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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Nov 21. 2024

다이어트의 이적(二敵)

스트레스와 외로움은 더 살찌게 만든다.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엄마로서 자녀 두명을 양육하고, 선생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지금의 내 삶의 난도는 그야 말로 인생 최고 난이도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나는 마치 수영, 싸이클, 마라톤을 모두 해내야하는 철인3종 경기, 트라이애슬론 선수로 매일을 살고 있는 느낌이다.


주5일 근무가 보편화된지가 언젠데 나는 주6일 일을 하고 있다. 누구는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전혀 자발적이지 않은 선택이다. 집안의 가장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경제를 책임져야하기때문에 주6일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주6일 9-10시간을 일을 하다가 번아웃이 왔는데도 일을 줄이지 못하고 강행하다가 결국 디스크 파열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줄여가기 시작했다.


1년 휴식기 동안 5일 근무를 하다가 몸이 조금 회복되니 이내 다시 일을 차차 늘렸고,  요즘 다시 6일 근무를 하고 있다. 일이 늘면 수입이 늘어나니 좋은 것 같으면서도 몸이 예전만큼 피로도를 감당 못해 힘이 든다. 그리고 이러다 다시 번아웃이 올까 걱정이 된다. 그렇다고 일을 줄이면 수입이 줄어드는 불안이 커져 마음 편히 쉬기도 힘들다. 한마디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걱정, 날이 맑으면 날이 맑아 걱정인 셈이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운치있고 조금 쉬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면 좋겠고, 날이 맑으면 활기찬 하루를 보내면 된다고 생각하면 좋겠는데 말이다. 그런 긍정적 사고 회로가 형성되지 않는다. 이게 가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인건가 싶다. 쉬고 싶어도 없고, 멈추고 싶어도 멈출 없다.


그런 내가 일없이 쉬는 유일한 날이 토요일이다. 일주일간의 모든 긴장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시간이지만 그마저 온전히 쉬지 못하고 다음 날의 일을 걱정하면서 보내기 일쑤지만, 여튼 요즘은 되도록 토요일엔 정말 놀고 먹고 쉬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현실의 고민들을 밀어버리려고 텔레비전을 켰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면서 잠시나마 현실의 문제를 벗어나고 싶어서 마땅한 프로그램을 찾았다. 마땅히 끌리는 것이 없던 중 어느 채널에서 힘겹게 바다 수영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이끌려 리모컨 돌리기를 멈추고 한참을 그 장면을 보았다. 내가 현재 느끼고 있는 삶의 난이도가 흡사 지금 저들이 겪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아주 흡사해 보였다. 그렇게 우연히 보게 된 여배우들의 철인3종 도전 예능 <무쇠 소녀단>, 나는 어느새 그녀들이 벌이고 있는 자신과의 싸움에 깊게 몰입하고 말았다.


끊없이 쉽고 편안 쾌락을 얻고 싶은 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인데, 본능적인 것을 거부하면서 일부러 자신의 육체에 극한 고통을 주고 있는 그 모습이 처음에는 의아했다. 철인3종 경기같은 걸 도대체 왜 할까? 보면서 의구심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점점 수영을 하고 바로 숨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뒤이어 쉼없이 자전거로 갈아타고 평지와 언덕을 번갈아 달리는 그녀들의 모습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수영에서 자전거를 끝낼때는 이미 내 정신이 아닌 상태가 된 듯 보였다. 그럼에도 반은 나간 정신줄을 다시 부여잡고 이어 마라톤을 달린다. 무릎 통증에 포기할만도 한데 끝까지 달리는 그녀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뭉클해졌다.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한 여배우가 카메라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꺼이꺼이 우는 모습에선 그만 같이 울고 말았다.


내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이 게임을 하는 것을 멈추고 내게 묻는다.

"엄마 왜 울어?"

