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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 나 아빠 맞대!

by 이완

[21년 5월 26일]

오늘은 재검진 날이다. 지난 검사는 hgc 수치가 낮아 임신이 불확실했다. 수치가 얼마나 증가했는지에 따라 임신 여부가 가려진다. 어제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줄이를 만났지만, 오늘 아침 스멀스멀 걱정이 올라왔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동료의 유산이 준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유산 가능성을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온전히 다르다. 간접 경험한 유산이지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운전할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 운전면허를 준비하던 시기 차 사고가 있었다. 뒷좌석에 타고 있던 차가 앞의 차 드렁크와 포개졌다. 가벼운 접속 사고였지만, 내 생애 첫 차 사고였다. 이후 자동차를 타는 경험이 그 전과는 확연히 변했다. 보조석이나 버스에 앉아도 기존처럼 온전히 편안하게 있을 수 없었다. 운전면허를 딴 이후에도 운전은 즐겁지 않았다. 운전만 하고 나면 온 몸이 피곤했다. 차 사고를 아는 것과 경험으로 아는 것은 다르다.


재검진 전 나는 잡다한 걱정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이라 아내에게 전이되지 않도록 조심했다. 안심할 수 있는 좋은 일이 있었다. 아내는 퇴사했다. 정말 하늘이 도운 건지 오랫동안 그만두겠다고 생각한 회사를 좋은 조건으로 퇴사하게 되었다. 임신 증후를 느끼기 전에 결정된 퇴사였다. 물론 아내는 퇴사 후 계획들이 무산되었지만,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어제부터 집에서 쉬게 된 아내는 '잠자는 도시 속 공주'가 되었다. 아침에는 늦잠, 낮에는 낮잠, 밤에는 꿀잠. 원래 잠이 많던 아내였는데 한계에 시험하듯 잠에 도전했다.


아내의 도전을 방해하는 전차가 있었다. 내가 잠이 들면 내 코에서 기동 하는 전차인데, 이건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존재였다. 혀 근육이 있으면 나아진다고 매일 혀 운동과 풍선 불기를 하지만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임신한 아내와 아이의 잠 복지를 위해 1인용 접이식 매트리스를 샀다. 이젠 잠은 넓은 거실에서 잔다. 원룸 같다. 출근하는 아침이면 거실에서 조용히 머리를 말리고 나간다.


회사를 가면 금방 배가 고프고, 조금은 천천히 점심시간이 온다. 점심을 먹고 회의에 참석하니 병원을 간다고 했던 3시가 되었다. '이제 병원 가'란 말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톡으로 물어볼까도 했지만 부담이 될까 참았다. 몸은 회의실에 있지만 시계와 톡에 신경이 온통 가 있았다. 회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기다리던 휴대폰에 아내의 전화가 왔다. 회의 중이라 받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콩밭이라 그런지 눈치 없는 회의는 수확도 없이 길어졌다. 그동안 익힌 스킬로 몰래 휴대폰을 봤지만 메시지는 없었다. 이 전화가 무슨 의미일지 궁금했다. 유난히 길었던 회의를 마치고 전화를 했다.


"나 임신 맞대!"

'나 아빠 맞대!'로 들렸다.


내가 아빠라니! 어제 두줄이를 보았지만,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임신은 또 다른 종류의 기쁨이었다. 마치 최종 합격 후 기대 이상의 연봉 협상까지 진행된 느낌이랄까. 우리는 흥분된 목소리로 서로 기쁨을 나눴다. 임신이 확정되었지만,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었기에 여전히 실감 나지는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아니 왜 여전히 회사지? 지금 이 텐션은 회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소리를 치며 방방 뛰고 싶었지만 상상 속에서만 텐션을 높였다. 마스크 뒤에서 계속 '아빠라고?'를 되뇌며 웃었다. 보이는 모든 텍스트가 임신, 아이, 출산, 아빠, 가장으로 번역된 모니터 앞에서 나는 또 월급을 루팡 했다. 운동선수들은 분유 버프를 받아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내던데, 나는 왜 이 와중에도 빨리 집에 가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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