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남편은 종종 두 살 터울인 어린 딸들의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일찍 퇴근할 예정이니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었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첫 해외살이 시절이다.
거의 매번 실패한 약속에 아이들은 저녁을 굶은 채 잠들고 말았었다. 미리 아이들만 먹이지 못하고 번번이 기대하며 기다리는 그 미련함 덕분에 우린 지금도 같은 주소에 거주중일게다.
80년대 후반, 어둠이 내리고 으슥한 밤이 되면 곧 출발하겠다는 전화를 한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느라 인내심이 들쭉날쭉했다.
'막 일어서려는데 선배님이 오셔서/
본사에서 전화가 와서'
등의 이유를 늘어놓던 그 시절을 떠올려지는 계기가 생기면 그 당시의 감정상태가 되살려지려 한다.
키가 큰 아들 셋의시댁과 1남 4녀 네는 집안 분위기부터 많이 달랐다. 명절이면 시댁은 남자들이 모두 소파와 그 주변에 옹기종기 앉아 씩씩하게 차려진 다과를 들며 TV시청 중이었다. 여자들은 뒤처리를 끝내고 커피를 준비해서 안방으로 날랐다. 그리고 커피잔을 감싸 쥐고 앉아 작은 어머님들과 시고모님의 육아나 시집 경험담을 들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친정에서는 예쁜 모양으로 준비한 간식을 아기자기 담아낸 상을 옆으로 두고, 할아버지부터 첫돌이 된 손녀까지 윷놀이를 하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끔은 여동생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화음을 넣어 이중창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여자들이 많은 친정이 아무래도 더 웃음이 많았는지도
나이를 잊고 여전히 신데렐라 증후군의 피해의식이 여기저기 남아있나 보다. 이제 머리가 반백인 이 남자는 장모를 닮아 일단 참는 중인(정말 고치고 싶은 습관) 아내의 표현행간 살피기에는 여전히 둔감하다. 하여 대화 중 어느 순간 아내의 굳어진 표정 앞에서 영문을 몰라하지만, 젊은 시절보다는 아내의 표정을 살펴보는 편이다.
"왜? 무슨 일 있어요?"
하는 그이의 질문에 설명이 가끔 필요하다. 지금 아내에게 과거 어느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는 중인지에 대해.
이 남자는 될수록 아이들 교육과 진학에 관련된 생각이 대체로 일치되던 2000년대 이후의 기억을 선호한다. 그때부터는 피차 상대를 바꾸는 일을 포기하여 평화의 크기가 커졌으므로.
그이는 신기하게도 결혼생활동안 터졌던 크고 작은 투닥거림들에 대해선 도대체 기억을 못 한다. 여자는 불편하고 괴로운 건 기억을 하지 않으려는 자기 방어기제가 작동한탓이리라 여긴다. 그 남자의 아내에게는 그 투닥거림이 연도별로 사진첩처럼 마음속 깊이 잘 철해져 있다. 억울한 약자는 오래 기억하는 법이라서.
꿈속에서 군생활을 만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1970년대의 군복무 기억 몇 조각은 잘 간직하고 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들려주는 얘기로는 훈련 중 배가 고파 팀이 함께 한 강원도옥수수와 감자밭 서리 시절을 얘기하며 '최고로 맛있었다'라고 기억한다. 이 남자는전방에서 1970년대 후반 병역의무 중 좋은 기억도 적지 않지만, 당시는 귀한 편인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구타를 많이 당했다고 했다.
그땐 1974년 8월에 처음 시작된 조국순례대행진에 참석할 수 있는 유네스코학생회(UNESCO)가 있는 4년제 대학이 전국에 약 50개쯤 되었다. 교대는 2년제였다. 그리고 각도에 국립대학이1개, 사립대학 1개 정도 분포하고, 서울에는대표적인 국립대학인 서울대학교와 서울교대가 있었다. 서울에 4년제 사립대학이 가장 많았다. 특수대학 외에 전통이 긴 사립대학들이 포함되었다. 적은 숫자이니 웬만한 전국 대학의 이름들은 국민들에게 거의 익숙한 상황이었다.
특목고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던 각 지역별 명문고 학생들도 경제형편 때문에 대학진학 대신 공무원 시험을 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당시는 요즘과 같은 장학제도는 거의 없던 시절이라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음은 공부도 중요했지만, 부모님의 경제적 능력이 아주 중요했다, 4년간의 학비와 주거비를 감당할 수 있는.
대학을 나오신 부모님께서 학비를 지원해 주신 덕에 4년제 대학에 입학을 한 그이는 결혼 후에도 가끔 군대악몽을 꾼 적이 있다. 마치 내 학창 시절 시험공부 악몽처럼.
빠듯한원고마감일정으로 머리에 쥐가 나던 지난 12월엔 내 꿈에서도 여고 중간고사 출제문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게 꿈으로 나타났다. 같은 번호의 문제를 발견하고 시험감독 중 확인되어 패닉이 된 스토리로 그려져 잠을 깨고도 황당했다. 마음을 괴롭혔던 일들이 만든 스트레스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다.