그냥 대단해보여. 포기하지 않는게
된장찌개와 렌틸콩밥 굴과 수육 그리고 파김치


요즘 굴이 제철이다. 우리 가족은 주로 11월부터 2월까지 굴을 즐겨 먹는다. 가장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때가 개인적으로 가장 입맛이 당긴다. 생굴에 레몬을 뿌려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콩나물과 함께 굴밥을 해서 먹는다. 이번에는 굴이 신선해서 생으로 수육과 함께 먹었다. 여기에 파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일품이다. 파김치는 나와 아이들의 최애 반찬이라 봄과 가을에 빠뜨리지 않고 꼭 만들어 먹는 김치 중 하나다. 특별한 비법이나 딱 정해진 양념의 레시피가 있는게 아니라 그때 그때 맛이 조금씩 다르지만 아이들은 늘 내가 담근 파김치를 먹고 엄지척을 해준다. 엄마가 해준 것은 뭐든 대체로 맛있다고 늘 너그럽게 평을 해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한 식사 시간이다.


2023년 7월부터 식단관리를 시작하고 1일1식을 1년 한뒤, 지금 1일 2식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 그저 시행착오없이 체중감량을 한 건 아니다. 1일 1식에서 한끼를 더 먹는데도 가끔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식탐이 올라와 밤9시나 10시에 무언가를 먹는 일이 지금도 일어난다. 전과 확실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런 행동을 한 후 자책을 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정돈된 식사를 하려고 노력하고, 도저히 그 노력이 잘 유지되지 않을 때는 유연하게 먹고 싶을때 먹는 쪽을 선택한다. 이유가 있을테니까.


다이어트를 지속하는 것이 어려운 여러가지 원인들이 있다. 이유를 모르면 내가 의지가 약하고 참을성이 약하고 게으르다고 폄하하기 쉽다. 그렇게되면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시작한 다이어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를 아끼려고 시작한 일인데 조금 더 관대해져보기로 한다.


나는 왜 음식을 참지 못하는가?


내 경우에는 두 가지의 상황에 놓일 때 배가 불러도 먹고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다. 하나는 스트레스로 인해 불안함과 외로움이디. 엄마로서 선생으로서 느끼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지나치면 불안과 외로움이 올라오는데 그 스트레스가 심할 수록, 불안과 외로움을 많이 느낄 수록 달고 짠 음식들, 고소하고 기름진 음식들, 손쉽게 빠르게 만족을 주는 가공식품들을 찾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런 가공식품을 섭취한 이후에 몸은 더 많은 음식을 요구하며 더 참지 못하게 된다. 정제탄수화물과 정제당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섭취한 순간 그 이후 계속된 식탐으로 연이어 음식을 먹게 되는 식이조절의 문제를 겪곤 한다. 그러니 결국 스트레스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그 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얘기다.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법들이 있겠지만 솔직히 나는 스트레스를 받기만 하지 건강하게 잘 해소하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래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성찰해보고 관찰해본 적이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있을때 나는 누군가에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그것에 대해 편안하고 믿을만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안정을 찾아갔고 괜찮아졌다.


하지만 매번 내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에 대해 누군가에게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철이라는 것이 들면서 또는 배려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그때마다 내 힘든 얘기를 들어달라고 하는 건 민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과 기회가 되어 타인들에게 내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한들 되려 상처가 되곤했다. 타인에게 내 슬픔과 고통을 온전히 공감받기 어렵다는 생각에 이르렀을때 점점 혼자가 되어갔다.


