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남구에 달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달을 볼 수 있는 마을이라 달동(月洞)이 아니다. 은월봉의 산자락 아래 평평한 땅에 자리 잡은 평지마을이라는 뜻의 달동(達洞)이다. 잘난것 없는 편편함, 두드러짐 없는 평지는 그저 무난하다. 이런 평지를 나타내는 달(達)의 원래 뜻은 '통달하다'는 뜻이다. 세상의 진리를 깨우치고, 도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은 누구에게도 티 나지 않는 평범함을 갖추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모난 것 없는 평평한 땅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흐르다 울산만으로 들어가는 하천이 여천천(呂川川)이다. 격(激) 하지도 않고 모나지도 않은 하천이 여천천이다. 그래서 주택단지를 흐르다 공단이 몰려있는 여천동에 이르러서도 크게 불만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흐른다. 당신은 당신의 삶에 급격하게 끼어든 불편함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공장에서 내놓는 각종 폐수를 별말 없이 상류에서부터 흘러온 물에 꾹꾹 눌러 담던 하천이 여천천이다.
공단의 오염원은 여천천을 깊이 병들게 만들었다. 시커먼 물과 악취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천천을 외면하게 하였고,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물은 울산만의 바다를 만나면서 겨우 희석이 되곤 하였다. 산다는 게 그런 것이었다. 누구에게 위로받을 수도 없고, 개선될 여지가 없는 환경은 여천천의 앞날을 우울하고 어둡게만 만들었다.
고인물에 꽃을 피우고
하천의 하류로 갈수록 물의 흐름이 느려지고 짙은 녹조가 끼어 냄새가 심해지는 하천, 이런 곳에 어느 날부터 생명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연못이나 늪에 무리를 이루어서 피는 식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대만 등 동북아를 중심으로 자신의 서식지를 확장해가는 식물이었다. 땅속에 덩이로 된 줄기를 키우는 이 식물은 매자기이다.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새섬매자기를 비롯해, 좀매자기, 큰매자기 등 여러 이름으로 구분되기도 하는 식물이다. 매자기는 삼각기둥의 줄기로 질퍽거리는 습지에서 스스로를 세우며, 갈색의 드러나지 않는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한 줄기씩 올라와 꽃을 피우는 매자기는 어찌 보면 매우 연약해 보이지만 다른 식물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공간에 자리를 잡고 군락을 이루는 대견함이 있는 식물이다.
굵은 지하경은 겨울철 철새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며, 봄이나 가을에 매자기의 뿌리를 캐어 먹으면 피가 잘 돌고, 소화에도 도움을 준다. 가만히 보면 세상에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다 자신의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보고 안 보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 충실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나는 악조건의 세상을 살아가며 불평불만보다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한 적이 얼마나 될까. 남들이 보기에 각진 삶을 살아도 스스로 충실하면 그 삶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공단의 매연이 심하면 어떤가, 오염으로 악취가 나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내가 성장하는 것이고 그 안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여천천의 매자기는 오늘도 화사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