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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냉이 Oct 28. 2023

늑구리

늑구리


능선에 선 굴참나무도 바람에 등을 돌리는 곳

아침 햇살은 산을 넘다 붉게 변한 벼랑에서

한나절쯤 쉬어 가는 곳

돌리네 심은 콩들이 땅을 가꾸며

강원도의 굽이진 주름을 펴고

늙은 어머니의 걱정을 등에 업은 채

하나 둘 꼬투리에 알을 채워 나가는 곳

고개 너머 언덕바지 바람을 삭이던 은행나무*

삼국에서 공양이며 목조에 귀 기울이며

꺼풀 벗겨진 세월 구렁이 된 중과 함께 하더니

이제는 가는귀 먹었는지 부름에 답이 없다

아직 산에는 햇빛이 가득한데

바람은 엷은 단풍 위에 맴돌며 잎들을 흔드고

하릴없는 마음은 굽이굽이 산속에 쭈그려 앉아

지장수 한잔에 감자전 구울 생각만 가득하다.


* 은행나무 :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 수령이 1500년이라고 한다.

* 공양왕, 목조



늑구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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