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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Nov 20. 2023

나를 떠나가는것들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이들을 위한 시]

잘 가라 나를 떠나가는 것들
그것은 젊음 자유 사랑 같은 것들

잘 가라 나를 지켜주던 것들
그것은 열정 방황 순수 같은 것들


그렇게 믿고 다치더라도
나는 또 누굴 믿게 되겠지

그렇게 아픈 사랑이 끝나도
나는 또 누굴 사랑하겠지


그러니 잘 가라 인사 같은 건
해야겠지 무섭고 또 아파도

매일이 이별의 연습이지만
여전히 난 익숙해지지 않아


그러니 잘 가라 인사 같은 건
해줘야지 너에게 또 나에게

배웅은 또 다른 마중일 테니
해야겠지 너에게 또 나에게


난 아파하겠지 그래야
보낼 수 있을 테니 모든 걸

난 나아지겠지 모든 건
다 지나갈 테니


보내야 오겠지
내일이 그렇듯
또 흐려지겠지
지나간 것들


작사- 헨(Hen), 정승환

최백호 [찰나] 2022년


사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일은 엄밀히 말하면 '교육 서비스를 어린 고객에게 제공하는 일'이다. 그렇기때문에 철저하게 필요와 목적에 따라서만 만나고 그 필요와 목적이 다하면 헤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정말로 딱 그뿐이라면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선생이기 힘들고, 아이들은 제자이기 힘들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내가 만나는 아이들 중에 자발적으로 책을 읽고 싶어 찾아 오는 아이들은 거의 없으니까. 대체로 엄마의 필요와 목적에 따라 아이가 끌려오는 경우가 99.9%다. 아이가 책을 읽고 싶으니 책 읽는 곳을 보내달라는 아이는 여태 없었지만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내가 다 만난 건 아니니...0.1%는 남겨두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고객은 '엄마이자, 동시에 아이다'. 나는 아이를 가르치지만 사실상 엄마를 만족시켜야 하는 희안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래서 아이가 좋아해도 엄마가 이제 필요나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하면 이별해야하고, 엄마는 서비스에 만족해서 계속 보내고 싶어해도 정작 아이가 싫다고 하면 또 이별해야한다.


그리고 이별은 늘 예고없이 찾아온다. 내가 아이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대체로 내 결정보다는 '아이들 엄마'에 의해 느닷없이 결정되는 경우가 흔하며 당연시 된다. 적어도 한달 전쯤 말해주면 그래도 좋으련만,  사실 그런 경우는 드물다. 대체로 1주일 전이나 심지어 당일날 '마지막 수업이 될 것 같다'고 결정하고 통보하는 경우도 심심치않으니까.


그렇게 믿고 다치더라도 나는 또 누굴 믿게 되겠지 그렇게 아픈 사랑이 끝나도 나는 또 누굴 사랑하겠지그러니 잘 가라 인사 같은 건 해야겠지 무섭고 또 아파도. 매일이 이별의 연습이지만 여전히 난 익숙해지지 않아


내가 아이들과 이별할때의 느낌은 흡사 남녀가 헤어지는 이유와 비슷해서.  남녀가 만나다 헤어질때처럼 좀 아프다. 이런 방식은 매년 반복되지만 희안하게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 다른 사람이 좋아졌거든."

- 다른 학원으로 옮겨간다.


"나 유학가."

-진짜 유학간다.


"나 군대가."

-부모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나서 전학간다.


"그냥 니가 싫증이 났어."

-이제 책은 많이 읽었으니 수학에 집중시킨다.


"사실 널 사랑한게 아니였나봐"

-사실 엄마에 의해 억지로 다니다 결국 그만둔다.


"우리 잠깐 시간을 갖자"

-지금 다른 공부로 인해 바빠서 조금 쉬다 온다고 하고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운 좋게 5년 그리고 6년을 가르친 아이들이 꽤 있다. 가르치는 장르가 '책 읽기와 글쓰기'라 그런지는 몰라도 내 수업을 선택하는 부모님들도 아이들도 성마른 사람들보다는 대체로 진중한 편이다. 단기간에 학습 효과를 바란다면 이 수업을 선택하지 않을테니 대체로 부모들은 아이들은 끈기있게 나를 만나러 온다.


공교육 현장에서도 '스승과 제자'라는 말을 쓰지 않는 판국에 뭔놈의 사교육 선생 주제에 '스승과 제자'코스프레냐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오래된 '제자'가 꽤 많다. 사교육 현장에서 그렇게 오래 아이들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영어나 수학처럼 학습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분야가 아닌 것을 가르치면서 말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 아이들이 나를 만나러 온다는 그 자체가 매우 귀한 일이고, 실제로 부모님들이 먼저 내게 아이들의 스승님이란 호칭을 선뜻 써주시기에 난 그 아이들의 선생이고 스승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으며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대체로 중3때까지만 수업을 하기에 중학교 3학년 2학기 가을쯤에는 수업을 마무리 한다. 그래서 올해도 어김없이 예정된 이별을 해야했다. 올해 중3이 되어 수업을 마무리 하는 아이 중에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중3때까지 6년을 가르친 아이가 있다. 6년 동안 그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귀여움이 사라진 목소리와 훌쩍 커버린 키와 사춘기 열꽃이 핀 얼굴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가장 많이 변한건 그 아이와 나의 관계다.


