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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사이

탐이의 일기 3

by 윤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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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Google(piercecountylibra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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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 대우를 받는 '수리'


수리는 아이들의 무릎 위에 안겨서 조용히 아이들이 읽어주는 동화를 듣고 있다. 때로는 책상 위에 앉거나, 길게 엎드린 자세로 아이들의 동화 읽기를 들어준다. 아이들은 책을 읽는 중에도 문득문득 수리의 발을 만지고, 등을 쓰다듬고 있다. 심지어 수리의 등에 손을 얹은 자세로 수리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수리'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귀여워서 아이들이 좋아하나 보다. 아, 개는 사람들과 달리 비판하거나 지적질을 하지 않고 조용히 충성스럽게 귀를 빌려주니, 아이들이 개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 맞나 보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표정이 되게 진지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수리는 특대우를 받는다. 안방에 있는 양털 방석 위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큰누나가 직접 건조한 특제 쇠고기 간식을 상으로 받는다. 수리의 식성은 나보다 고급이다. 평소의 사료는 닭고기나 오리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야채 성분의 사료를 선택하고 단백질 섭취를 위한 쇠고기, 돼지고기는 엄마랑 누나가 직접 건조해서 만들어준다. 수리는 빨강. 초록. 노랑 색상의 피망과 오이, 당근을 아주 좋아한다. 어느 날 두 눈 주위가 발갛게 부어오른 수리를 진찰한 뒤, 수리는 닭고기나 오리고기 섭취는 알레르기가 있으니 삼가라는 단골 동물병원 원장님의 조언이 있었다.



동물매개치료 연구수업이 끝나고 집에 도착 후에는 수리가 받았을지도 모르는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기 위해 큰누나는 수리가 원하는 대로 뒤뜰 산책을 평소보다 더 오래 해준다. 조그마한 수리는 영리하고 배워둔 재주도 많아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특별히 인기가 많을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아이들의 동화 읽는 소리는 나, 웰시코기 탐이도 열심히 그리고 더 차분하게 들어줄 수 있는데...



언젠가 '수리와 산책하기' 제목의 수업 날에 나도 따라가서 주차장의 큰 누나 차에 누나아빠랑 앉아서 성인들과 '둘레길에서 진행된 수리의 동물매개 수업'을' 내다본 적이 있다. 아~, 부럽게도 '수리'는 참가자들의 귀여움을 듬뿍 받고 있었다. 나도 산책 정도는 수리만큼 잘할 수 있는데.... 달리기도 쌩쌩 잘할 자신이 있는데... 작은 누나집에서는 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정리도 나, 탐이가 혼자 하고, 재활용 종이도 재활용 상자에 물어다 넣고, 공놀이도 혼자 할 줄 아는데... 난 대소변 실수도 안하는데, 수리는 가끔 소변을 소변패드 옆에 누는 실수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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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공중에 띄운 간식을 나는 한 번에 받아먹을 수 있는데...... 수리는 자꾸 떨어뜨린다. 수리는 입이 작아서 형아가 던져주는 원반도 못 잡을 것 같은데... 나도 언젠가 수리처럼 동물매개 심리치료견 훈련학교를 다녀서 자격증을 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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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교쟁이 '수리수리 정수리'



수리의 정수리에 난 내 이빨 자국과 내가 수리의 정수리 머리털을 한 움큼 뽑아버린 '사고 소식'을 나중에 전해 들은 작은누나랑 형은 쥐구멍을 찾을 만큼 큰누나에게 미안해했다. 천만다행으로 '수리'의 '동물병원 진료' 결과가 좋다는 소식을 들은 두 사람은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만삭의 배를 앞세우고 서둘러서 내가 있는 큰누나네 집을 방문하여 수리의 상처 자국을 살펴보던 작은 누나가 수리의 대머리 자국에 웃음을 터뜨리며, 수리에게 '정수리'라는 별명을 선물했다. 사실 이만큼 놀랬으면 이제부터는 '정수리'가 형아인 내게 안 덤비면 좋겠다.


작은 누나랑 형아가 큰누나네 소파가 오래된 가죽 소파이니 핑계 치고 바꿔드리겠다고 했지만 누나네 엄마와 아빠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 소파는 두 누나가 시드니에서 서울이로 불리던 어린 시절에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게 넉넉한 사이즈로 구입하여서 이젠 나이가 많은 소파이다. 책벌레의 별명을 받았던 두 누나의 얌전한 성품 덕에 소파는 여전히 편안한 감촉을 지니고 있으며, 지금도 무사하다. 93년에 구입했으니 2021년인 올해 28살인가? 조금 많이 낡아 보일 뿐... 온갖 추억이 담겨 있으므로 엄마랑 아빠에게는 어린 시절의 두 누나들이 그곳에 앉아 동화책을 열심히 읽고 있던 모습이 어제처럼 눈에 선해서 소파의 낡은 부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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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10. 30. 여러 가지로 요즘 생각이 많은 '탐이'


어쨌든 난 '정수리'가 귀엽고 예쁜데.... 작고 가지런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내게 낮게 으르렁거리는 태도가 나는 영 불편하다. 우린 둘 다 유기견이었고, 큰누나가 수리를 예뻐하듯이 나도 우리 누나와 형에게 예쁨을 듬뿍 받는 귀한 반려견인데.... '정수리'는 늘 혼자만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나쁜 버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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