그렇게 점점 얘기도 못하고 혼자 감당해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달고 시원한 과일이나 아이스크림이다. 그걸로도 진정이 되지 않고 해결되지 않으면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올때까지 집안에 있는 먹을 것들을 찾아내 하나씩 하나씩 먹어댄다. 즉 폭식을 한다. 그런데 또 음식으로도 해결이 안되는 것 같으면 하는 행동이 드라마나 예능을 눈이 아플때까지 몰아 보면서 나를 괴롭히는 현실의 문제로부터 도망가는 식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들 스트레스가 풀리거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다시 먹고 보고 자다 살만 쪄 있는 무기력한 나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아파나 굽타 미국 로스엔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굿맨-러스킨 마이크로바이옴센터 연구원 연구팀은 자신이 외롭다고 인식한 참가자들은 설탕이 든 음식을 볼 때 먹고 싶은 욕구와 관련한 뇌 영역의 활동이 증가했다. 식욕을 통제하는 것과 연관된 뇌 영역의 활동은 감소했다. 연구팀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낄 때 달고 열량이 높은 음식을 먹고 싶다는 통념에 대한 증거를 확인한 것은 흥미롭다"며 "그동안 외로운 사람들의 건강하지 못한 식욕에 대해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외로움과 비만에 영향을 주는 식습관은 서로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됐다는 분석이다. 연구팀은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면 더 많이 먹게 되고 이는 더 많은 불안이나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급격한 스트레스에 직면하면 대표적인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가 촉진된다. 그래서 스트레스의 원인에 대항해 싸우거나 도망가기 위해 신체 반응이 일어난다. 그러나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만성적이며, 꽉막힌 도로나 직장 내 책상 그리고 자녀 양육에서 회피할 수 없다. 그냥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노출될뿐. 이렇게 코르티솔 수치는 상승한 채 유지되고, 이는 인슐린과 지방 저장 효소를 자극하고 지방 분해 효소를 억제한다. 더구나 코르티솔 수용체는 피하 지방보다는 내장 지방에 훨씬 많이 분포되어 있어 내장 지방 축척을 심화시킨다. 특히 만성적인 코르티솔 분비는 인슐린 작용을 저하시켜 혈당을 올리고, 저하된 작용 때문에 반복되는 인슐린 과다 분비에 둔감해진 인체는 인슐린 저항성 체질로 변화된다. 그래서 인체는 지방을 태워 연료로 사용하는 대신, 지방 대사 시스템을 꺼버리고 지방을 저장하려 한다. 그리고 그렇게 저장된 지방에서 식욕 억제 호르몬인 렙틴 저항성을 만들어내어 식욕을 더 자극하게 되고 더 많은 음식을 먹게 하고 지방을 더 축적하게 된다.
 
-김경우 정신건강 전문의 블로그 <스트레스, 우울증이 비만을 유발하는 기전> 내용 발췌-


굳이 이런 과학적인 근거들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더 많이 먹고, 더 자극적인 것들을 배가 부른데도 불구하고 입에 넣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나를 살찌게 하고 피곤하게 하고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40 중반을 넘어 50을 향해 가면서 느끼는 스트레스 강도는  <무쇠 소년단> 여배우들의 철인3종 경기의 과정과 매우 흡사했다. 내 팔과 다리가 내 것이 아니고, 내 정신이 나의 것이 아닌 듯 분리되는 느낌. 그래서 순간 순간 삶 마저 포기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끝끝내 결승선에 닿는 모습 아니 결승선 앞에서 오히려 더 힘을 내는 그 모습이 어딘지 매우 익숙했다. 그녀들의 그런 마음처럼 나는 오늘을 살아내는 중이다. 


나의 식탐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마지막 결승선에 도착해 꺼이꺼이 우는 여배우들의 마음이 요즘 나의 마음 같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는 여배우들에게 쳐주는 박수소리가 전해주는 따뜻한 힘에 나도 힘이 났다. 그래서 철인 3종 경기 예능을 보다 그만 눈물이 터졌다.


그렇다. 내게도 지금 절실히 저런 따뜻한 응원과 박수가 필요하다. 인생 최고 살고 있는 나를 위한 응원. 계속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 중에 있는 나를 위한 힘찬 박수를 쳐본다. 나를 향한 그 응원의 박수가 어쩌면 음식 대신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잠재울 수도 있을지 모른다. 설사 아무도 몰라줘도 나는 나를 언제나 응원할 것이다. 인생은 결과가 아닌 과정 그 자체이므로.



그래서 다이어트도, 인생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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