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을 기다리며 텃밭에 남은 상추를 베란다에 옮겨놓고 나니 연초록빛 상추와의 눈 맞춤이 훨씬 쉬워졌다. 매일 컴퓨터 작업 중 생각 머리가 흔들거릴 때 일어서서 거실을 가로질러 베란다로 간다. 그곳에는 연초록의 보드라운 상추 잎들이 있다. 아기처럼 보드라운, 연하디 연한 잎사귀에 시선을 얹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텃밭 야채 재배를 하는 기간에는 집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의 텃밭 상추와 눈 맞춤을 하려면, 차로 왕복시간 더하기 물 주고 들여다보는 시간, 그리고 돌아와 뒷정리와 샤워시간까지 최소한 2시간은 빼놓아야 한다. 행여 솎아온 상추라도 있으면 나는 내놓아야 하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 아무리 재택 일과라지만 낮의 일과에서 여유로운 2시간을 생으로 빼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텃밭 가꾸기는 대개는 텃밭을 위한 주차장이 없으므로 학교 부근이나 텃밭 옆의 외진 도로, 동사무소(현재는 주민센터, 주민자치... 등 다양한 이름으로 개명 중)의 주차장 근처를 어른거리느라 시간 허비 또한 부담이다.
그래서 남편이 자동차를 운전하여 주고, 내가 상추를 들여다보는 동안 남편은 대기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기다리기가 지루한 남편이 잠시 차를 주차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아주 가끔 보너스로 발행되는 주차위반 딱지나 주행 중 우측 회전을 위한 차선 변경 시 사거리 입구에서의 버스차선 위반 등 의식하지 못한 부주의로 인한 벌금은 텃밭 나들이를 위축시키곤 한다.
호주에서 오래전에 경험한 지하철역이나 학교 앞 도로의 'Kiss and Bye" zone과 같이 잠시 정차나 30분~1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의 주차허용 지역과 같은 시민편의를 배려하는 교통정책 도입은 국내에서는 아직은 요원한 모양이다.
교통단속반은 아파트 바로 앞 도로에서 매일 매연을 줄줄이 뿜으며 수학여행단 출발 버스처럼 줄지어 선 대형학원 버스들 단속은 외면하고, 잠시 지나는 애꿎은 일반인만 뒤쫓는지...
이런저런 연유로 마음이 예민해지면서 바로 근처 경찰서가 있는데 매번 경찰차는 왜 한가한 이면도로의 텃밭 옆에 죽치고 있는지 이해가 어렵고, 작은 텃밭들을 50개가 넘게 분양했으면 2~3평 크기의 텃밭 채소에 물 주고 눈 맞춤에 충분한 20~30분 정도의 잠시 주차 허용 공간은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를 구시렁댄다.
서울시 소재 구청 1개당 관할 구역이 얼마나 넓은가... 그런 광범위한 영역을 관할하는 구청이 구민을 대상으로 분양한 텃밭에 걸어서 호미 들고 올 수 있는 지역구민이 얼마나 될 것이라고 이런 불편을 감수하게 하는지... 불평하는 입술을 내밀고 싶다.
월동 준비차 상추 모종이 베란다의 화분 안에 놓인 뒤로는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시간 허비도, 자동차 이동도, 주차장 찾기에 대한 불안함도, 제법 부담을 주는 액수의 교통범칙금에 대한 불편한 마음도 이제 날아갔다.
2주가 채 안되어 상추 모종의 포기 안쪽에 아주 작은 까만 날벌레들이 꼬여 들었다. 밭에서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날파리떼를 마주한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사실 베란다에 상추 모종을 놓으니 내 마음이 아주 상쾌해져서 꽃 가꾸기에 마법의 손인 연로하신 친정어머니께도 보내드릴 요량이 출렁이던 중이다.
구순을 앞두신 친정어머니의 심리치유 방법
베란다의 화분들에 믿을 수 없게 멋진 꽃을 피워내시곤 하는 어머니는 구순 아버지의 병시중 중에도 여전히 꽃집 화분보다 더 탐스레 꽃들이 올라온 화분 사진들을 보내시곤 한다.
2015년 집에 들르신 시어머님께서 우리 베란다의 색색의 아프리칸 바이올렛 화분을 들여다보시며 분홍과 보랏빛 화분 두 개를 특별히 예뻐하셨다. 가시는 길에 보내드리니 아주 좋아하셨다. 시어머님 또한 화분 관리를 참 잘하셔서 계절별로 꽃을 보시고, 겨울에는 동백꽃이 송송이 붉게 피워 오르게 하신다.
그리고 2018년 딸과 함께 종합 병원 정기검사를 다녀오는 길에 딸과 어미의 심리치료차 대학원에 2학기 째 등록하였음을 알려드리려 어머님 댁에 들렀다. 그때 꽃이 잘 펴있는 바이올렛 초록 이파리 사이사이에 모래알처럼 작은 흰색의 진디 벌레들이 다닥거리고 있었다. 이미 날아갈 듯 체중이 가벼워진, 구순을 앞두신 어머님 눈은 그렇게 작은 벌레는 볼 수 없는 데...
말씀을 드려야 할지 화분을 버려야 할지... 아직 나는 벌레를 발견할 수 있는 나이의 눈이고 어머님들의 연세는 벌레를 보기 어려운 상태의 시력임을 깨달았다.
매일 머릿속의 이러저러 상념뿐 실천이 늦어져 친정부모님 댁 상추 모종을 서둘러 주문하지 못한 게 여간 다행이다. 멀리 계시는 친정부모님 집의 상추에 이렇게 까만 날파리가 둥지를 틀어도 함께 사는 직장인인 여동생도 부모님도 멀리 사는 나도 모를뻔했으니까...
상쾌하던 베란다 상추 모종에서 발견된 아주 조그만 까만 날파리들은 연초록 상추 이파리를 보는 재미를 순식간에 날려 보냈다. 그렇게 나는 상추 모종으로 인해 갑자기 머리가 아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