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없는 마음

여유가 불안이 되는 이유

by 김청유

창문이 조금 열려있는 방안에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다. 햇빛도 열려있는 틈 사이로 들어왔고 흩날리는 먼지들만 햇빛이 비추는 공간에서 빛났다. 나는 햇빛 한줄기를 사이에 두고 여유와 분주함 그 사이에 있다. 해야하는 일도, 친구의 메세지도, 식어버린 차도 무시한 채 그저 창문을 보고 멍만 때린다. 매일 느끼는 분주함에 질려 버린 것인지 잠깐의 여유를 틈 타서 멍을 때리고 싶었던 것인지 안광은 점점 사라진채 해가 저무는 것을 보고 있었다.


급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하기 싫었던 것인지 이제는 일을 끝내도 그 후련함을 느끼지 못한 채 일이 없는 불안감에 좇겨 일을 만들어서 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일을 꾸준히 하다가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하다가 어느순간 그만두려는 마음이 생기면 먼저 막막한 미래부터 생각하면서 할 일을 만들기도 한다. 왜 사람들은 일하는 것에 울며 겨자먹기로 하면서 쉬는 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 불안에 익숙해져 바삐 움직이면 그 잠깐의 여유가 싫어져 다시 열심히 일을 한다.


일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알차게 쉬는가도 중요하다. 나는 누워서 폰을 보면서 허무하게 하루를 보내면 우울해진다. 꼭 내가 시간을 낭비한 것 같고 다음날이 되면 어제 왜 그렇게 의미없게 시간을 보냈는지 자책하게 된다. 일은 쌓여있지만 또 하기 싫어진다. 손은 좀처럼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무력함이었을까, 잠깐의 여유였을까 시계 초침소리에 맞춰 흩날리는 먼지를 한톨씩 세어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차라리 이렇게 시간을 보낼 거라면 제대로 쉬었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생각을 비운 그 공간에 다시 새로운 생각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서 자리 잡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끝없이 늘어난다. 왜 사람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꼭 불안한 방향으로 사고가 돌아가는 것일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또 느리게 움직였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마음의 평온이었다면 좋겠지만 사실은 모든 걸 흘려보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그 고요가 바쁜 삶의 위로였는지 도망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단지 그 사이에 앉아있을 뿐, 바람이 불면서 창문은 다시 닫혔고 해가 저물면서 흩날리는 먼지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 작은 움직임은 하루의 전부였다. 그리고 나는 그 멍을 여유라고 불렀다. 그러지 않으면 마음이 공허하여 또 스스로를 무능한 인간이라고 자책했을 것이다. 여유와 불안이 종이 한장 두께의 차이였다면 나는 그냥 여유라고 부르면서 쉬었다고 생각하려고..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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