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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Nov 13. 2023

널 사랑하지 않아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이들을 위한 詩]


무슨 말을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개만 떨구는 나
그런 날 바라보는 너
그 어색한 침묵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그게 전부야
이게 내 진심인거야
널 사랑하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그게 전부야
이제 내 진심인거야
널 사랑하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그게 전부야
이게 내 진심인거야
널 사랑하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작사: 권순일


어반자카파 [스틸(STILL)] 2016


20대는 사랑의 특권을 가진 나이다. 인간의 본능으로 연애를 안하고 있으면 이상한 나이다. 그 나이에 나 역시 많은 '썸'들의 관계와 연애를 했고, 비교적 긴 연애상대도 있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은 연애보다 흑역사에 가까운 연애들이 압도적이다. 나의 연애는 이상한 구석이 참 많았다.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닌 사람을 순간적인 열정에 휩싸여 좋아했던 적이 많았고, 마치 마법에서 깨어난 것 같이 하루 아침에 상대가 싫어지기도 했다. 어리고 잔인했던 나는 호감이나 호기심을 사랑이라 착각하곤 했었다.


"도대체 나는 그때 왜 그랬지?"


매번 그런 식의 연애를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라는 책을 사서 읽기도 했다. 진짜 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려고 했으니까. 


책은 그저 내가 결핍이 많은 사람이란것만 알수 있었을뿐 그걸 해결하는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리고 매번 그런 미성숙한 연애패턴을 반복했다. 사실 상대에게 문제가 있었던게 아니었고, 그냥 변덕이 심한 내탓이었다. 그렇게 20대의 연애는 상대에게 금방 마음이 식어 주로 상처를 주고 끝나는 방식이었다.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아


진짜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태연하게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돌아서는 일이 얼마나 상대에게 고통을 안겨 줄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는 상대들도 그렇게 상처받지 않았을거라 막연하게 생각했던것 같다. 우리가 만난 시간이 길지 않으므로 내가 상대에게 마음의 빚을 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긴 연애는 되려 너무 많은 것을 주다 끝이 났으니 마음의 빚은 상대가 몫이라 생각했다.


짥으면 짧아서 미련이 없었고, 길면 길어서 미련이 남지 않았다. 연애가 원래 그런거 아니겠냐고 내 편한대로 쿨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신비한 균형감각을 유지하듯 그런 내게 너도 한번 당해보라고 경고를 내리는 일이 생겼다. 난 또 한번 열정에 휩싸였고 이별을 말하는 쪽에서 이별을 듣는 입장이 되었다.


바로 며칠전까지만해도 자신의 간과 쓸개를 빼줄것 같았던 남자는 갑자기 내 연락을 받지 않고 잠수를 탔다. 간신히 연락이 닿았고 나는 그 남자가 사는 동네로 찾아가서 마지막으로 한번만 보자고 했다. 자기가 지금 상태가 너무 좋지 않다면서 그래도 괜찮냐고 했다. 나는 일단은 그 사람을 보는 게 목적이었으로 얼마나 그가 엉망일 모습일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는 정말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분명 며칠 사이 뭔가 일이 있어보였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이미 그의 눈빛에서 이별에 대한 단호함을 느낄 수 있었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있었던 나를 향한 따뜻한 시선따윈 찾아 볼 수 없었다. 난 그냥 이제 되었다고 가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밤새 울었다.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의 눈빛에서 봤던 칼날 같았던 차가움에 온 몸과 마음이 베인 듯 아팠다. 그리고 그 기억이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또렷하지만 난 아직 그 남자의 이별 이유를 알지 못한다. 1년 뒤 그에게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다시 만나고 싶다는 문자가 왔지만 그때 나는 이미 다른 연애를 하는 중이라 거절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쪽에서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냥 그게 전부야 이게 내 진심인거야 널 사랑하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이미 관계가 끝났다는 걸 서로 아는데도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카페에서 같이 마주 보고 앉거나 나란히 앉아서 스마트 폰만 보고 있는 남녀들이 있다. 서로에게 별 관심이 없는데 오래 만난 관성으로 또 하루 만나 서로를 하찮게 대하는 광경을 찾아 보는 일은 아주 흔하다.서로 지긋지긋해질때까지 만나고 그러다 사랑이 증오로 바뀔때까지 관계가 부패되도록 내버려두다가 결국 이별을 선택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도 진부하다. 그게 뭔지 정확하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멋있는 이별도 있지 않을까?


