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마지막날인 12월 31일 오후 5시 좀 지나서 딸네 가족이 도착했다. 현관에 들어오는 딸의 표정부터 살폈다.
'편안한가?'
예전 돌봄 도우미가 바뀌고 어린이집 처음 등원하는 일이 겹치면서 새로운 상황으로 인해 아이가 눈을 비정상적으로 깜박거리는 증세가 생겼었다.
마침 수술 후 회복기간을 잘 지낸 첫 번째 돌봄 도우미이모가 돌아오면서 해결되었었다. 이번엔 12월 내내 부모의 해외출장이 이어져서 아이정서가 불안해졌다. 보통은 번갈아 나갔는데 연말엔 시간조절이 어려웠나 보다.
그리고 긴장해서 눈을 깜박거리는 모습이 다시 나타나 마음이 무겁다.
"우리 함께 아이의 불안을 줄여보자."
"엄마, 요즘 주말에 또래들을 만나게 기회를 더 만들고 있어요."
행여 휴직을 할까 봐 불안한 내 마음을 읽은 속 깊은 작은 딸은 담담했다.
"얘 기준이라면, 할머니랑 사는 아이들은 죄다 불안장애 걸리게요? 아이가 적응해서 이겨내야죠."
"그래, 엄마도 노력할게. 엄마 도움이 필요할 땐 주저 말고 얘기해."
잦은 국내외 전학에 수반되던 불안 경험
말은 그렇게 해도 딸의 흔들리는 눈빛을 나는 진작에 눈치챘다. 학창 시절 국내외에서 12년 교육과정 중 무려 9개의 학교를 거치며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 스트레스를 직접 겪은 작은 딸이다.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해서 늘 우수해 보였던 딸의 마음속엔 엄마에게 보이지 않게 눌러둔 어려움들이 있었을게다.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악기연주를 통한 스트레스 해소였다.
악기만큼은 국내외 어디에서도 비슷했다. 물론 교재와 레슨스타일은 선생님에 따라 달랐다. 오히려 국내에서 악기 선생님 구하기가 더 어려웠다.
호주에선 음악인 부부에게 두 딸이 같이 레슨을 받았다. 러시아 출신인 피아노 교수는 몹시 엄격했다. 해외연주 스케줄로 바빠도 자신이 어린 시절에 배웠던 귀한 악보를 복사해서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었다.
예습을 해오지 않으면 들어가는 길로 레슨을 거부당한다. 6학년으로 국외전학한 딸아이는 새로운 문화에 적응 중 난감한 표정으로 악보가방을 들고 계단을 내려왔었다. 충분한 연습이 없으면 심지어 등급시험에 지도교사 사인을 해주지 않았다.
아이는 책 읽기를 워낙 좋아했던 시절이라 귀가 후 바지를 갈아입으면서도 손에 책을 들고 읽는 버릇이 치명적이었다. 피아노 치러 아래층에 내려간 뒤에도 피아노 소리가 안 나서 가보면 선 채 책에 두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독서 중독으로 내가 벌을 주기도 했다.
독서중독으로 인해 몇 번이나 그 시간 레슨비를 날렸다. 학생의 예습이 안되어 생긴 일이므로 약속된 시간의 레슨비는 발생했다. 덕분에 피아노 연습시간에 독서로 꾀를 부리는 일은 어림없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다행히 피아노교수의 남편이던 바이올린 선생님은 '시향 바이올린 연주자'로 마음이 좀 넉넉했다. 칭찬도 피아노선생님보다는 많았다. 억척스러움이 없이 낙천적인 작은아이의 끈기는 두 분 덕분에 길러졌을게다.
현대 조부모와 육아
현대의 젊은 부부가 직장생활과 양육을 병행하는 일에 예전과 달리 부모의 도움받기가어렵다.
도시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부모들이 퇴직 후 재취업을 시도한다. 도시의 공동주택 거주 노후생활은 농사가 가능한 시골과 달리 비생산적으로 온통 지출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마무리 후 여가로 자신의 커리어를 살려 동호회 활동과 유튜브, 그리고 크고 작은 수입 목적의 노인 일터를 이어가는 까닭도 있겠다.
전업주부였던 여성의 경우도 지자체의 취미활동 기회가 많아 자연스레 크고 작은 친목 활동에 참여한다. 건강한 사회적 활동의 노후를시작했다가 기한 없는 아이 돌봄을 전담하기는 쉽지 않다.
전문아이돌보미가 아닌 조부모의 아이 돌봄은 돌봄 방법에 대한 견해차이로 자칫 자녀와의 갈등을 맞기도 한다.
경험자들은 그런 연유로 노후를 맞아 막 자유를 맛본 친구들의 손주 전담 돌봄 시작을 만류한다.더구나 만혼풍조로 60대의 조부모육아는 건강에도 큰 무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노후 계획은 손주 돌봄이었다. 두 딸이 아이양육 때문에 나와 같이 직장생활이 멈춰서는 일은 없게. 공부를 그만큼 열심히 하고도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와 달리 자신의 꿈을 멈추는 일은 내 세대에서 끝나야 하므로.
이렇게 생각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 '엄마가 가까이 이사를 와주면 참 좋겠다'는 작은 딸의 바람을 못 들어주는 대신, 아이를 위해 그리고 리딩독 프로그램을 풍부하게 진행하기 위해 동화구연과 유아놀이, 문해교육 자격들을 배웠지만, 정작 어린 손주를 위해 사용해 줄 시간여유가 없다.
그래도 씩씩하게 자신의 일을 잘하는 딸, 가사와 육아에 열심히 참여하는 사위, 믿음직한 아이 돌봄이, 그리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아이가 고맙다. 친정엄마 몫을 못해주는 상황이니 딸내외에게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다.
서초구청에서 주관한 <조부모육아를 위한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젊은 친정엄마가 '딸과 계약서를 써서 급여와 근무시간을 정하고 시작했다'라고 했다. 매년 딸의 연봉상승률만큼 '돌봄 수고료'도 맞춰서 올리기로 했다는 그녀의 일화를 들으며 모두 격려의 박수를 보냈었다.
교대에서 육아 관련 강의를 위해 나오신 교수님은 그렇게 해야 서로 '윈윈(win win)'이라고 했다. 그렇게 도울 수 있는 친정엄마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손주는 복이 있다. 참으로 빠르게 변하는 사회분위기 속에 나는 어디쯤에 있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