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5일 차

멋진 여행이 되길 바랄게.

by 도담과 솜

우리나라를 떠나 낯설고도 아름다운 이 땅을 밟은 지 벌써 5일째 되는 날이다. 이제야 이곳에 조금씩 적응 중인데 벌써 여행의 끝자락이라니 아쉬운 만큼 더 부지런히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의 기상시간은 항상 이른 새벽이다. 서둘러 짐을 캐리어에 구겨 넣고 마드리드행 기차를 타러 정들었던 숙소를 나선다. 오늘도 점심식사를 건너뛸 수 있으니 전날 미리 사놓은 스타벅스 커피와 마트에서 산 빵 몇 개를 가방에 챙겼다. 우리 계획에 의하면 마드리드행 기차역이 론다 첫 날 내렸던 버스터미널과 인접하다고 했다. 일단 묵직한 캐리어를 끌고 돌길을 걸어 걸어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기차 출발 10분 전.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곳에 있던 버스기사님께 물어본다.


"혹시, 마드리드행 렌페 타는 곳이 여기가 맞나요?"

"응? 뭐라는 거야. 기차역은 여기가 아니야. 저쪽으로 걸어가야 해"

"얼마나 걸릴까요?"

"여기서 4분? 가까워."

"감사합니다."


가깝다고 하길래 여유롭게 걸어가는데 아무리 걸어가도 기차역처럼 생긴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망했다. 이 기차를 놓치면 우리의 전체 일정이 다 틀어진다. 무엇보다 티켓도 미리 예약했고, 다음 렌페에 마드리드까지 가는 자리가 있을지도 불분명한 상황. 무조건 이 기차를 타야 한다. 구글맵. 구글맵을 켜자.


"야 진짜 망했어. 구글맵이 우리 있는 곳을 인식을 못해"

"와 이건 리얼이다. 이건 놓칠 수도 있겠는데?"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고 하지 않았어? 왜 안보이지?"

"기차 출발 5분 남았다."


일단 그 아저씨가 알려준 방향으로 무작정 뛰었다. 기차역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그냥 일단 뛰었다. 입은 바싹 말라가고, 너무 뛴 탓인지 목에서 피맛이 날 정도였다. 새벽 공기와 함께 으스스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골목들 보다 기차 놓치는 게 더 무서웠던 우리는 요란한 발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내달렸다. 얼마나 내달렸을까.


"기찻길이다!"


기찻길이 보였다. 그 길을 따라가면 그 길 끝에 기차역이 있지 않을까. 사실 웃음도 안 나왔다. 그냥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죽어라 뛰었다. 사실 이미 기차 출발시간은 조금 지나있었다. 저 멀리 조금씩 기차역이 보였다.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당장 매표소로 뛰어갔다.


"마드리드행 렌페 여기서 타나요?"

"응. 여기서 기다리면 돼."


이런 영화 같은 서사가 있나. 렌페가 연착되어 조금 늦게 도착한다고 말하는 매표소 언니의 얼굴이 너무 천사 같았다.(천사를 여러 명 만나는 편이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기차역에 앉아서 완전 방전이 된 우리는 벤치에 털썩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데 웃음이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아침을 밝히는 태양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먼 타국에서 온 우리에게 '너네 할 수 있어. 멋진 여행이 되길 바랄게'라고 응원하듯이.


우리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빵과 커피를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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