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18코스는 칠포해변에서 화진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길로 칠포, 오도, 청진, 이가, 월포, 조사로 이어지는 해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바닷길이다. 과거에는 대부분 어업에 의존하는 마을이어서 해양문화의 하나인 동신당 문화가 발달했으며, 그 문화가 아직 살아 있는 마을들이 많다. 조금만 발품을 판다면 칠포리의 멋진 암각화군을 감상할 수도 있다.
바위 위에 새겨지는(칠포해변-칠포리-해오름전망대)
칠포해변의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내리는 비를 보다 갑자기 내 형편이 딱해 보인다. 누군가 지금의 나를 보면 이런 겨울에 비에 젖어 추레한 모습으로 걸어야 하느냐고 이야기할 텐데. 몸이 식으니 추위가 밀려온다. 지금부터는 바람에 맞서 해변을 걷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해변길을 걸을 경우 칠포리가 보이는 바닷가에서 곰솔을 머리에 이고 서있는 '귀암'을 볼 수 있지만 포기하고 육지 쪽의 도로로 가기로 했다. 몸을 일으켜 도로를 따라 걷는데 갓길이 없어 처음부터 고역이다. 이제까지 안보이던 차들도 갑자기 지나가며 긴장감을 높인다. 우산은 기능을 다해 그냥 걷는데 지나던 1톤 트럭이 내 옆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린다.
" 어디까지 가세요? 타세요. 태워드릴게요."
" 아뇨, 괜찮습니다. 지금 해파랑길 걷고 있는 중입니다."
" 그래도, 비가 너무 오는데 마을까지 만이라도 타고 가세요."
"(힘을 주어) 하하,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 몸살 나실 거 같은데, 타고 가시지. 조심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타고 싶었다. 조금만 더 설득했으면 타고 갔을지도 모른다. 따듯함과 편함, 그런 것들에 대한 기대감이 나를 약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코스를 다 걷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닌데' 그런데 지금은 내가 차를 타자고 생각한 것이 아니다. 나의 생각이 아닐 경우는 그냥 걷는다. 결정을 내리니 길을 걷는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갓길도 눈에 들어온다. 차를 세워 권유해준 분이 정말 고마왔다. 운전을 하면서 낯선 사람을 태워주겠다고 말 붙이는 게 정말 어려운 일임을 잘 안다. 어제도 한번 빗속에서 차를 세우고 태워주겠다는 이가 있었는데 거절을 하면서도 기분이 좋았었다. 걷다 보면 길에서 작은 친절을 만나게 된다. 친절을 베푼 이에게는 작은 것이지만 그것을 받은 이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칠포 1리로 들어가는 길 옆에서 '영일 칠포리 암각화군' 안내판을 읽고 암각화를 둘러본다. 칠포리 일대는 암각화가 많이 있다. 이 바위에는 V자 형태의 칼 모양의 암각화와 삼각형의 화살촉이 그려져 있다는데 잘 안 보인다. 이암이 풍화가 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바위의 원래 형태가 그런 건지, 사람이 파 놓은 건지 구분이 안된다. 비가 내려 성혈에 물이 차고 다른 흔적에도 물이 차면서 형태가 조금 드러나 있어 아 저것이겠구나 라고 짐작이 가긴 한다. 예전에는 이 근처에 있는 숙소에서 자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일대의 암각화를 둘러보았었다. 곤륜산 산자락 계곡의 암각화에 새겨진 그림은 마치 갑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 같기도 하고 외계인 가족이 자신들의 모습을 새겨 놓은 것 같기도 한 모습에 반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혼자 걷는 해파랑길은 과거의 소중한 기억들을 되새겨 보는 길이다. 슬프고 속상한 기억들은 파도에 씻어 버리고, 좋은 기억을 암각화처럼 추억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칠포마을 앞 해변의 끝자락에서 외로이 마을을 바라보는 귀암
칠포리 암각화군 안내판과 암각화가 그려진 바위, 빗길에 다가갔다 미끄러지고 말았다.
바위 위에 있는 성혈 구멍과 암각화의 흔적을 채워진 물의 형태로 확인한다.