남편의 결혼 초 군대생활과 연계된 꿈 덕분에 그 남자의 군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가끔 들을 수 있었다. 외가 쪽과 친가 쪽에 전방의 군장성과 장교가 몇 분 계시고 모두 월남전에 참전하셨다. 사촌동생은 부모에 이어 군인이 된 육사출신이지만, 딸이 많은 집에서 자란 나는 군대에 대한 정보에는 무지한 편이다. 선배들이나 동기들이 군복을 입은 채 휴가 나오면 진짜 어른스러워서 멋있어 보였을 정도였으니.
그 남자는 이라크 파병을 자원했대요
*화제가 된 맥주 Kelly 광고(출처: 파이낸셜 뉴스)
마침 부엌 싱크대에 붙어있는 일 년 다이어리 크기의 미니 TV에서는 요즘 광고를 휩쓰는 남자탤런트가 출연한 "추앙합니다."를 유행시킨 드라마를 소개하고 있었다.
딸이 아파서 안방에 누우며 응급병동을 들락거린 이후로 우리는 딸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도록 거실에서 TV를 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지금도 거실 TV는 차렷자세이다.
* 옆지기가 좋아하는 Kelly 광고(출처: 뉴스 톡톡)
그이는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거나 주로 독서를 한다. 서재에 TV를 설치했으나 그이는 거의 켜지 않는다. 나는 식탁 앞에서 커피를 마시는 중인 남편에게 남편이 좋아할 그 탤런트 관련 정보를 알려주었다.
"저기 TV 좀 봐요."
"저 탤런트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군대를 자원해서 갔대요, 이라크 파병."
그이는 단박에 호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싱크대 쪽 TV화면을 응시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그 사람 된 사람이네
"이라크 파병?
그 사람 된 사람이네.
부모님도 대단하시다, 고생할 게 뻔한데.
그 탤런트 드라마 제목이 뭣이라고?
한번 봐야겠어."
그 남자탤런트가 이라크 파병을 자원했었다는 정보를 들은 내 남편은 만나본적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대뜸
"된 사람" 인증을 해주었다. 고생이 많았던 70~80년대 3년간에 걸친 병역의무는 그 시대의 남자들에게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하여 그이는 군복무도 안 한 사람들이 군복을 입고 전방을 시찰하는 것에 대해 씁쓸해한다. 적어도 대한민국 지도자들 특히 국회의원이나 중앙과 지방의 선출직 지도자들은대한민국 국민의 안위를지키는 군대생활을 겪어봐야 한다는 지론이다. 다행히 친구남편들도 모두 군복무를 각자 전공에 따른 방법으로 완수했다. 동생남편들도 모두 전방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군대는 다녀왔어?
작은 딸의 남자친구를 소개받을 때딸에게 한 첫 질문은
"군대는 다녀왔어?"
였다. 병역 면제자일지라도 법적으로는 성인인 자녀의 결정에 부모가 반대할 수 없는데도.
이제 사위가 된 그 남자친구는 어린 시절을 해외에서 보냈지만, 부모님의 적극권유로 군복무를 마쳐서 천만다행이다, 남편과 군생활에 대한 공감대가 있으니.
우리 집의 축하주
그이는이왕대한민국의 현실이 남자의 군대 의무복무가 필요하다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아까운 젊은이들의 황금기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아깝지 않게 군복무를 마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이는 설령 다양한 사연으로 면제에 해당되더라도 그만큼의 기간은 예외건수를 최대로 줄이고, 대체복무를 꼭 해야 사회적 갈등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군면제를 받고 미안함도 없이 당당한 각종 지도층이 된 사람들을 보며 군대 다녀온 사람만 바보가 된 느낌은 아니어야 하지 않겠나?"에 공감한다. 이쯤 되면 부창부수가 된 셈이다.
남편은 신혼시절 이불을 개켜서 옷장에 넣을 때면 각을 잡아서 참 예쁘고 단정하게 이불을 정리했다. 무엇보다도 정리정돈을 참 잘한다. 그이는 군대 덕분이라 했다.
단점으로는 행주건 수건이건 구별하지 않고 어디나 닦으려 든다. 나는 행주와 수건은 용도가 다르게 사용되길 원한다. 그이는 그것도 군대 습관 탓이라 한다. 뭐든 보기에 깔끔하게 만드는데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수건 하나면 된다고. 그 남자는 내가 안 보면 깨끗하게 삶아둔 타월걸레도 행주처럼 쓸까 겁난다. 나는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 실제 청결이 훠얼씬 중요하다. 행여 가족들이 배탈 나지 않도록.
칠순의 옆지기는 당장 이라크 파병을 다녀온 그 남자탤런트의 팬이 되나 보다. 탤런트의 이름을 기억하고, 핸드폰으로 그 사람의 출연 드라마를 검색해 보고 있는 걸 보면. 남자의 인격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내 남편에게 군복무 여부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이라크까지 파병되는 군복무를 한 이 탤런트는 "든 사람", "된 사람"에 이어 이제 "난 사람"이 되고 있다.
그 남자 탤런트가 광고하는 맥주도 이제부턴 우리 집의 기념일들에 축하주가 될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