그 아이 역시 처음에는 엄마한테 억지로 끌려와 억지로 책을 읽던 아이였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는 있지만 아이는 매 시간 뭔가 마음에 안드는 뚱한 표정을 지었고, 한달에 한번은 꼭 수업을 코 앞에 두고 배탈이 나서 결석을 했다. 읽어오라는 책들을 대충 읽어와서 오래도록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던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결석하지 않았고, 시간이 더 지나서는 읽을 책을 더 달라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서는 묻지도 않은 자기 이야기를 한참을 털어 놓고 가기도 하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이제 나와 지적인 대화를 나눌만큼의 성장을 했다.


"일주일 동안 해야 할 생각을 이 곳에 와서 2시간 동안 다 하고 가는 것 같아요"


어느 날 그 아이는 그 주에 정해진 책을 읽고 주제 글쓰기를 하던 중에 이렇게 말했다. 학교 수업도 듣고 다른 학원들도 다니지만 나에게 와서만큼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어디서도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하는 이런 시간이 의미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여러 아이들 앞에서 의젓하게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감동이 밀려왔다. 난 그런 낯간지러운 감동을 습관처럼 감추고 이렇게 말했다.


"어라~ 한달에 한번씩 갑자기 배 아파서 결석하던 너 맞아?"

"어? 꾀병인거 아셨어요?"

"그걸 어떻게 몰라? 많이 컸다. 우리 **이"


수업을 종료한 뒤에 3 아이들과 따로 약속을 잡고 불러내 저녁 밥을 배불리 사주었다. 그 아이는 더욱 아쉬움이 남는 아이라 근처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다가 아파트 입구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고등학교가서도 선생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을때 꼭 연락하라고 말하며, 잘 성장해주어서 고맙다고 덧붙였다. 나보다 이제 키도 훨씬 커지고 의젓해졌지만 쑥쓰러워 웃을때는 여전히 어린티가 났다.


그렇게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 서려는 찰나였다. 아이는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하며 내게 넙죽 90도 폴더 인사를 하고는 한참을 그대로 멈춰 있었다. 요즘엔 보기드문 아이의 정중한 인사에 송구스럽기까지 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목이 메이고 코끝이 찡했다. 그리고 울컥 눈물이 났다. 그때 마침 비가 와서 썼던 우산에 눈물이 가려져 민망함을 피했다.


그러니 잘 가라 인사 같은 건 해줘야지 너에게 또 나에게 배웅은 또 다른 마중일 테니 해야겠지 너에게 또 나에게. 난 아파하겠지 그래야 보낼 수 있을 테니 모든 걸 난 나아지겠지 모든 건 다 지나갈 테니


삶은 만남의 연속, 그리고 이별의 연속이다. 그 대상이 사람일 수도 있고, 그것이 일이나 상황일 수도 있다. 그 중에 어떤 만남과 이별은 인생을 경로를 바꿔 놓을만큼 큰 의미를 남기기도 한다. 모든 만남이 다 좋은 게 아니며, 모든 이별이 다 상처가 아닐테지만 그 의미야 나중에 다 지나고서야 알 수 있는 일이고, 그 만남의 순간과 이별에 순간에 놓인 우리는 그 의미따윈 알지도 못해서 의연함을 잃는다. 그래서 당장의 만남과 이별에 일희일비하기 쉽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아지기도 한다.



유명한 다윗 왕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느 날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반지 세공사를 불러 "날 위한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 내가 큰 전쟁에서 이겨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게 하며,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때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넣어라!"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반지 세공사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으나, 빈 공간에 새겨 넣을 글귀로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현명하기로 소문난 왕자 솔로몬에게 간곡히 도움을 청한다.

그때 솔로몬 왕자가 알려준 글귀가 바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 글귀를 적어 넣어 왕에게 바치자, 다윗 왕은 흡족해 하고 큰 상을 내렸다고 한다. 모든 것은 나에게 왔다가 나를 떠난다. 특히 내가 의미를 크게 둔 것들일 수록 그것들이 떠날 때는 아쉽고 아프고 어떨때는 절망스럽기도 하다. 모든 것들이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그것이 일이든 상황이든 언젠가는 모두 떠나고 나만 남는다. 결국 그렇게 모든 것은 내 곁에 머물다 지나가고 나는 오늘을 또 살아간다.


잘 가라 나를 떠나가는 것들. 그것은 젊음 자유 사랑 같은 것들. 잘 가라 나를 지켜주던 것들. 그것은 열정 방황 순수 같은 것들...


이제는 이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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