칠포 1리 입구에 있는 중국집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매번 이곳에 올 때면 문이 닫혀 있거나 요리를 만드는 사장님이 외출을 나가서 음식을 먹지 못하고 돌아 나와야 했었는데 오늘은 운이 좋다. 추운 날에는 뜨끈한 짬뽕이 만족도가 가장 높다. 따뜻한 국물로 속을 채우니 발길에 힘이 솟는다. 마을의 안쪽 길가에 새로 편의점이 생겼다. 마침 망가진 우산을 버리고 새 우산을 사러 편의점을 들렀다. 우산이 자꾸 뒤집히다 망가졌다고 하니 친절한 여주인은 살이 단단한 장우산을 쓰는 게 좋다고 한다. 빨간색 장우산을 샀다. 살이 정말 탄탄했다. 점심을 먹은 데다 비도 막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바닷가로 나가자 강한 바람이 우산을 압박해왔다. 그래도 잘 버텨주는가 싶더니 10분도 못가 우지끈하고 우산살이 한꺼번에 부러지며 망가져 버렸다. 게다가 살이 부러지며 손가락을 스쳐 상처를 냈다. '아, 바람아!' 손에 간단히 밴드를 붙이고 비를 맞으며 걷는다. 오늘은 천상 비를 맞아야 하는가 보다. 뒤집힐 우산이 없으니 속은 편하다. 그냥 처음부터 이렇게 걸을 걸 그랬나. 비가 오는 날을 대비해 괜찮은 비옷을 준비해야 하는데 챙겨 오지를 않았다. 사실 이렇게까지 비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비보다 강하게 부는 북풍이 문제다. 배처럼 생긴 해오름전망대에 서서 벼랑 아래로 미친 듯 달려드는 파도들을 바라본다. 마치 파도와 바위가 서로 치고 박으며 싸우는 것만 같다. 당사자들이야 어느 한편이 머리가 터질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보는 나는 눈을 뗄 수가 없다. 이래서 사람들이 싸움구경을 하나보다.
칠포리에 있는 중국집에서 먹은 짬뽕. 따뜻한 국물은 가슴도 덥혀준다.
잠시나마 위로를 주었던 빨간 장우산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좋은 날을 떠올려 위로를 삼는다. 맑은 날의 해오름 전망대
처마 아래에서의 상념(해오름전망대-오도리해변-청진리-이가리-월포해변)
오도리 입구에 있는 물회집과 민박을 함께 하는 새로 지은 집의 문 앞에서 잠시 몸에 쌓인 비를 떨어냈다. 바로 앞에 곰솔을 당나무로 한 기와지붕의 서낭당이 있어 멀뚱 바라만 보다 다시 길을 간다. 오도리간이해변은 모래가 고운 백사장이 펼쳐진 곳이다. 오도리의 오도는 마을 앞에 있는 섬을 말한다. 섬의 이름이 마을의 이름이 되어버린 사례이다. 오도 2리의 길가에서 걷기 힘들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려 마침 길가에 있는 슬레이트 지붕의 서낭당으로 잠깐 몸을 피한다. 겉에서 보기에는 허름한데 서낭당 주변을 청소해 놓은 것을 보면 누군가 정성스레 관리하고 있는 곳이다. 바다 습기에 녹슬지 말라고 자물쇠를 비닐로 덮어 묶어 놓은 것을 보면 꽤나 꼼꼼한 사람이다. 처마 아래에서 일자로 가늘게 보이는 바깥의 풍경을 본다. 가끔씩 차가 촤아 소리를 내며 물을 튕기고 지나간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음식폐기물처리장 결사반대한다'라고 써 놓은 현수막 너머로 하얀 파도가 바위를 넘고 있다. 해파랑길을 걸으며 왜 그렇게 서낭당만 보느냐고 누가 물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은 서낭당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해파랑길을 걷다 보면 노거수나 눈에 띌 정도로 수형이 좋은 나무들은 대부분 마을에서 잘 보호하는 당나무일 경우가 많다. 나에게 있어서 서낭당은 지역의 생태와 문화를 읽는 중요한 자원이다. 그래서 이 자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특히 동해의 해신당을 중심으로 한 서낭당을 읽으면 7번 국도를 따라 동해안에 자리 잡은 마을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짐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서낭당을 보면 친근한 느낌이 들고 들러보게 된다.
서낭당 추녀 밖으로 보이는 비 내리는 겨울바다.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처량하다.
사방기념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바라본 풍경. 이런 날은 가 볼 수가 없다.
오도 2리의 도로를 따라 사방기념공원 앞을 지나간다. 우리나라 산림녹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 지역의 산림녹화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올 정도로 의의가 큰 곳이다. 우리나라의 산림은 이제 임목량이나 숲의 질에 있어서 매우 좋아졌지만 역으로 그 때문에 산불이 나면 대규모로 화재가 발전하는 경우가 많아지기도 했다. 잘 심고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지키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비는 줄어들 줄 모르는데 길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들이 낭만적으로 보인다. '저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혼자 걸을 때 스스로 청승맞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어떻게 할까. 나는 밝은 음악을 듣거나 어디 재미있는 것 없나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무엇인가 다른 것에 열중하는 게 좋다.
