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이 본질은'눈높이'이다
아이와의 하원길
아이와 함께 걷는 짧은 10~20분 동안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길가의 꽃이나 상점 자동차 등 여러 가지 소재를 삼아 간단한 게임을 하기도 한다.
자주 이루어지는 힐링은 아지만
가끔 나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순간이다.
어느 날, 다섯 살이 된 아이와 하원 길에 나란히 걸으며 무심코 물었다.
“오늘 간식은 뭐 먹었어?”
“그때 할머니가 사 오신 거 있잖아, 아홉 과자.”
“응? 아홉 과자?”
순간 귀를 의심했다. 과자 이름 중에 ‘아홉’이 붙은 게 있었던가.
아이는 내가 잘 모른다는 듯 자세히 설명을 이어갔다.
“빨간 봉지에 들어 있고, 초콜릿 많이 들어간 거. 아빠도 좋아하잖아.”
설명을 들을수록 감은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지 않는 그 정체불명의 ‘아홉 과자’.
결국 나는 아이에게 제안했다.
“아빠가 너무 궁금한데, 우리 편의점 가서 같이 찾아볼까?”
그러자 아이는 눈이 반짝이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작은 손이 힘차게 나를 끌어당겼다.
그 짧은 발걸음 속에 ‘아빠와 함께 무언가를 찾아간다’는 기대감이 가득 묻어 있었다.
편의점 문을 열자 아이는 금세 탐험가처럼 변했다.
반짝이는 눈을 더 크게 뜨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선반을 스캔했다.
그때 갑자기 환호성이 터졌다.
“찾았다! 아빠, 이거야 이거!”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다름 아닌 초코파이가 놓여 있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건 초코파이잖아. 아홉 과자라니~”
하지만 아이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니야. 여기 아홉이라고 쓰여 있잖아. 아빠는 글씨 잘 모르네~”
그리고는 포장지에 적힌 정(情) 한자를 짚으며 배시시 웃었다.
아이의 눈에는 그 복잡한 한자가 한글 '아홉'처럼 보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왜 아홉이지 했지만
순간 나도 웃음이 터졌지만, 곧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아이의 세계에서는 그 글씨가 진짜로 ‘아홉’이었으니까.
그 장면은 예전에 호텔에서 근무할 때 경험했던 일을 떠올리게 했다.
호텔 직원이거나 자주 찾는 단골 고객에게는
‘LOW LOBBY’라는 표기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처음 방문하는 손님에게는 ‘LOW LOBBY’라는 단어가 낯설고 혼란스럽게 다가오곤 했다.
호텔학과를 전공하는 실습생조차 자주 묻는 질문이었다.
"선배님 LL층은 무슨 뜻이에요?"
아차 싶은 순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객 동선에서는 익숙했던 그 표기를
안내판에서 점점 지양하기로 했다.
안내의 목적은 직원이 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아이가 ‘정’을 ‘아홉’으로 읽은 것도, 손님이 ‘LOW LOBBY’라는 단어에 혼란을 느낀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었다.
내가 아는 방식과 상대가 받아들이는 방식 사이에는 언제나 차이가 존재한다.
그 차이를 줄이는 일, 곧 눈높이를 맞추는 노력이 배려의 시작이었다.
아이의 해석은 엉뚱했지만, 그 안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만의 시선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고객이 안내판을 바라보던 장면이 겹쳐 떠올랐다.
나에게 익숙하다고 해서 모두에게 쉽고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가진 지식이나 익숙한 기준이 아니라,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눈높이를 찾아가는 마음이다.
그 배려는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의 배려로 나에게 돌아온다.
아이의 순수한 웃음처럼, 고객이 편안하게 호텔을 이용하는 표정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