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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llara Jan 10. 2023

남성호르몬, 여성호르몬

저만큼 이동해서 하세요


*큰딸을 위한 옆지기의 화병꽂이



1980년대 내 옆지기의 본가에서의 위치는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가 없던 일반가정 큰집의 장손이다. 부유층이라면야 유산이 넘실대는 장손 자리에 매파가 눈독을 들이겠지만.


첫째 아들로 공직생활을 오래 하신 할아버지의 1931년생 꼿꼿 선비스타일의 대졸 큰아들이 내아버지이다. 나는 결혼 적령기의 남자들을 고민 끝에 뒤돌아서게 한다는 큰집 오 남매 중 장녀이다. 부모의 학벌이 평균 이상이고, 당시 고등학교 미혼인 여교사는 마담뚜의 수첩에서 상종가로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큰집 오남매의 맏딸은 은근히 하자가 있는 결혼조건임을 나중나중에야 알았다.


돌아보면 남매 아래 7년 터울로 다시 시작된 딸딸딸의  오 남매는 부모님의 교양과 지식 덕분에 일찍부터 학교 도서관을 가까이하고, 피아노를 건들고, 마당에 설치된 탁구대에서 탁구복식을 배웠다.  


일찍 일어나 벌레를 잡는 새가 되기 위해 주말이면 새벽 바람을 맞으며 덜깬 정신으로  부모님과 함께 두마리 개의 산책 겸 동네 달리기를 했다.  부모님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형제들은  공부에는 그다지 취미나 특기가 특출하지 않은 대신 부모님의 체면을 구기지 않는 전형적인 착한? 학생들이었다.   


회사와 달리 학교는 거의 회식문화가 없던 시대에 첫 근무지는 면 단위 소재지의 공립고등학교였다. 어쩌다 귀하게 만들어진 회식자리에서 여교사가 달랑 인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연세 지긋한 선배들미혼 여교사들 소개팅을 주선하겠다고 노래했.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부임 첫 해에 소개팅 따위로 결혼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어쨌든 가족 서열을 들여다보면 큰집의 3남매 중 장남과 큰집의 5남매 중 장녀와의 결혼은 앞으로의 각진 삶이 예상되었을 터인데...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에서 3년차 교사로 법정 수업시수인 주 18시간을 넘어 28시간 강의를 일삼던 고3 과목담당이라 목이 붓고 지친 여자 눈에 안 읽혔으니 모두 '내 탓이오' 이다.


1928년생으로 한국 최고 대학교 졸업장을 가진, 외모가 준수한 큰아들 시아버님은 참 멋지셨다. 그 분아들인 옆지기는 첫 만남의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세련되게 사용했다. 나는 오른손과 왼손의 도구를 매번 헤메던 시절인데. 입을 오므리고 아주 에지 있게 식사를 해서 마음속도 그렇게 멋짐으로 단정지었던 '내 탓이오'이다. 그 남자 회사의 신입직원 교육 항목임을  몰랐었으니까.     

        

결혼생활 내내 옆지기는 옛 드라마의 남편 역할처럼 숱하게 남의 편으로 변신을 일삼아서 여편을 황당하게 만드는 재주가 탁월했다.


특히 시댁의 커피타임 자리에서 동생들과 부모님 앞에서 아내에게 툭툭거렸다. 집에서 보여주었던 자상함과 친절은 대들보에 올려놓고 떠나온 양 아주 불친절해서 엉겁결에 당하는 아내는 심지어 무안했다. 이 바람직하지 않은 습관은 국내외에서 지속되었다.      


 "내친구들이 그러는데, 여선생들은 시집가서도 남편을 학생마냥 가르치고 시켜먹으러 든다더라. 걔는 안그러겠지?"


