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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현이 Aug 09. 2023

키 크는 게 싫다는 하진이에게


 엄마가 아프고, 할머니가 순천에 내려가고. 복수전공 이수를 위해 비대면 수업 몇 과목을 들어며 추가학기를 보내던 나는 눈앞으로 다가온 졸업에 무작정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작업은 안되고, 앞길은 막막하고. 그 막연함에 무작정 과외를 구해 돈이라도 벌자며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난 가장 어리게는 여섯 살부터 가장 많게는 칠십 대 어르신까지 가르치게 됐다. 


 가정 방문 과외를 하다 보면, 한 가정의 삶을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는 기분이다. 학습자를 통해, 그 집과 가족들을 보게 된다. 집도 분위기도 다 다르지만 또 어찌 보면 한국 가정집이, 사람 사는 게 어떤 부분에선 비슷하기도 하다. 일주일 동안 여섯 살 꼬맹이부터 칠십 대 노인까지 만나고 나면 와, 내 삶이 아래위로 확장되는 기분이 든다. 유리창 너머의 인생들을 보며 간접경험을 하는 느낌이랄까. 


 초등학교 일 학년이 되어 미술 학원을 그만두고 미술 개인과외를 시작한 하진이(가명). 그 하진이가 이제 초등학교 사 학년이다. 하진이의 어머니는 내게 아이를 소개하며, 또래보다 순수하고 해맑은 부분이 있다 하셨다. 정말로 하진인 계곡물 같이 투명한 눈과 어휘를 지녔다. 아직 강아지 인형과 함께 자는, 엉뚱한 질문과 상상을 하는 귀여운 아이지만, 어엿한 고학년이 된 남자아이에게 이젠 아기가 아닌 어린이, 어린이를 넘어 어린이와 청소년 그 사이의 단단함이 사뭇 보인다.


 어린 시절 나를 보고 “왜 이렇게 많이 컸어!” 하며 놀라던 어른들이 생각난다. 그게 괜한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아이들은 매주 볼 때마다 눈에 띄게 자라 있다. 내 모공이 쳐지는 속도보다 훨씬 더 눈에 띄게. 어릴 때 난 많이 컸다는 말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있었는데, 하진이는 키 크는 것도 손이 자라는 것도 몸무게가 느는 것도 싫단다. 맑은 눈으로 나이 드는 게 싫다는, 영원히 아이이고 싶다는 하진이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안다.  


 어른들은 어린이를 보며 자주 말한다. "그때가 가장 좋을 때다"

또 자주 부러워한다. "부럽다, 돈 벌 걱정도 없고" 

 그러나 난 아이들이 고민 없고 속 편할 거란 생각에 결사 반대한다! 그때엔 그때의 몸이 감당하는 고통이 있다. 어른은 겪지 않아도 되는 난관이 있다. 예컨대 키가 자라 무릎이 욱신 거리고. 보폭이 좁아 어른에겐 쉬운 거리가 버거운. 내 몸과 다른 세상에서 새로운 게 더 많고 그만큼 낯설고 적응할게 많은. 생각보다 아이들은 힘겨운 견디기를 날마다 해내고 있다. 


  난 어릴 때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사는 게 재미없었달까. 유치원에서 친구들이랑 해맑게 웃고 노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쟤네는 뭐가 그리 재밌지?” 

 난 세상에 태어나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아이였다. 내 몸을 기준으로 나와 내가 아닌 것들로 이뤄진 이 세상에서, 모든 새로운 것은 낯설고 배워야 하는 것 투성이었다. 남들은 쉽게 해내는 것만 같은 일들, 버스카드를 찍고 버스에 타기, 물건을 구입하기 등 모든 일들의 처음은 긴장감이 가득했다. 머릿속으로 순서를 그려보고 직접 해보는 상상을 한 뒤 시행을 여러 차례 해봐야 그제야 내 세상이 됐다. 


 반 오십 정도(?) 되니 이제야 좀 편하다. 여전히 새로운 게 많지만 그 새로움이 비단 낯설고 두려운 일이 아닌, 내가 축적한 경험과 지식으로 부딪혀 볼만한 설레는 긴장을 주는 게 되었다. 이제 세상은, 미래는 두려움보단 기대해 볼 법한 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말로 못할 시행착오와 내면의 굴곡이 있었지만. 

가만히 있어도 한 살 한 살 나이가 부과되는 거라면,  난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꼭! 어릴 때 보다 행복한 어른도 있다 말해주고 싶다. 


“하진아. 나이 드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선생님은 하진이 나이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고 사는 게 재밌어.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되잖아. 그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거든. 하진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잘 알고 이해하게 되면 좋겠지?”


생각보다 어린이들은 어렵다 생각되는 말도 잘 이해한다.


 할머니의 늙어가는 몸에서 점점 흐미해지는 총명함과 선명해지는 고집에서 난 어렴풋이 나의 미래를 보았다. 내가 늙어갈 여성의 몸을 보았다. 그때는 결코 알지 못했던 할머니의 마음을 시간이 지나며 더 알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늙어가는 게 꼭 슬픈 일 만은 아니다. 

 내가 너무나 사랑했지만 그땐 미처 보지 못했던 어떤 이를 점점 더 알 수 있을 테니. 글을 쓰며 내 생각을 눈으로 마주하니 기대가 된다. 내가 사랑한 할머니와 더욱 가까워질, 점점 깊어져갈 여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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