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구리
능선에 선 굴참나무도 바람에 등을 돌리는 곳
아침 햇살은 산을 넘다 붉게 변한 벼랑에서
한나절쯤 쉬어 가는 곳
돌리네 심은 콩들이 땅을 가꾸며
강원도의 굽이진 주름을 펴고
늙은 어머니의 걱정을 등에 업은 채
하나 둘 꼬투리에 알을 채워 나가는 곳
고개 너머 언덕바지 바람을 삭이던 은행나무*
삼국에서 공양이며 목조에 귀 기울이며
꺼풀 벗겨진 세월 구렁이 된 중과 함께 하더니
이제는 가는귀 먹었는지 부름에 답이 없다
아직 산에는 햇빛이 가득한데
바람은 엷은 단풍 위에 맴돌며 잎들을 흔드고
하릴없는 마음은 굽이굽이 산속에 쭈그려 앉아
지장수 한잔에 감자전 구울 생각만 가득하다.
* 은행나무 :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 수령이 1500년이라고 한다.
* 공양왕, 목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