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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llara Nov 28. 2023

졸음운전자가 불여시에 홀려서

2000년 이후만 기억하면 안 될까?


*그 남자가 아내를 위해 선물한 9월 생크림 케이크

나의 옆지기인 그 남자는 운전할 때 길이 막히면 자주 졸리다. 아니, 길이 막히지 않을 때도 고속도로 위에서 졸음이 온다고 하면 아내 입장에선 공감 반 불편 반이다.


"저리 세워요, 내가 할게."

하고 싶지만 빨간 신호등에서 돌진해 온 상대방의 대형 교통사고로 후유증을 오래 겪은 후부터는 고속도로 운전은 부담스럽다.


언젠가는 부모님 모시고 강원도의 콘도에 휴가 다녀오는 중 한계령의 구불구불한 내리막 길에서도 이 남자가 졸리는 시늉을 해서 황당했었다. 밤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TV를 본 까닭이다. 이 부분은 공감불가여서 내 마음에 사리를 만드는 일이 된다.  


하여 옆좌석의 back seat driver가 설령 전날밤 잠을 자지 못하여 눈꺼풀이 무겁다 해도 이 남자의 <한숨 푹 자요> 립서비스를 그대로 믿고 평화로이 잠들기는 어렵다. 사실 교대도 못 해주는 처지에 장거리 운전에 졸려하는 그 남자를 외면하기에는 미안할 뿐만 아니라, 그 남자의 운전에 여러 생명이 걸린 까닭이다.


그런 와중에 강의 녹화를 위해 경상남도의 양산과 울산 방문 길은 큰딸과 반려견을 서울에 남겨둔 채 그 남자가 운전을 맡았다. 그 남자의 아내는 여러 날 제대로 자지 못해서 눈이 충혈되어 있지만, 장거리 안전운전을 위해 독박 운전자를 위한 서비스를 해야 한다.


예로 휴게소에서 구입한 오징어 구이나 사탕등 군것질거리들을 자주 건네주기와 같은. 가끔은 운전자의 목 뒤나 머리 뒤통수를 가만가만 눌러서 혈액순환이 되도록 해줄 필요도 있다.


아무튼 장거리를 운전 중인 이 남자 옆에서 문자 그대로 눈뜬 채 졸 수는 있어도, 운전대를 바꿔주지도 않으면서 쿨쿨 잠들기는 좀.... 물론 둘이 함께 졸릴 때는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30분쯤 눈을 붙인다.


아주 가끔은 고속도로를 운전 중인 이 남자의 가벼운 졸음을 깨우기 위해서 은근히 부아를 돋우는 시비를 걸어서 화가 나게 만드는 일도 시도해 본다. 분통 터져서 잠이 빛의 속도로 달아나도록. 이 방법이 졸음을 확 깨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상대의 화의 높이를 적절히 조절해야 하는 부담이 너무 크고 자칫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의 험담을 넌지시 풀어내주는 일도 그 남자의 귀를 열게 만드는 일이다. 행여 편견이 생기지 않게 '오해야 오해' 에피소드로  중화시키는  일도 빠뜨리지 않기. 목표는 '졸음 멈춤'이므로.


이번 지방 왕복 길엔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두 딸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생활 에피소드를 과장해 버무려서 썰을 풀었다.


요즘과 다르게 당시엔  권하는 사회여서 귀가 시간이  익일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점이 되곤 했다. 하여   남자는  아이들의 성장과정 에피소드를 절친 이웃보다도 모르는 상황이다.


하여 지난 일상에 양념을 쳐서 내놓으면 이 남자의 졸음을 달아나게 만드는 최고의 약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이 남자의 수고를 더 크게 부풀려서 그때의 고마움을 실감 나게 전달하면 심지어 잘 못 들은 척 반복재생을 원하기도 한다.  이렇게 그 남자의 아내는 고속도로상에서는 불여우가 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고집쟁이 남자를 부드러운 남자로 만들어주니 칭찬이 약이기는 한가 보다. 사실 나도 립서비스 일지라도 칭찬을 듣는 일이 훨씬  달달하니 나부터도 방안퉁수에 독재자 소질이 다분하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그 남자가 길 표지판 읽기를 놓친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어, 빠져나가야 할 길을 놓쳤네. 당신 이야기 듣다가..."

"??? 남자가 불여시에 홀렸군. 그렇지 않고서야 그깟 이야기 정도로 이 밤에 중요한 길을 놓치겠수?"


