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고유한 존재를 만나다
어릴 적 ‘은밀한’ 취미생활은 장난전화 걸기였다. 경찰서나 소방서에 걸진 않았다. 부모님 말씀 안 들으면 경찰관이 잡아간다는 말이 통할 시대였고, 나는 소심했다. 내 장난전화의 상대는 오직 한 명, O해정뿐이었다.
나는 특별히 예쁘지도,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다. 다른 재능이 있지도 않았다. 집안이 남달랐냐면, 세상에 사연 없는 가족이란 없는데 그게 어린 시절을 잡아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경제적으로도 다섯 식구가 단칸 셋방에 살았지만 주변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라 우울함을 느끼진 않았다. 그저 평범해서, 뭔가 특별하고 싶었다. 그러다 발견한 게 이름이었다. 딸만 내리 둘을 낳았던 엄마는 셋째마저 딸일까 부끄러워 집에서 아이를 낳았고, 그렇게 내가 태어났다. 그날 이후 나는 해정으로 불렸다. 반마다 한 명씩은 있었던 흔한 이름이었지만, 활자가 되는 순간 조금 특별해졌다. 그렇다. 내 이름의 가운데 자는 은혜 ‘혜(惠)’혹은 슬기로울 ‘혜(慧)’가 아닌, 바다 ‘해(海)’였다.
매년 집으로 배달되던 한국통신 전화번호부에서 똑같은 이름을 찾는 순간은 늘 짜릿했다. 언제나 열명을 넘지 않았는데, 나를 더 흥분시킨 건 모든 O해정이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어른스럽게 목소리를 꾸며 “여보세요? O해정 씨 댁이죠?” 전화를 걸면 “아빠”, “여보” 혹은 “할아버지”를 부르거나 어떤 사내가 “전데요” 하고 답했다. 요동치던 심장만큼이나 잽싸게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 세상에 여자 O해정은 나밖에 없다고. 몽실몽실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은 물론이고 담임 선생님조차 내 이름을 헷갈리곤 한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 년 내내 나는 그들에게 ‘혜정’으로 불리고 적혔다. 나의 특별함은 너무 사소했는지 무시되기 일쑤였다. 집 전화는 의례 세대주 명의로 개설되며, 대다수 세대주가 남성이라는 것도 그즈음 알았다.
가라앉은 마음이 다시 붕 떠오른 건 고등학교 졸업을 앞뒀을 때다. 생일이 12월인 나는 친구들 중에서 거의 꼴등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발급의 마지막 절차는 열 손가락 지문을 찍는 거였다. 주민등록증에 찍혀있는 엄지손가락 지문은 익숙했지만 십지 지문은 낯설어했던 내게 동사무소 직원이 말했다. “열 손가락 지문이 모두 다 달라요. 다른 사람과도 다르고요.” 이 말은 묘한 책임감을 불러일으켰다. 서류 칸칸에 맞혀 정성스럽게 지문을 찍고는, 잘 씻기지도 않던 인주를 비누로, 휴지로 한참 벅벅 문질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한참 뒤에야 알았다. 한때 신기하기만 했던 나의 특별한 지문이, 범죄자 색출을 위해 수집되고, 저장되었다는 건.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고, 부모와 형제, 친구와 이웃, 남편과 아이 등과 웃고 울고 토라지고 화해하며 깨달았다. 학교와 직장, 결혼과 육아 등의 일상을 살며 온몸으로 체감했다. 나는 이름이 특별하지 않아도, 지문으로 구분되지 않더라도 지구 상에 오로지 한 명뿐이라는 걸. 소울 메이트, 지음과 같은 영혼의 단짝은커녕 너무 사랑해서 만났다는 남편과도 번번이 엇갈렸다. 멀리서 보면 사람들의 세계는 얼추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한 발짝 다가서면 모두 제각각의 모습과 사연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살아내고 있다. 엄마가 종종 “너도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 키워봐라”며 분통을 터트리곤 하셨는데, 내가 낳은 자식도 속을 모르겠으니 그건 불가능한 일이구나 싶었다.
