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아요

by 물냉이

녹아요


거리에 가득 겨울이 내렸어요

다가오던 봄바람도 두려운 듯

뒤돌아 서 있어요

지난가을 마른 쑥대에

씻지 못한 원망이 쌓였어요

새벽 서슬에 언 자작나무

차디차게 고개 돌리고

현호색 보랏빛 꽃잎

멍이 들고 말았어요

기다려 보세요

밝은 햇살이 다가오고 있어요

기다려 보세요

소리 없이 봄비도 내릴 거예요

저해가 높이 뜨면

봄비에 적셔지면

녹아내릴 거예요

소나무 층층 쌓인 설움도

쑥대 가득한 원망도

앉은부채 연자주빛 꽃대 올리듯

계곡에 물 흐르듯

녹아내릴 거예요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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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파랑길 29코스. 꽁꽁 언 산길의 소나무도 중천의 햇살엔 금방 녹아버린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추위도 언제 그랬냐는 듯,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기다림, 감사, 소망하는 일들이 우리를 녹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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