헐리우드 배우들의 쿨한 이별이나 이혼 방식으로 헤어지는 건 어떨까. 시대가 변해서인지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그런 이별 방식 말이다. 한때 서로가 없으면 죽고 못사는 관계의 사람들이 헤어질때 '좋은 오빠 동생 사이로, 좋은 동료 사이로 남기로, 서로 자녀를 위해 좋은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실제로 그러는지 아닌지는 그들만이 알 일이지만, 사실 그러는 게 '정상'이고 '주류'를 이루면 좋을 것 같긴 하다.


어떤 사정과 과정으로 관계를 끝내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나온 삶을 같이 한 사람과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는 선언은 그리 쉬운 게 아닐터다. 이별을 말하는 사람이나 듣게 되는 사람에게나. 서로의 일치된 결정이면 그나마 다행이어도 상실은 상실이다.


그래서 요즘 젊은 세대의 사랑 방식이 '썸'이 되었는 줄 모른다. 연애는 본능적으로 하고 싶지만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없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는 그 모든 상실로부터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식.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 옆에 머무는 방식은 굉장히 영리한 방식인 듯 보인다. 아쉽게도 20대 시절 '어장관리'라는 말 대신에 '썸'이라는 조금 더 긍적인 느낌을 주는 로맨틱한 언어를 사용했더라면 내 연애의 흑역사가 줄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별에 대해, 헤어지자는 말에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을 붙이면 어떨까 싶다. 널 예전처럼 사랑하지는 않아. 우리가 남자와 여자로 만나 이제까지는 만났지만, 나는 너와 이제 다른 방식으로 만나고 싶어. 넌 여전히 나에는 좋은 사람이고 고마운 사람이니까.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이 즐거웠고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으니까. 이제는 내가 너를 남자로(여자로)사랑지는 않아. 그럴 수도 없을 것 같아. 내 마음이 변했거든. 그러니 이제 우리 친구하자?


'풉~! 최근 착한 사람들만 나오는 드라마를 즐겨봤더니 현실과 이상의 분간을 못하나보다. '


그냥 사랑하지 않는다면 안보고 사는 게 맞는거다. 애초에 연애에 있어서 남녀관계의 본질은 '성적 매력'을 기초로 한다. 이제 더 이상 손도 잡고 싶지 않고, 키스도 하고 싶지 않은 상대와 무슨 볼일로 계속 만나겠는가. 그래서 남녀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말을 하는거다.


남녀로 만나 진짜 인간대 인간의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었다면 그 사랑은 식거나 변질되거나 단절하는게 아니라 사랑이 점점 성숙해질뿐인거다. 그런 관계는 말그대로 죽음이외에 다른 이별은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로가 진정 사랑한다면 말이다.


여튼 플라토닉한 사랑만 했던 관계라면 모를까, 연애하다 뭔놈의 오빠 동생 사이며 친구고 동료로 남겠다는건지..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참 희안하게도 한다. 그냥 조금 잔인하더라도 솔직하게 말하는 게 장기적으로 미련없이 그녀가 그가 마음을 정리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그래야 나같은 건 깨끗이 잊고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다른 상대를 빨리 만날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러니 혹여 날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싶은 사람은 잠시 나쁜 사람이 될 각오쯤은 하고 이별을 이야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어차피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면서 상대의 얼굴과 시선은 보지도 않고 만나서 스마트 폰만 들여다 볼 관계라면 이말을 냉정하게 뱉는게, 그러는 게 한때 사랑했다고 믿었던 상대에 대한 진정한 예의고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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