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마무리를 하는 방법 중 맥주 한 캔만 한 게 있을까.
시원한 탄산과 깔끔한 끝맛.
금방 취하지도 않으니 정신 말짱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맥주는 술이 아니라 음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맥주만으로 취하기는 힘든데, 취하지도 않는 게 술이냐며.
하지만 난 이제 맥주에도 취할 수 있는 체력을 갖게 됐고,
부어라 마셔라 하며 내일이 없다는 듯이 마시기엔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다.
게다가 그 직장은 술 냄새를 절대 풍기면 안 되는 곳.
지금보다 어릴 땐 맥주 맛도 안 좋아하는 소주파였다.
구수한 맛보다는 달달하고 사과향 나는 소주맛을 좋아했고, 톡 쏘는 탄산보다는 화해지는 소주의 알싸함이 더 좋았다.
그러던 내가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 건 21살 때 싱가포르 여행을 가서 맛본 타이거 맥주 덕분이다.
그때 처음으로 맥주의 구수함이 커피같이 고소하다고 느껴졌고, 목이 따가운 탄산이 개운하다고 느껴졌다.
한국에 돌아와 편의점을 가니, 타이거 맥주를 팔고 있었다.
그때부터 줄곧 그 맥주만 마시다가, 점점 나의 맥주 영역이 넓어졌다.
어떤 하루는 평온하고 잔잔하기도 하다.
그런 날은 맥주 생각도 잘 안 난다.
그냥 그런 평온하고 잔잔한 마음으로 나의 하루를 마무리하면 된다.
그런데 어떤 하루는 마음이 답답하고 기운이 없기도 하다.
꼭 그런 날이면 그렇게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 마신 맥주는 세상 그 어떤 요리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
그 청량한 탄산이 목구멍으로 넘어와 따끔거리는 느낌, 입안 가득 구수하면서 달달한 향과 맛.
한 캔을 뚝딱 마시고 나면 혈액순환이 잘 되는 느낌이 들면서 살짝 알딸딸해지는데, 그 느낌도 참 좋다.
내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것은 아닌데, 모든 것이 선명하고 명료한 느낌은 또 아닌 그 느낌.
나는 나의 하루에 맥주 한 캔이 필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항상 평온하고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 마시는 맥주 한 캔이 내게는 큰 위로가 되어서, 맥주 한 캔이 필요한 날도 좋아해 보려 한다.
평온하기만 한 인생보다는 고난도 있고 걱정도 있지만 그걸 잘 극복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우리네들 삶이니까.
그냥 이렇게 맥주 한 캔에 어려움을 툴툴 털어내고, 다시 또 내일을 살아가는 게 어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