나는 종종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탄생하면 그들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해야 하냐는 질문을 받곤 했었는데, 여기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o해정이 만들어진다 해도 그 o해정은 나와 다른 인격일 수밖에 없다. 그가 현재에 공존한다 해도 설령, 과거와 미래에 새로운 o해정이 탄생한다 해도, 그는 내가 아니다.
나무가 당대의 기후부터 국가의 흥망성쇠까지를 켜켜이 줄기에 새기며 성장하듯, 인간에게도 사회의 나이테가 차곡히 새겨진다. 나는 1970년대에 한국, 그중에서도 서울에서 태어나 때론 시대에 몸을 맡기고, 또 때론 시대와 불화하며 성장해온 산물이었다. 내 성격, 생각, 취향, 취미, 지향, 꿈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총체인 삶과 세계관은 시대와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고 변화해왔다.
“인간이라는 점에서 모두 동일하면서도 어떤 누구도 지금껏 살았고, 현재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게 될 다른 누구와도 동일하지 않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은 그래서 옳았다.
나는 확언할 수 있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다시는 도래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인터뷰에 기반한 기록은 모든 인간은 고유하며, 다른 존재로 대체될 수 없는 존재임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인간이 동일한 시대, 같은 사건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내고 겪어냈음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다. 존재의 고유성에 기반한 인터뷰 기록은 다음의 특성을 지닌다.
첫째, 모두 서로 다른 존재라는 사실은, 한 사람을 이해하고, 그의 세계에 가닿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일깨운다. 인터뷰 경험이 많을수록 인터뷰어의 숙련도는 높아지겠지만, 인터뷰이는 늘 새로운 존재라는 점에서 인터뷰는 방법과 노하우에 속한 문제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방법과 기술로서의 인터뷰 방법론에 대한 지식보다는, 내가 전혀 모르는 다른 세계에 대한 겸손함이다.
동시에 인터뷰이와 독자를 연결하는 인터뷰어(기록자)는 서로 다른 세계들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할 때 좋은 인터뷰와 그에 따른 기록을 만들 수 있다. 기록은 타인의 세계가 나의 세계와 무관하지않음을 사람을 통해,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 우리의 무지를 일깨운다.
따라서 유일하고 유한한 존재를 무한한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는 그에 걸맞은 책임을 요구한다.
둘째, 인간은 모두 다르다는 점에서 기록의 대상이 인물이든, 사건이든, 장소이든, 어떤 물건이든, 인간과의 상호작용 하에 놓인 것이라면, 사람마다 고유하게 인식하고, 경험할 수밖에 없음을 일깨운다. 사람마다 생각과 사유, 감정이 다르기에 같은 사건도, 장소도, 물건도 각 개인들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되고 해석된다. 이를 표현하는 말, 언어가 다른 것 역시 필연적이다. 언어도 지문과 같아서, 언어를 활자화한 글이 같을 수는 없다. 동일한 실험 데이터에 기반해 쓰인 학문 언어조차 미세한 표현은 다르다. 따라서 모두의 말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차이에 기반한 기록, 차이를 드러내는 기록은 역사를,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좀 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든다. 공동체 상호 간의 소통과 이해 증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셋째, 모든 인간이 사회적 산물이라는 점에서 인간을 둘러싼, 혹은 그와 관계 맺은 것들에 대한 기록은 그를 둘러싼 사회에 대한 기록으로, 그 시대와 사회에 대한 이해의 토대를 제공한다.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 버린다.” 말리의 작가이자 민족학자인 아마 도우 함파테바의 1960년 유네스코 연설을 통해 유명해진 아프리카의 격언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널리 회자된 이 말은, 역사와 지혜, 경험이라는 공동체의 관점에서 한 존재의 중요성을 명쾌하게 드러낸다. 존재에 깊이 각인된 사회를 톺아보게도 한다.
당신의 기록이 고유한 인간과 시대가 깃든 세계와의 접속이라는 점에서 설렘과 기대로 열고 닫히기 바란다. 만남의 과정에서 좁은 우물 밖으로 나와 깨어지고 부서지며 성장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