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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으로서의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 2

'쉬운 철학 공부'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

by 사각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무엇인지 말하기 전에, 그와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종종 훌륭한 작가 분들이 철학적 이론이나 개념을 여러 비유와 이야기 구조 속에 배치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손쉽게 그것들을 이해하도록 의도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의 글을 읽은 사람들이 '이 작가님은 어려운 철학 내용을 쉽게 설명해 준다.'라거나, '훌륭한 글은 어려워선 안 되며, 훌륭한 철학도 마찬가지다.'라는 식으로 호의적인 코멘트를 달곤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독서 경험을 토대로 스스로 '철학 공부를 했다'고 여기게 됩니다. 더 구체적으론 해당 비유와 우화를 읽으며 느낀 '깨달음의 감정'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말하자면 니체의 철학을 통찰했다거나, 칸트의 개념을 이해했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바로 그런 감정들이 철학을 공부하는 동기이자 원동력일 수 있고, 또 이런 맥락에서 학문의 즐거움을 향유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지적 권리입니다. 저는 그 자체의 가치를 폄하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른바 철학적 역량을 고취시키고자 한다면, 감히 단언컨대, 철학을 공부하는 데 있어 깨달음의 '느낌', '주관적 감정' 같은 것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특히나 철학 공부를 입문하는 단계에선, 더더욱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우리가 무언가를 '손쉽게 이해하는 경우'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가장 단순한 예로 어린이 동화의 이야기를 상정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어린이 동화의 내용을 능숙하게 이해한다는 것, 아주 쉽게 파악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일까요? 바로 그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치부하는 습관', 혹은 '나에게 평소 익숙한 이야기 구조나 내용으로 재정립하여 파악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그런 내용을 여러 경로를 통해 많이 접해 봤기 때문에 그러한 이야기 구조를 다소 뻔하다고 느끼고, 실제로 이런 동화들은 으레 표준적인 진행을 따릅니다. 권선징악을 되새기든, 가족애를 일깨워주든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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