽃 화분을 선물하게 된다.
큰아이가 병원생활을 반복하는 8년여를 정신없이 지내느라 화분들이 자동 정리되었다. 그동안 내게 1순위도 2순위도 3순위도 모두 내 성년 딸아이의 건강이었으므로. 그 와중에 오래전에 은행에서 나누어주던 사랑초와 시댁 입구 길거리 트럭에서 구입한 클레로 덴드롱만 살아남았다. 목이 마르면 클레로 덴드롱은 고개를 숙이고 이파리를 모두 아래로 떨군다. 가느다란 사랑초는 허리째 뒤로 넘어가서 목마름의 위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물을 담아주면 다음날 아침엔 다시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인사한다. 클레로 덴드롱은 물만 주면 일 년 내내 돌아가며 하얀 꽃에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의 빨간 입술이 얹힌 꽃을 피운다. 사랑초는 약지 손톱만 한 크기의 여리디 여린 연한 보라 핑크 꽃을 일 년 내내 피워 보인다. 영락없는 사랑의 모습으로.
친정 부모님은 여전히 마법의 손길로 남이 버린 화분도 살려서 화려하게 꽃을 피우신다. 나도 눈앞이 뿌옇게 어른거리는 나이인데, 90을 바라보시는 어머니는 손끝으로 피우신 고운 꽃들을 핸드폰으로 찍어서 보내시곤 한다.
지금 내게는 사랑초와 클레로 덴드롱이 제격이다. 컴퓨터와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져 꼬리뼈에 통증이 오를 즈음 일어나서 꽃과 대화를 나누며 그곳에서 나의 원조인 엄마를 본다. 나는 금세 엄마가 보여주던 모습대로 꽃 앞에서 혼잣말을 하고 꽃을 어여뻐하고 있다. 흉보며 배운다더니 딱 그 짝이다.
*만천홍 (꽃말: 행운이 찾아온다)
1시간 거리에 사는 작은 딸은 아기를 키우는 와중에도 제 엄마가 선물한 화분은 살리려 수고하는 모습이다. 아주 가끔 들렀을 때에도 작년에 선물한 카틀레아 화분이 안방 침대 옆에 잘 놓여 있어 마음이 뭉클했다.
큰아이가 내게 선물한 카틀레아에서 새로 꽃대가 나오는 중이다. 색상이 다양한 카틀레아가 이번엔 무슨 색깔의 꽃을 피워 올릴 건지 궁금해졌다.
학창 시절에는 바쁘기만 한 부모를 뺏겨서 싫었던 꽃사랑이 이제 손녀에게 내려가서 3대째 이어지는 중이다. 고개가 숙여진 클레로 덴드롱과 허리가 뒤로 넘어간 사랑초에 물을 주며 새삼 고맙다. 건강한 이들을 만난 것도 인연이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가늘가늘 이어져가는 사랑초의 꽃놀이는 영락없는 인생의 사랑을 닮았다. 사랑이 어디 화려하기만 하겠는가? 그래도 조용조용 가늘게 이어져서 졸혼을 면하고 사랑초 꽃처럼 잘 지내고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