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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Dec 11. 2023

살아야지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이들을 위한 詩]

산다는 건 참 고단한 일이지
지치고 지쳐서 걸을 수 없으니


어디쯤인지 무엇을 찾는지
헤매고 헤매다 어딜 가려는지


꿈은 버리고 두발은 딱 붙이고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면 되는데


가끔씩 그리운 내 진짜 인생이
아프고 아파서 참을 수가 없는 나


살아야지 삶이 다 그렇지
춥고 아프고 위태로운 거지


꿈은 버리고 두발은 딱 붙이고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면 되는데


날개 못 펴고 접어진 내 인생이
서럽고 서러워 자꾸 화가 나는 나


살아야지 삶이 다 그렇지
작고 외롭고 흔들리는 거지


작사: 채정은


임재범 [공존] 2004년



최근에 딸과 함께 빅터 플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읽었다. 그는 유대인이면서 정신과의사다. 이 책은 그런 그가 유대인 학살 현장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기록한 수기와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로고테라피가 소개된다. 그는 홀로코스트 이후 삶에서 고통이 주는 의미를 정신의학적 방법을 고안하여 고통을 겪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정신 치료 기법인 로고테라피를 정립하고, 이 기법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고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하버드 심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던 고든W. 알포트 박사는 홀로코스트 현장에서의 빅터 플랭크의 처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빅터 플랭크는 그런 처지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선택했다고 전한다. 짐승만도 못한 처지 속에서도 그가 놓지 않은 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다!


"평범한 삶에서는 당연했던 모든 인간적인 목표들이 여기서는 철저히 박탈 당한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어떻게 취할 것인가 하는 자유뿐이다."


아무런 자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 문장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내가 그 순간 어떤 감정을 가지든지, 이건 순전히 내 마음이다. 아무도 건들 수 없는 나의 영역이며, 더 나아가 외적으로 물리적으로 굴복시키려 해도 '어떤 태도를 갖는 사람'이 될 것인지는 적어도 내가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욕구와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죽음의 공포에 압도당하지 않고 어떻게 그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게 가능할 것 같긴 하지만 난 아무래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의구심을 가지고 추천사에 있어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너무도 비극적이고 잔인하고 처참한 현장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많기에 빅터 플랭크는 이런 이야기들은 거의 생략한다. 굳이 자신이 그걸 보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빅터 플랭크는 그런 환경 속에서 분노와 원망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는다. 그 속에서 의사로서 굉장히 특수한 처지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 자신의 태도를 어떻게 취할 것인가'를 놓고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들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살기 위해 나치보다 더 지독하게 구는 유대인 감독관들이 있는가 하면, 일찍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차마 죽지는 못하지만 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가 되는가 하면, 그런 상황에서도 친구와 동료를 구하고 같이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담담히 서술한다. 그리고 니체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또 많은 것들이 극도로 결핍되고 고통과 비극을 견뎌야 하는 극한의 상황이었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서도 코를 골며 자기도 했다는 것이다. 유일한 안식의 시간이었으므로. 빅터 플랭크는 특히 인간은 그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한다.





삶이 언제나 명랑만화일 수 없는 거야 너무도 당연하다. 인생이 몹시 써서 도수 높은 술이 달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한지 모른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끝없이 오는 크고 작은 시련들을 잘 처리하고 대처하면서 사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얄팍한 마음에 삶의 비극뿐 아니라 아주 작은 고통도 그저 책이나 영화에서만 봤으면 좋겠고, 내 인생에서 아주 멀찍이 떨어져 있는 그 무엇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곧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어쩔 수없이 맞이할 고통, 어쩌면 올 수도 있는 인생의 비극에도 '살아야지'라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빅터 플랭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발견한 몇 가지 삶의 진실에 대해 들려준다.

첫째. 믿음을 상실하면 삶을 향한 의지도 상실한다.

