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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Nov 22. 2024

인상도 습관이다.

아마도 고등학생이었을 것 같다. 알토란과 비슷한 이름의 학원에 다녔다. 그곳은 학생을 처벌하는 학원으로 유명했다. 8층 정도되는 큰 건물 전체가 학원이었다. 지하에는 자습실이 있었고, 매점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문제 학생도 공부에 집중하도록 지도하는 것으로 유명세를 떨친 학원답게 모든 선생님이 검은색 테이프를 두른 개인 몽둥이를 보유했다. 선생님에 따라 엉덩이를 때리기 좋게 긴 막대기를 들고 다니기도 했다. 숙제를 안 하거나, 졸거나, 틀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선생님 맘에 안 들거나 등의 이유로 맞았다. 자주 복도에서 선생님의 큰 소리와 함께 엉덩이 맞는 소리가 났다.


학창 시절에는 늘 전설적인 존재가 존재한다. 이 학원에도 그런 존재가 있었다. 그 선생님이 우리 반에 배정되었다. 소문은 진짜였다. 인자한 얼굴로 웃으며 자기소개를 하던 선생님은 한순간의 교실 분위기를 뒤집었다. 책상을 발로 차고 학생은 거의 날아갔던 같다. 이 기억이 사실인지 왜곡된 것인지 조차 가물하지만, 여전히 그 선생님의 인상은 선명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시원하게 생긴 남자였다. 그 사람의 특징은 미간에 있었다. 깊고 진한 주름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그 정도의 깊이와 두께는 본 적이 없다. 아마 볼펜도 꽃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 미간은 그 선생님의 카리스마의 핵심이었다. 강한 눈빛과 함께 미간이 찌푸리면, 너무나 무서웠다. 미간의 강력함 때문인지 평소에도 그의 미간은 온전히 펴지지 않았다. 주름이 각지게 잡혀있고, 인상을 쓰면 움푹 미간이 들어갔다. 그의 미간을 살피며 그의 기분을 살폈던 것 같다. 


질풍노도의 시기, 그런 카리스마를 갖고 싶었던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각자의 미간을 누르며 카리스마를 뽐냈다.  나는 그 친구들을 비웃고, 혼자 거울 앞에서 미간을 눌러가며 인상을 써봤다. 꽤 여러 번 그랬다. 그때 이후로 일까? 나는 계속 카리스마 풍기는 인상을 갖고 싶었다. 외모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카리스마 있는 외모가 멋있다고 생각했고 갖고 싶었다. 대학교 입학 선물로 받는 안경테를 고를 때도 카리스마를 찾았다. 엄마에게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안경테를 사고 싶다고 말했고, 잠깐 당황한 듯한 엄마는 애써 그런 테를 찾아주고 내게 카리스마 있어 보인다고 말해주신 기억이 있다. 증명사진을 찍을 때도 억지로 웃고 싶지 않았지만, 사진작가의 웃으란 말에 거절할 순 없었다. 그러면 늘 마음에 안 들게 올라간 입꼬리가 찍힌 사진을 받았다. 사진작가 아저씨 말을 적당히 무를 수 있을 때는 무표정하게 사진을 찍었다. 


생각이 바뀐 건 결혼사진을 찍을 때쯤이었다. 결혼식 사진에서는 카리스마를 뽐낼 수 없다. 충실한 아내의 배경 역할을 하기 위해선, 함께 적절한 미소를 보여줘야 한다. 거의 6시간 촬영을 하며, 절실하게 느꼈다. 내 미소가 얼마나 어색한지. 생각도 바뀌었다. 카리스마 넘치기보다 멋진 웃음을 가진 남자가 더 멋있어 보였다. 누군가를 카리스마로 압도하고, 위협을 주기보다 함께 웃고 즐거운 것이 더 좋았다. 


그때부터, 매일 아침 웃는 연습을 한다. 웃는 연습이라 하면 거창하지만, 거울보고 한번 웃는다. 꼭 웃으면 비웃는 것처럼 한쪽 입꼬리만 많이 올라갔는데, 매일 신경 써서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비슷해졌다. 또 매일 한 번씩 웃는 연습을 하니 웃어야 할 상황에 내 모습이 어떨까 덜 걱정하며 웃는다. 이제는 친구 결혼식에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예전보다는 자연스럽게 웃는다. 회사에서도 이제 웃음을 많이 쓴다. 웃음이 느니 과거보다 여유도 생긴 것 같고, 동료들과도 한결 편하다. 한 번은 너 웃는 게 참 이쁘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좀 수줍긴 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 때문일까? 아내와 연애할 때의 사진을 본 사람들은 지금 용 됐다며 아내의 센스를 칭찬한다. 나는 속으로 내 웃음 연습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습관은 인상도 바꾼다. 

많이 웃는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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