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비례에도 꿋꿋하게 앞으로
*나리(출처: 꽃나무 애기 Band)
누나 아빠의 생존법은 두 여자가 부엌에 있을 때는 맡겨두고 소파에 앉아 책 읽기를 지속하기이다. 늦은 밤 우렁각시에 감사하기는커녕 구시렁거림이나 건네는 그녀들의 비례(非禮)에도 불구하고, 키가 큰 누나 아빠는 조그만 두 여자의 체력 소모를 줄여주고자 여전히 우렁각시 역할을 지치지 않고 수행 중이다.
이제 누나 아빠는 두 사람이 서재로 들어가 각자의 컴퓨터 앞에 앉은 후에 싱크대로 향한다. 아빠가 고단해서 일찍 잠이 든 날엔 이른 새벽에 잠이 깨어 샤워 후 부엌의 그릇들을 정리해준다. 여전히 이빠는 바로 뒤에서 말티스 심리치료견인 나, '수리'가 보고 있는데도 물병도 보온병도 속까지 키친타월로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낸다. 아빠의 엄마도 평생 설거지 마무리는 개운하게 마른 행주질로 마무리하셨다는... 엄마랑 누나는 '그냥 엎어주세요'인데...
그 여자들의 생존법은 컵과 물병, 보온병은 사용 전에 '정수기 물로 헹궈주기'이다. 부엌의 평화를 지키는 방법으로... 사람들은 습관을 바꾼다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모양이다.
나랑 동갑(?)인 작은 누나네 웰시코기 '탐이'는 화장실의 위치를 세 번이나 바꾸는 훈련을 했다. 유기견에서 작은 누나 네로 입양 직후 첫 번째 배변 훈련은 베란다의 배변패드 위에서 했다. 추운 겨울이 오자 베란다에 물 사용 금지 안내 방송이 잦아지면서 탐이의 화장실은 거실 옆 욕실의 배변패드로 옮겨졌다. 그리고 새아기가 태어나니 아기를 위해 다시 배변패드가 베란다로 옮겨졌다. 이제부터는 새아기를 욕실에서 따뜻하게 씻겨야 하므로....
그래도 탐이는 곧바로 작은 누나네 규칙을 따르고자 노력했다. 물론 그때마다 폭풍 칭찬과 간식 선물이 쏟아져 보람도 있었다. 엄마는 말티스 '탐이'가 영특해서 작은 누나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며 탐이를 예뻐한다. 그게 다 폭풍 간식 칭찬 덕분일 텐데...
말티스인 나도 유기견 시절을 지나 큰누나네에게 입양된 후 큰누나랑 하우스 훈련 중 하우스 종류가 자주 바뀐다. 지퍼가 달린 이동장에서 이중으로 된 폭신 메트로, 집에서 사용하는 오픈 하우스로... 심지어 밥그릇도 가끔 바뀐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들기 쉬운 가벼운 노란 병아리색 플라스틱 용기로, 집에서는 움직이지 않게 듬직한 청자빛 도자기 그릇으로...
그래도 우리 강아지들은 반려인의 의중에 적응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다행히 내게 화장실을 바꾸라고 강요하는 일은 아직까지는 없다. 내 화장실은 안방 화장실과 베란다의 패드 위로 정해져 있지만, 난 가끔 거실 화장실에서도 소변을 해결한다. 어쨌건 화장실이니까. 거실 베란다까지 달려 나가기가 유난히 싫은 날은 나 말티스도 거실과 부엌의 카펫 귀퉁이나 화분 밑받침에도 살짝살짝 흘리게 된다. 매의 눈을 한 엄마는 카펫 위에서 흐릿한 노오란 자국을 발견하고 한숨을 쉬며 코를 킁킁대서 확인 후 퐁퐁으로 부분 세탁을 한다.
"너는 엄마가 한가해 보이니? 그러고 보면 '탐이'는 천재인가 보다. 놀러 와서도 한 번의 실수가 없으니..." 하면서 내게 눈을 흘기는 엄마는 전생에 개였나 보다, 킁킁 놀이를 나처럼 익숙하게 하는 걸 보면. 엄마가 비교육적으로 나를 탐이와 비교하며 비난했지만, 그래도 사실 카펫의 오줌 실수는 좀 미안하다.
어쨌건 누나네 아빠는 두 여자들의 구시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도움을 주고자 우렁각시 역할 중이다. 누나네 엄마는 사실 아빠의 속 깊은 배려에 너무나 감사하는 마음이다. 큰누나의 메스꺼움과 구토 증세만 아니면 그릇을 엎어말린들, 행주질로 말린 들 무슨 문제랴? 누나의 힘든 시간이 지나가면 다 해결될 일인데... 그리고 엄마와 누나의 동물매개 심리치료 연구과정이 마무리되는 날이면 엄마가 우리 가족의 맛있는 음식 준비를 위해 부엌으로 복귀할 것이므로.
*큰누나가 만든 '가지 라자니아'
우리 아빠가 매일 오후에 '티 타임(Tea time)' 하고 소리쳐서 서재 속의 두 여자를 불러내는 일도 큰누나를 위한 우렁각시 놀이이다. 아빠는 늘 큰누나의 식욕을 돋우려고 미리 간식 메뉴를 물어본다. 그리고 누나의 희망에 맞추어 비스킷, 감자, 미니 오믈렛, 호떡, 약과, 쌀과자, 핫도그와 우유, 따끈한 허브티, 유자차들을 돌아가며 선택하고, 소공동의 등급 높은 호텔처럼 식탁 위에 정갈한 식탁 메트와 접시, 포크세트를 예쁘게 올려준다.
큰누나는 자주 눕긴 하지만 체력이 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요즘엔 읽기 도우미견 프로그램 연구를 위한 해외 자료 수집에 관심이 방울방울 맺히는 모양이다. 우리 아빠의 지혜로운 생존법이 큰누나를 조금씩 일으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