- 미래에 대한 낙관이나 희망이 있어서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을 포함하여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체로 곧 전쟁이 끝나서 자신들이 풀려날 거란 낙관과 희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둘째. 삶에서 그 고통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 극한의 상황에서도 이 고통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며, 자신은 왜 살아야 하는지가 명확하면 된다. 빅터 플랭크는 그 현장을 거대한 고통을 겪는 인간들의 심리 실습장처럼 바라본다. 그 속에서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관찰하고 생각한다.


셋째.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 실현된다.

-친구나 동료를 돕는 마음에서 인간다움을 발견하고, 내 눈앞에 없는 사랑하는 아내를 떠 올리며 대화를 하고, 해지는 노을을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경탄했던 스스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사람은 사랑에 의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삶의 순간순간 존재하는 아름다움과 사랑을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 이런 삶을 살다 간 꼭 맞는 시인이 있다. 그가 쓴 시는 그의 아름다운 세계관을 알 수 있다. 너무도 유명한 청상병 시인의 '귀천'은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고문을 받은 이후에 쓴 시로, 당시 천상병 시인은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몸과 정신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성기능 불능이 되고 이가 많이 빠져 영양실조에 걸리는 등 신체적 고통을 겪었으며, 정신 착란 등으로 괴로워하여 음주 없이는 잠도 못 이루는 지경이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 쓴 시가 바로 '귀천'이었다.


그 때문에 언뜻 천상병 시인이 죽기 직전 유언 비슷하게 남긴 작품으로 오해받기도 하는 시지만, 천상병 시인은 이 시를 발표한 뒤 23년이 지난 1993년에 사망했으니 유작은 아니다. 사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천상병 시인은 항상 술에 취해 지냈는 데다 이가 빠져 발음도 어눌했던 탓에 정신병자로 오인받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되었다. 하지만 주변인들은 천상병 시인이 군부에 의해 결국 의문사당한 것이라고 오해하여 천상병 시인의 미발표 시들을 모아 유고집으로 '새'라는 시집을 냈다. '귀천'도 이 <<새>>라는 시집에 실린 작품 중 하나였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언젠가 나의 임종 장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의 마지막을 나의 아들과 딸이 지켜봐 주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 한곡을 틀고, 내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어주며 안녕하는 모습. 그 시간이 언제 올진 모른다. 먼 훗날이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다만 우리가 '잘 가요, 엄마' '잘 있어, 얘들아'라고 인사는 하고 헤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때 내가 지금보다 성숙한 인간이 되어 있다면 천상병 시인의 저 아름다움 시귀처럼 인사하련다. '얘들아~ 엄마는 너희 덕분에 즐거운 소풍을 마치고 갈 수 있어서 좋다'


가끔씩 그리운 내 진짜 인생이 아프고 아파서 참을 수가 없는 나.....꿈은 버리고 두발은 딱 붙이고,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면 되는데, 날개 못 펴고 접어진 내 인생이 서럽고 서러워 자꾸 화가 나는 나.


이런 생각을 나도 한 적이 있다. 지금 내가 사는 삶은 내 인생이 아니라는 부정. 그런데 그게 얼마나 어리섞은 생각인지. 내 진짜 인생이 따로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내가 있는 곳 그곳이, 살고 있는 지금이 진짜 인생이다. 그래서 날개 못 펴고 접어진 내 인생에 나 또한 많이 서러워했었다. 하지만 이젠 그걸 받아들이며 살고 있어서 한결 덜 아프다. 그 아쉬운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거라고 치기로 하고, 지금 여기서 오늘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삶의 끝오기 전까지 나는 건강하게 살아갈 생각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어도, 이룬 거 없는 인생이어도 주언진 시간만큼 그냥 끝까지 살아볼 작정이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언제 한 번은 뜻대로 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지, 또 죽기 전까지는 뭔가 하나는 이루어 낼지...


그렇게 죽기 전까지 꿈은 버리지 말고 두발은 딱 붙이고 사는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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