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_두줄이가나타났다!그리고 재검사.

그리고 재검사

by 이완

[21년 5월 25일]

"이런 거 처음 보지?” 아내의 손에는 임신 테스트기가 있었다. 테스트기에서 처음 볼만한 것? 후보는 하나뿐인데, 설마?! 두줄이었다. 두줄이가 나타났다!

테스트기는 갓 뽑아낸 두 줄의 자태를 당당히 뽐냈다. 타인의 삶에만 있던 야생의 두줄이가 예고 없이 내 일상에 등장했다. 직장인이 된 후로는 경험하기가 더 어려워진 가슴 설레는 질감이었다.


아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아내는 이미 임신 가능성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 주말 배가 당기고 몸이 평소와는 다르다고 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구차하지만.. 아내의 '이상한 느낌'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 문장을 적고 있자니 머릿속 쿨 제이가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꾸중한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있는 임신을 준비하는 남편이 있다면 아내가 느끼는 신체적 변화를 최대한 신뢰하는 현명한 선택을 하시길...


두줄이는 얄궂다. 판을 깔았을 때는 등장하지 않았고, 판을 잠시 접어두자 어디서 벌써 판을 접냐는 듯 등장했다. 그동안 몇 개의 테스트기와 어색한 이별을 하며 두줄이를 만나면 어떤 감정일지 궁금했다. 두줄이는 놀라움, 기대, 희망 등이 복합된 맛이 났다. 기존에도 늘 있었지만 나만 보지 못했던 세상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신이 났다. 엘리베이터 앞의 강아지처럼 없는 꼬리를 흔들며 집안 여기저기를 걸으며 에너지를 분출했다.


에너지 분출 중 문득 어제 아내가 병원에 다녀온 것이 떠올랐다. 피검사 결과 hcg 수치가 임신으로 보기에는 높지 않았다. 아기집도 보이지 않아 재검사를 받아야 했다. 자궁 외 임신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생각이 그곳에 미치자 산책을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매일 함께 일한 사수가 유산을 했던 일 이후, 임신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가 생겼다. 워낙 밝고 건강했던 사수였다. 임산부와 일을 처음 했는데, 조금 더 예민해진 것 외에 업무를 하는데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했다. 평소처럼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도 받던 사수는 너무 일상적인 어느 날 유산을 했다. 내 아이가 아니었지만 아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사수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 당시 특히 스트레스를 주었던 일과 회사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회사는 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내는 내일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다.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이 야속하다. 걱정을 아내에게 전달할 수는 없었다. 평소처럼 마무리를 하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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