시어머님의 염려섞인 전달에  긴장한 남의 편은 행여 선생질 에게 큰아들이 잡혀 산다 할까봐 과잉행동을 보여주던 시절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결혼 전 양식을 포크와 나이프로 에지있게 먹던 한국 남자는 결혼 후엔 늘 남의 편이 되어 자신의 손바닥만한 체면 세우기가 몸에 배어있었다. 남자답기 위해.  시댁에서 여편은  부엌으로 향하며 멋대가리라곤 없는 남의 편 등 쪽으로 큰 눈을 흘기는 게 고작이고.

         

세심한 배려와 빠른 눈치가 특징인 여자 친구들과 달리 이 남자는 외모도 행동도 남자(?)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결혼 당시 이미 장성한 남편네 삼 형제는 유일한 여성인 연약한 어머니 주변에 둘러앉아 일품 손만두를 함께 빚어내기도 하고, 만두 코스요리 먹기에 동참한 역사가 길다. 하여 삼 형제는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하지 않는 특징이 있었다.           


내가 호흡기 질환이 잦은 두 딸의 건강을 위해 이미 아침저녁으로 바닥을 쓸고 닦았어도, 주말이면 큰 체구의 남편은 낮은 빗자루로 방바닥과 거실을 쓸고 바닥 걸레질까지 엎드려 기어 다니며 마무리하곤 했다.


귀가시간을 굳건히 지켜주던 통금이 폐지되었다. 덕분에 그 남자는 상식 없이 술 권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새벽 퇴근이 잦아지고  늘 잠이 부족했다.


남의 편은 토요일 2시쯤  퇴근(전설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토요일 오전 근무시기) 해서는 으례 청소를 시어머니 스타일로 정갈하게 한 뒤, 주중 부족한  잠을  주말에 몰아서 보충하곤  했다. 그 남자의 일요일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그 여자는 자주 돌이 채 안된 작은 아이는 업고, 3세 아이는 걸어서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들어왔다.


그 여자에겐 일요일 조차도 30분만 눈을 붙인다던 남편이 거의 시체놀이처럼 자거나  시댁에 가는 날이어서 주말이나 휴일의 의미는 남의 떡으로, 있으나 없으나 무관했다.  긴장되는 반공일(반휴일), 온공일 일뿐


2년 터울로 태어난 작은아이 때는 늦은 밤 퇴근한 남의 편은 샤워를 마치고, 곧바로 욕실 한쪽에 쌓인 서너 개의 아이 소변 기저귀 빨래를 시작했다. 집에서는 자주 거침없이 손빨래를 직접 해주는 남자이기도 했다.      

그렇게 40여 년 가까이 지나니 이제 남의 편은 드라마를 보며 눈가가 촉촉해지고, 여편은 조용히 크리넥스티슈를 뽑아 건네주고 마른 눈으로 출연 배우 연기를 칭찬하며 시청한다.


“한국 탤런트들은  어쩜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지~”


흰머리가 많아진 그 남자는 여성 호르몬이 나오는 중이고, 그 여자는 남성 호르몬이 증가중이다. 그 남자는 은퇴 후 백종원 쌤과 이보영쌤의 반찬 레시피를 들여다보며 마트 장보기와 식사를 자주 담당하고, 쇼핑질과 부엌살림의 고수?였던 그 여자는 마트 장보기를 아까운 시간낭비로 치부한다. 가끔 냉장고에 밑반찬을 만들어 넣거나 국을 준비하는 정도이다.


그 여자는 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비경제적인 자료검색을 하며, 큰딸과 자료내용을 분석하고 다른 연구자들과도 카톡방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그 남자가 서비스한 커피를 홀짝이고 있다.


오늘 아침, 호주에서 그 여자가 질색했던 서양남자들의 식탁 비매너 중 하나를 실현하는 남의 편에게 그 여자는 선생질을 하고야 말았다.


"식탁 앞에서 다른 사람 식사 중인데 코를 풀면 ...  내가 당신 밥먹고 있을 때 바로 앞에서  풀까?"


아차!

앞으로 그 여자는 이렇게 표현해야겠다.


"저만큼 이동해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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