난데없는 과격한 표현에 이 남자는 급히 손사래까지 친다.


"아니야, 내가 표시판에 집중을 안 해서... 뭐 가다 보면 돌아나가는 길이 있겠지."


세월이 가니 서로 젊은 시절의 온통  '네 탓이요'에서 이제 '내 탓이요'로 바뀌기도 한다. 아, 비싼 휘발유를 정처 없이 낭비하는 상황이지만, 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여유로워서 좋다.


"아까 시드니 이야기 계속해봐."

"아, 그래서  일요일 자정부터 서머타임이 시작된 지도 모르고 생일파티가 끝난 지 한 시간 후에야 서울이를 데리러 갔죠. 모두 부모가 와서 데려가는데 일요일 저녁때 혼자만 엄마가 안 오니...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있는 시대도 아니고.  그 집 식구들 속에서 수줍은 큰 서울이는 얼마나 뻘쭘했겠수. 영어도 잘 못할 때인데. 그날  그집 식구들에게 <Sorry>를 전화로, 말로, 얼굴로 달걀 한 줄 만큼 풀었을 거야. 딸한테도. 돌아보면 엄마가 되어가지고 나도 참.. 아슬아슬했어요.  멀건 엄마의 건망증 때문에 어린 딸들이 속을 자주 끓였을 거야."


"그래도 중3까지 당신이 고집스레 악기를 계속 시켰으니 이쪽저쪽 전학 다니면서도 끈기 있게 공부를 해냈을 거야."

"공부를 시켜줄걸. 돌아보면 전공할 것도 아닌 악기를 귀국 전 주까지 레슨을 시킨 건 잘못했나 봐. 난 시드니에서도 너무 바쁘게 살면서 순간순간 건망증이 생겼어. 작은 서울이도 정신없는 엄마 때문에 큰일 날 뻔했어요. 배려한답시고 작은 서울이를 오후 3시 하교시간에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픽업한다고 큰소리를 쳤네. 그렇게 내가 아침에 아이한테 '오늘 오후에는 스쿨버스를 타지 말고 교문 앞에서 기다려.'  말해놓고 학교 청소부 부부가 교문에 열쇠통을 걸어 잠그고 퇴근한 뒤까지 아이를 방치하고 깜박 잊었어."

"?"

"두 애가 한꺼번에 피아노랑 바이올린 레슨을 가는 날이어서 내가 그날 아침에 작은 애한테 말하길 '바이올린을 싣고 큰 애랑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간다'라고. 그리고 해가 저물 때까지 '작은 서울이가 왜 안 오지? 얘가 또 스쿨버스를 놓쳤나?'하고 심지어 속을 부글거리며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죠."

"당신도 참 자주 정신이 없어."(이런 추임새는 하지 말지)


"세상에. 학교 끝나면 버스도 안 다니는 후미진 곳에서.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스멀거려서 차를 운전해서 학교 앞으로 가니 저만치 어두운 길 한쪽 남의 집 처마 밑에 거무스름한 물체가 차를 보고 움직이는 거예요. 얘가 눈이 퉁퉁 붓게 울었더라고.  


그때를 생각하면 난 지금도 등이 오싹해. 그즈음 킬라라 역 근처에서 중국 여학생이 아침 등굣길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사건이 있었어요. 도처에 마네킹에 교복 입혀 세워두고 그 애를 찾아 헤매던 때인데... 소름 끼쳤어요. 아마도 난 그때 이미 건망증이 있었을지도"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서로 시간 여유가 있어서 과거 경험 나눔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 젊은 시절과 달리 격하지 않으니 대체로 평화롭다. 설령 불여우처럼 지난 이야기로 홀려서 길을 놓치고 말았어도 상대를 받아주는 여유가 있어서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서로에게 눈을 흘기는 일은 여전하다. 호르몬이 역류할 때면 1980년대 90년대의 무신경한 처신에 대한 원망이 불씨처럼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게 아쉬운 부탁을 할 수 있는 이는 그리 가까웠던 부모형제도 30여 년 동안 사랑과 정성을 쏟아부었던 자식도 아닌, 이제 내편이 되어주는 흰머리의 옆지기이다.  이 남자에게 이 여자도 가장 편안한 한 편이길.


불여시의 이야기에 홀려 졸지 않고 무사히 서울에 도착한  운전자 그 남자는 쓸데없는 기억력이 우수해서 과거의 오점을 자꾸만 들쳐내는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2000년 이후만 기억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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