오도리를 지나 청진리로 향한다. 청진리는 푸나리를 한자로 바꾼 것인데 푸른 나리의 준말이다. 그런데 푸른 나리라는 것이 무엇일까? 청진(靑津)이 '나루진'자를 쓰니 '푸른 나루'를 말하는 것이다. 청진의 바닷물이 맑고 푸르러 붙여진 이름 같은데 예전에도 이 마을에는 푸른 송림이 울창했다고 한다. 소나무로 인해 푸른 숲이 있는 나루여서 붙인 이름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푸른 바닷물이 더 유력해 보인다. 파도가 잔잔할 때 이 마을의 바다를 본 사람이라면 선택하는데 그리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 청진 1리에는 옛날 부족장의 딸인 헤수가와 마을 청년 무돌이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전해지는 연인바위가 있다. 연인들 앞을 비를 맞으며 지나간다. 소나무숲 사이로 보이는 이가리 해변에는 전망대를 짓고 있다. 푸르디푸른 해안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또 한 곳 마련되고 있다.
청진 2리의 푸른 바다와 방파제.
연인들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있는 청진 1리의 연인바위
이가리 해변의 파도. 멀리 닻전망대를 만들고 있다. 지금은 명소가 되었다.
광어를 맨손으로 잡던(월포해변-방어리해안-조사리해변-화진해변)
서정천하구를 건너 월포해변으로 나간다 그치지 않는 비는 서서히 사람을 지치게 한다. 숙소를 나온 지 8시간이 지났다. 청하천을 건너 방어리의 버스정류장에 앉아 잠깐 비를 피한다. 버스정류장에도 땅 매매에 관한 전단지가 여러 장 붙어 있는 걸 보면 이곳도 이제 개발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나 보다. 이 나라 어딜 간들 개발 안 하는 곳이 있을까. 땅값을 올리려 개발을 하는 건지, 개발을 해서 땅값이 오르는 것인지 이제는 그것도 잘 모르겠다.
3년 전 해파랑길을 걸을 때 방어리의 해안을 지나가다 수심이 얕은 바다에 있는 광어를 발견했다. "어 저게 어떻게?" 양말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 광어를 두 손으로 잡았다. 힘도 꽤 좋은 놈인데. 양어장에서 탈출한 녀석 같다. 그런데 광어를 잡고 나니 문제가 생겼다. "이걸 어떻게 하나?" 들고 가서 저녁에 회를 떠먹나? 아니면 칼이고 뭐고 없으니 어디 한적한 데 가서 생식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다시 광어를 바다로 돌려보내고 양말과 신발을 챙겨 신었다. 광어는 잠시 바다 바닥에 머무르다 먼바다로 헤엄쳐 갔다. 그때 드는 생각 '아, 아무래도 난 낚시 체질은 아닌가 보다'
길을 걷다 뒤돌아 서서 청하천 너머 월포해변을 본다.
방어리의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쉬어간다
바닷가에서 맨손으로 만났던 탈출 광어, 그는 결국 바다에서 자유를 얻었고 나는 아직 그 감촉을 기억하고 있다.
방어리와 조사리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 광천이다. 하천의 폭이 넓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광천은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다. 여름에 광천의 하천 바닥으로 내려가면 뜨거운 햇살 때문에 견디지를 못하겠는데 고마리, 익모초, 소리쟁이 같은 식물들은 돌 틈에 섞여서 드문드문 살아가고 있어 그들의 생존능력에 경탄하게 된다. 광천하구 남쪽의 곰솔숲에는 서낭당과 성혈 바위와 원각조사비가 있다. 우리가 걸으면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을 잘 살펴보면 귀한 문화유산들이 많이 있다. 걸으며 그런 것들을 모두 보고 갈 수는 없지만, 우연히라도 이들을 마주친다면 잠깐 쉬면서 세월의 기록들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화진리를 지나며 어둠이 내린다. 어둠 속에서 안내 화살표를 찾지 못하고 화진 3리 마을에서 길을 잃었다. 큰길까지 갔다가 차들이 쌩쌩 달리며 물을 튀기는 길을 갈 수 없어 다시 마을로 들어와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 나오니 들판이다. 어찌어찌 논길을 따라 인적 없는 화진해수욕장을 도착한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어딘가 쉴 곳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