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명확한건 할머니의 삶에 대해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거다. 할머니는 많은 말을 나에게 했고, 그래서 난 정말로 할머니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몸의 기억을 깨우고자 과거의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보았지만 보지 못했던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분당에서 우리와 함께 살기로 한 이후 할머니는 가족사진 속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난 할머니가 분당에서 행복하게 살았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진 속 할머니는 어딘지 모르게 이방인 같았다.
면밀히 따져보면, 할머니는 분당에 처음 왔을 때 많이 외로워했다. 순천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새로운 환경에 대한 낯섦,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어린 내게 늘상 토로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할머니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청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말들은 가벼이 지나갔다. 이후 분당 생활을 좋아하던 그 말들 만을 난 기억하고 있었다. 할머니에 대한 나의 기억은 그녀에 대한 내 죄책감과 분리해 생각될 수 없었다. 난 내가 보고 싶고 생각하고 싶은 면모로서만 그녀를 기억하고 재구성 했다. 난 나와 가장 가까웠던 타인의 말 조차 듣지 못했다.
최근 분당에서 서울로 다시 이사를 왔다. 새로운 집과 길에서 분당에 처음 왔을때의 할머니의 몸을 상상하게 된다. 성인 이후에 경제적으로 오롯이 자립하지 못하고 부모님 집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떳떳하기 위해 집안일을 하고 있다. 왜 할머니가 그토록 집안일에 열과 성을 다했는지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다. 이사한 집에도 또 내가 따라 왔구나. 하는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럴수록 스스로의 존엄성을 위해 내 몫을 다하고자 한다. 할머니는 작은아들 집이어서 집안일을 한 게 아니다. 노인의 괜한 자존심을 내세운 것도 아니다. 한명의 개인으로 스스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위해 날마다 몸을 움직여 일을 한 거 아니었을까.
청소를 하다 내 입술 밖으로 할머니가 했던 말이 고대로 새어 나온다. 방바닥에 비닐이 떨어져 있으면 혹여 누가 밟고 넘어질까 줍는다. 난 오히려 할머니가 부재하는 지금 그녀의 소리를 듣는다. 할머니의 몸에서 흘러나온 말은 내 몸에 새겨졌다. 비록 그때는 그 말을 진정으로 듣지 못했지만, 그때 새겨진 말들이 내 안에서 소화되어 내 입술로 나온다. 그리고 난 그것들을 글로 적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난 얼마나 내가 그녀에 대해 무지했음을 깨닫게 된다. 난 비로소 내 몸 안에 울리는 그녀의 말을 듣게 된다.
나의 글과 영화는 결국 할머니를 다른 감각들로 치환해 내는 여정이었다. 과거에 사람이 죽으면 망자의 옷을 태웠다. 그러나 할머니의 옷은 여전히 순천 집 옷장에 있고 몇 개는 내 옷장에 있다. 내 아이폰은 할머니의 사진을 앨범으로 구성해 보여준다. 할머니는 죽었으나 나는 수천 장의 태우지 못할 사진을 갖고 있다. 할머니의 시신은 한줌의 재가 되어 납골당에 들어갔다. 그러나 난 그녀의 몸이 태워지는 걸 보지 못했다. 코로나 시기로 인해 가족 중 극 일부만 그걸 볼 수 있었다. 물리적 이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나의 작업은 수천장의 태우지 못하는 사진을 매순간 손에 이고 지는 내가 취할 수 있는 보내줌이었다. 처음엔 그녀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았다. 너무 사적인 이야기 안에 갇혀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많이 들었다. 이제야 조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할머니를 보낸 자리는 내 몸의 구멍이 되었다. 그 구멍으로 내가 아닌 모든 것을 보고 듣는 용기가 생겼다.
엄마가 아프다고 할머니가 반드시 순천에 내려가야만 했을까. 사실 그건 지금도 잘 모르겠다. 엄마가 아픈 이유를 찾아야만 했고, 누군가는 그 원인으로서의 책임을 지어야 했다. 가장 강해보였지만 실은 제일 약했던, 그 낡은 몸을 가진 여성에게 우리의 슬픔과 죄책감을 덮어 씌우려 했던거 아닐까. 가슴아픈 사실이지만. 우리 할머니 정도면 행복했지라고 말하고 싶지만. 부정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할머니는, 순심은 참으로 내게 가장 가까운 타인이었다. 난 할머니와 엄마 중 엄마를 더 사랑한다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엔 엄마를 더 위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의무감이 있었다. 나와 한 몸 이었던 여성에 대한 책무감이었을까. 할머니의 이야기가 내 안에서 소화가 되고 그것이 나의 글로 배출됨으로써, 내 몸을 둘러싼 태반은 찢어져 외부로의 유의미한 구멍이 열렸다. 그렇게 할머니는 내게 시간과 문자 그리고 외부를 들을 수 있는 구멍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