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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귀를 흔들며

무뎌진 싫은 감정

by 윤혜경


인터넷에 찾아보니 상추에 꾀어 드는 아주 작은 날파리떼를 처치하는 방법 중 몇 가지는 나도 실행이 가능해 보였다. 지금 내 귀에 솔깃한 방법은 일단 준비시간이 적게 걸리고, 스프레이 방법이 쉬우며, 살충제처럼 독하지 않을 것이다


첫째, 스카치테이프로 떼어내기

접착력이 우수한 스카치테이프를 상추 뒤에 붙은 까만 날파리에 살포시 대어주면 붙어서 꼼짝 못 하게 되어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단 너무 우수한 접착력의 테이프에는 상추 잎새도 덜커덕 붙어서 찢길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둘째, 부엌 세재 이용하기

부엌 퐁퐁 식기 세재에 물을 적당히 섞어서 분무기에 담아 날파리떼에 스프레이 해주면 벌레가 호흡곤란으로 의식을 잃고 미끄러져 내린다고 했다. 단, 즉시 물로 상추에 뿌려진 세재를 씻어주라는...'

이런 경우 화분에 흘러내리며 흙속으로 스며드는 세제는 어찌 빼낼 수 있을까?


셋째: 연한 살충제 반복 사용하기

매일 몇 잎씩 따서 먹는 상추에 살충제를 쓰면.... 가장 효과적이라는데...


기타: 여러 가지 성분을 섞어서 지혜를 발휘하는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일단 현재 집에 없는 원료가 필요한, 조금 복잡해 보이는 것은 미뤄두기로.


그러고도 사흘을 보낸 후 마침 필기구 서랍에서 접착력이 약한 스카치테이프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베란다에 있는 상추 잎에서 끝없이 오르락거리는 까만 모래알 같은 날파리에 손가락 2개에 감은 스카치테이프를 대었다.


우와~

기대 이상의 효과이다. '1,000원 샵'에서 구매한 깔끔한 투명 접착테이프의 성능이 비실거려서 버릴까 하던 중인데... 보드라운 상추 잎은 무사하고 까만 날파리들만 점처럼 붙어서 심지어 귀엽기까지 하다.


문득, 내가 손가락에 달라붙어 기어가는 까만 날파리에 비명도 지르지 않고 관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 이젠 벌레를 보면 화들짝 놀라서 자동으로 비명이 나오던 파릇파릇 새댁 나이가 아니어서 그런가?


날파리가 귀여워 보이다니... 나이듬의 여유를 깨달으며, 문득 텃밭의 연한 초록빛 아기 애벌레를 보고도 비명 대신 녀석의 움직임을 들여다보았던 지난여름이 떠올랐다.


아.... 상추에 숨어드느라 보호색을 뒤집어쓴 초록빛 아기 애벌레를 보고 젊은 처자처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 젊은 날처럼 남편이 달려와줄 형편은 안되고...


설혹 누군가 젊은이가 달려와주더라도 상황을 파악한 뒤 어떤 생각이 들까? 이젠 벌레에 놀라는 손주의 비명소리에 슈퍼맨처럼 달려가 놀란 아이를 보듬어주고 벌레를 잡아주어야 할 나이인 것을...


과학적인 해충 제거방법은 아니지만 오늘 버릴 뻔했던 접착력 낮은 스카치테이프가 내 얇은 귀 덕분에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그리고 젊은 날 유난스레 싫어했던 벌레들을 지켜볼 수 있게 둔감해진 '싫은 감정'도 발견한 날이다.


이렇게 싫음은 더 빠르게 무뎌지고, 매일 넉넉함이 차오르기를...

그래서 마음도 표정도 더 온화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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